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은 OO다.

부동산 생활의 면적이다.

by 김동현

부동산(不動産).

움직이지 않는 재산이 사람을 움직인다. 지도 위 한 점을 찍는 순간, 마음이 먼저 이사를 시작한다. 감정과 이성 사이에서 접혔다 펴지는 계약서. 집은 그대로 있어도 가격은 흔들리고, 가격이 흔들릴 때마다 이 사람 저사람의 마음도 함께 출렁인다.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싱크대와 침대 사이는 두 걸음, 키보드를 모니터 아래로 밀어두고 그 위에서 저녁을 먹는다. 계약이 끝나갈 무렵이면 집주인이 말한다. 5만 원만 더 올리겠다고. 그때부터 머릿속에서 엑셀 표가 칸칸이 펼쳐진다. 보증금, 대출, 월세, 관리비, 통근 시간, 이사비. 전세로 갈아탈까 망설이는데, 선배의 조언이 마지막으로 등을 떠민다. 필요한 서류는 열 장이 넘고 은행·보증보험·확정일자를 돌아야 하지만, 이건 해낼 수 있다. 문제는 이사비다. 겨우 작은 원룸에 살던 짐이 얼마나 된다고 돈까지 써야 한단 말인가. 결국 몸이 재산이라고 셀프로 옮기기로 한다.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책장 대신 조립식 스틸 선반을, 원목 대신 접이식 테이블을 골랐는지도 모른다. 넓어지기보다 가벼워지는 법을 먼저 배우고 말았다.


사람들이 집을 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손에서 도망가지 않기 때문이다. 집은 물건이 아니라 생활의 배경이고, 내 집이 있다는 안정감은 숫자로 환산할 수 없다. 책장을 어디에 둘지, 조명의 색온도를 몇 K로 맞출지, 벽에 못 하나를 박을지 말지, 내 뜻대로 정하고 실행할 수 있다는 감각은 사랑스럽다. 같은 돈이 나가도 남는 게 다르다. 월세는 오늘을 위해 사라지고, 대출 상환은 내일의 소유로 쌓인다. 언젠가 온전한 내 것이 된다는 한 줄의 서사. 그 문장의 힘으로 오늘도 버텨낸다.


그 믿음에 불이 붙는 순간도 있다. 얼마 전 B 과장이 부천 인근 아파트를 샀다. “현금 1.2억만 있으면 돼. 너도 사.” 말은 쉬웠다. 지금 나는 전세 보증금 6,500만 원짜리 집에 산다. 대출은 5,200만 원, 금리는 연 3%다. 한 달 15만 원이면 이 집은 유지된다. 집주인이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해줬으니 새 집이라 불러도 과장은 아니다. 그래도 생각은 곧장 집의 넓이와 생활의 크기로 미끄러진다. 결혼한 동생 집에서 로봇청소기가 내 다리를 살짝 피해 거실을 성실하게 청소하던 낮, 선배의 턴테이블이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거실 가득 흘려보내던 밤. 다시 집으로 돌아와 현관을 열면 내 집의 크기가 실측표처럼 또렷해진다. 마음 한쪽이 짧게 깜빡인다.


그렇다고 답이 늘 이사일 필요는 없다. 유튜브 ‘자취남’ 채널을 보면 혼자서도 공간을 과감히 쓰는 사람이 있고, 작은 집을 수납과 동선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제 몫의 생활을 만드는 사람도 있다. 넓게 산다는 건 평수의 문제가 아니라 우선순위의 문제에 가깝다. 누군가는 평수 대신 시간을 넓힌다. 직장 가까이에 붙어 통근을 줄이고, 남은 여백을 온전히 자신에게 돌린다. 또 누군가는 도심을 떠나 대지의 넓음을 택한다. 대신 외로움과 교통을 감당한다. 선택에는 언제나 교환이 따라붙는다. 그 사실을 직시하는 순간, 욕망에 휩쓸리지 않고 계획을 서두르지 않는다.


나는 예산표 앞에서 끝내 같은 결론에 닿았다. 지금은 이 집에 오래 붙어 있는 편이 합리적이다. 통근이 짧아 체력과 시간을 아낄 수 있고, 월 이자는 낮아 저축 속도가 유지된다. 원룸이지만 작은 베란다가 분리돼 있어 생활의 기능을 나눌 수 있다. 평수를 당장 넓히지 못한다면 생각을 넓히면 된다. 도심에 산다는 건 친구와의 약속, 업무 미팅, 전시나 공연 같은 볼일이 언제나 한 시간 안에 닿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루의 계획이 무너지지 않고, 되찾은 시간은 온전히 내 몫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사를 위해 지금 당장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까지가 지금 내게 가장 귀한 면적이다. 넓음은 제곱미터로만 계산되지 않는다. 움직이지 않는 벽 너머로 확장되는 것은 우선순위와 하루의 사용법이다.


여기까지 오면 다음 페이지에 적을 내용이 또렷해진다. 당분간의 계획은 두 가지다. 돈을 더 알뜰살뜰 모으는 것. 내 시간을 넓히는 것. 그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한 단계는 창고로 방치된 베란다를 작은 부엌으로 되살리는 것이다.


작전명 : 부엌 부활 운동

1) 냉동실 성에 제거

2) 선반 정리

3) 인덕션 청소

4) 전자레인지 청소

5) 밀키트 구매 (요리는 천천히..)


어젯밤, 1번을 실행했다. 냉동실 문을 열고 하얗게 뭉친 성에를 긁어내자 우두둑 소리와 함께 얼음이 덩어리째 떨어졌다. 그 짧은 파열음이 의외로 크게 울렸다. 소리가 가라앉을 때 마음속에서도 한 겹이 함께 떨어져 나가는 기분이 들었다. 성에를 다 떼어내고 문을 밀자, 그동안 애매하게 걸리던 문이 툭- 소리를 내며 완전히 잘 닫혔다. 그 순간 어떤 안도감이 들었다. 앞으로도 나는 여기서 충분히 잘 살아낼 수 있겠구나.


부동산은 움직이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이 움직인다. 지도를 펼쳐 이 집, 저 집을 클릭하던 마우스는 잠시 거두고, 오늘은 집에 가서 내 몫의 휴식을 취해야겠다. 냉동실에서 긁어낸 성에만큼 마음속 결로도 옅어진 기분이다. 집이 당장 넓어지지 않아도, 사는 법의 면적은 이렇게 조금씩 넓어진다. 그리고 그 넓어짐이야말로 한 달 15만 원의 이자보다, 등기부 등본의 잉크 자국보다 오래 남을 것이라고. 그렇게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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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첫 자취방, 남향인데 여름에 키보드까지 곰팡이가 생겼던 이상한 집.. 바로 앞은 1호선이라 새벽에도 기차 진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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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두 번째 자취방, 벌써 5년째 살고 있다. 최근에는 새 침대도 샀다. (너무 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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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그마한 냉장고, 유통기한이 지난 건 다 버렸다. 오른쪽 사진만큼 성에가 단단히 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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