긍정적인 나와 부정적인 나를 모두 나로써 인정하자
(※주의! 이 리뷰에는 다소 스포일러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베놈은 원래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등장한 빌런인데, 모종의 계기로 자신만의 방식으로 남을 돕는 안티 히어로로 거듭나게 되는 캐릭터입니다. 외계인 심비오트, 베놈이 속한 존재는 인간의 몸을 숙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설정으로 나오는데 그렇기에 인간 에디 브록은 베놈의 필요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몸을 공유하게 됩니다.
사실, "어쩔 수 없다"는 것은 핑계일 수도 있습니다. 일도 사랑도 다 망한, 되는 일 하나 없는 에디 브록에게는 베놈이라는 존재가 그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베놈은 에디 브록이 없으면 살 수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에디 브록은 베놈 없이 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와의 공존을 택한 것은 그게 에디 브록에게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베놈은 자기가 없다면 에디 브록은 그저 찌질이로 살 수밖에 없다며 그를 비꼬는데 자신의 능력과 존재 가치를 무시하는 베놈에게 에디 브록도 화가 나고, 그들은 결별을 택합니다.
그들이 떨어져 있는 사이, 에디 브록에게 기사거리를 던져주던 잔혹한 연쇄살인마 클리터스 캐서디는 에디 브록이 잠시 이성을 잃고 베놈이 되었을 때 그를 깨물어서 피를 흡수했고 새로운 심비오트, 카니지의 숙주가 됩니다. 카니지는 이름이 의미하는 바 처럼 대학살을 일으키는데 이는 사람을 뇌를 먹고 사는 심비오트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숙주 클리터스 캐서디의 영향 또한 반영되어 있습니다. 감옥을 탈출한 카니지, 클리터스 캐서디는 비정상적인 초인적 소리를 발산하는 여자친구 슈릭을 찾으러 가고 둘은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강력한 콤비가 되어 폭주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실수 때문에 카니지와 캐서디가 결합했다는 것을 알게 된 에디 브록은 전 여친 앤 웨잉에게 부탁하여 베놈을 찾고, 앤 웨잉의 중재로 극적인 화해를 합니다. 그러나 앤 웨잉이 위험한 도시에서 탈출하려던 찰나 카니지와 슈릭에게 잡혀가고, 베놈과 에디 브록은 재결합하여 그녀를 구하러 갑니다.
소리에 예민한 심비오트의 특성 상, 카니지는 캐서디의 여자친구 슈릭이 내는 소리 때문에 그녀를 싫어하는데 이는 베놈과 카니지의 본격적인 대결이 펼쳐질 때도 두 심비오트 모두에게 영향을 끼칩니다. 시끄러운 소리가 날 때마다 심비오트와 숙주 간의 결합이 방해받기 때문입니다. 잔혹함과 힘에서 압도적인 카니지가 베놈을 없애려는 순간, 큰 소리가 방해하게 되고 오랜 기간 동안 호흡을 맞춰왔던 베놈과 에디 브록은 위기를 극복하고 카니지를 처단합니다. 정말 제대로 붙었다면 사실 카니지가 이길 것이 뻔한 대결이었지만 궁합(?)과 경험에서 베놈에게 밀린 것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베놈과 에디 브록. 그리고 카니지와 캐서디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조금 과장된 해석일지는 모르겠지만, 베놈과 카니지는 각각 에디 브록과 캐서디의 그림자, 또는 내면의 또 다른 자아라고 생각했습니다.
에디 브록은 기자로서 자극적인 기사를 쓰며 커리어를 쌓아왔지만 일과 사랑 모든 것을 날리게 됩니다.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베놈을 마주치게 되고, 여러 우여곡절 끝에 공생을 택합니다. 베놈은 에디 브록보다 다양한 능력을 가지고 있고, 힘도 세며, 신체치유기능까지 있죠. 에디 브록은 어떻게 보면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고 그저 숙주로서의 기능만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최종적으로 위기의 순간에 베놈과 에디 브록은 완벽히 결합하며 환상의 호흡을 보여주었고, 그 위기상황을 벗어납니다. 이는 자아의 위협이 되는 상황에서, 긍정적인 나와 부정적인 나를 모두 "나"로서 인정할 때 건강한 자아로 거듭나게 됨을 의미하는 것 같죠. 카니지와 캐서디는 단순한 능력으로만 따지면 베놈과 에디 브록의 결합보다 우월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긍정적인 나와 부정적인 나의 모습을 하나로 합치지 못했습니다. 어느 한 쪽을 부정하거나 제대로 포용할 수 없을 때,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은 100% 발휘되기 어려운 것이죠.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에디 브록은 비로소 베놈과의 공생을 택하려면 자신이 어떤 것을 포기하고 어떤 것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그를 실천합니다. 비록 바라던 사랑을 얻지는 못했지만, 건강한 자아상을 형성하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하는지를 알게 되며 행복해집니다. 물론 그 이후에도 인생에는 여러 시련이 닥쳐오겠지만, 자신을 강력하게 믿는다면 본인이 가진 잠재력을 100% 이상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러한 교훈은 긍정적 자아상에만 집착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