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같은 시간 같은 길을 2년 넘게 걸으면서 자주 마주치는 사람들이 생겼다. 그중에서 개성 있는 사람들의 얼굴은 자연히 외워져서 나 혼자 친근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여럿이다. 만약 다른 공간에서 스친다 해도 나는 그들의 얼굴을 알아보겠지. 오늘 퇴근길 지하철역에서 그녀를 알아본 것처럼.
언제나 하얀 피부색과 빨간 립스틱이 눈에 띄는 분이었다. 그런데 퇴근길이라 그런지 화장이 다 날아가 평소 내가 알던 피부색과 전혀 달랐고 빨간 립스틱도 지워져있었다. 많이 피곤해보였다. 그럼에도 그 짧은 찰나 그녀를 한눈에 알아봤던 건 그녀가 항상 입는 검은색 모피코트 때문이었다.
그분도 나를 알아봤을까? 나를 보고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건 아닐까. 사실 나도 수정 화장은 전혀 안 하는 터라 퇴근길에 거울을 보면 깜짝 놀라곤 한다.-_-;; 화장이라고 해봤자 파우더랑 볼 터치랑 립틴트 딱 세 개 하는데, 그마저도 귀찮아서 덧바르지 않는 것... '나도 파우더랑 볼 터치 다 날아가서 엄청 피곤해 보이는데. 퇴근길에도 파우더를 한 번 칠해야 하나. 근데 집에 가면 바로 씻을 텐데 뭐 하러?'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그녀는 이미 지하철역 안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아마도 조만간 출근길에 그녀와 또 마주치겠지. 언제나처럼 완벽한 메이크업을 한 모습의 그녀와.
좀 더 자고 싶지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자신에게 최적화된 메이크업을 하고, 늘 입게 되는 옷을 입고, 출근하고, 적당히 일하고, 퇴근 시간 되면 지친 상태로 집으로 돌아오는 하루. 매일 그런 하루를 반복하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그녀도, 나도, 그리고 고단한 하루를 보낸 모든 사람들의 밤이 오늘도 평안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