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벅지가 부실하면 똥배가 나온다

부실한 허벅지가 만드는 건강하지 못한 여섯 가지 지식

허벅지가 부실하면 똥배가 나온다


돈 주고 살은 뺄 수 있지만 돈으로 근육은 만들 수 없다. 반대로 허벅지가 부실하면 세상이 나에게 던져주는 다양한 짐을 지고 버티고 견뎌내는 힘이 없어진다. 내 몸을 지탱하는 하체가 부실해지면 꿈도 야망도 사라진다. 가능성을 찾아 도전하는 일도 멈추기 시작한다. 그저 주어진 일에 안주하며 존재 자체로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한다. 허벅지는 미지의 세계로 지향하는 원대한 꿈을 실현하는 강력한 기관이자 엔진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근육량이 현격하게 감소하는데 그 첫 번째 부위가 허벅지다. 허벅지가 가늘어지기 시작한다는 의미는 노화가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의미다. 허벅지가 얇아지면 포도당 저장 공간이 줄어들면서 피하지방이 뱃살로 몰린다. 부실한 허벅지는 똥배를 불러온다. 똥배가 나오고 허벅지가 부실하면 가분수처럼 상체를 버틸 수 있는 힘이 없어지고 가벼운 일상생활도 귀찮아진다. 설상가상으로 허벅지 근육이 약해지면 치매의 위험성도 높아지고, 저수지의 저수량이 증가하면 많은 비가 와도 홍수를 조절할 수 있듯이 허벅지를 말벅지나 철벅지처럼 단련하면 근육량이 증가하면서 당분을 저장하는 저수량이 증가하면서 혈당조절 능력도 향상된다. 특히 허벅지 둘레는 당뇨병과 연관이 깊어서 허벅지 둘레가 1cm 줄 때마다 당뇨병 위험도가 9% 정도 증가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반대로 허벅지 근육이 부실하면 그만큼 포도당을 분해하는 능력이 없어진다. 실제로 섭취한 포도당의 약 70%를 허벅지에서 소모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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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배가 나오고 허벅지가 부실해지면 당뇨병이나 고혈압은 물론 각종 성인병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없어진다. 2014년 분당 서울대병원의 연구에 의하면 근육이 없는 근감소증 노인의 사망률이 일반인보다 3배 높다고 한다. 특히 대부분의 근육이 몰려 있는 허벅지 근육이 부실해지면 질병 발생률을 높일 뿐만 아니라 질병에 걸렸어도 이를 극복할 에너지를 생산할 원천을 잃는다. 허벅지 근육은 모든 힘의 원천이자 에너지 발생의 출발점이다. 허벅지 근육이 줄어들면 심혈관계 질환의 발병 위험도 증가한다. 허벅지 근육이 없어지면 다른 몸 주위로 피를 더 힘 있게 보내주는 제2의 심장 역할이 줄어들고 그 결과 고혈압을 비롯한 심혈관 질환도 불러온다. 허벅지 근육이 감소하면 거기서 분비되는 남성 호르몬 양도 현격하게 줄게 돼 정력 감퇴, 배뇨 장애, 전립선 질환은 물론 매사에 무관심해지고 무기력증을 불러와 우울증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허벅지가 얇아지면 뼈를 붙잡은 근육력 약화로 관절염 발생률도 높아진다. 허벅지 근육이 두껍고 탄탄하면 허벅지 아래 붙어 있는 무릎으로 가는 충격을 흡수한다. 그만큼 무릎으로 전해지는 충격을 완화시켜 퇴행성 관절염 발병률도 약화시킬 수 있다. 하지만 허벅지 근육이 약해지면 다리에 가해지는 충격을 가장 먼저 무릎으로 받아들인다. 허벅지 근육으로 무릎에 전해오는 충격을 막지 못하고 퇴행성관절염을 불러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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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허벅지가 만드는 건강하지 못한 여섯 가지 지식


허벅지가 부실할 때 나오는 첫 번째 지식은 싸가지(知)다. 싸가지는 네 가지가 없다. 이외수 작가에 따르면 개념, 교양, 양심, 예의가 없는 사람이 싸가지가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여기에 추가해서 싸가지가 없다는 말은 또한 남을 존중해주고, 배려하며, 겸손한 자세로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존중, 배려, 겸손, 감사를 모르기에 희망이나 가망이 없는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한 마디로 싹수가 노란 사람이다. 특별한 이유 없이 밥맛이 없어 보이는 사람, 머리는 좋은 데 타인을 배려해주는 따뜻한 가슴이 없어서 왠지 가까이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싸가지가 없는 사람은 쉽게 교육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소질과 능력이 부족한 싹수는 교육으로 치유가 가능하지만 예의나 버릇은 교육으로 쉽게 고치기 어렵다. 장기간의 자가 치유와 깊은 성찰,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인내가 요구되는 배려로 마음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싸가지는 따뜻한 가슴이 동반되지 않고 차가운 머리로만 만들어낸 논리적인 지식이다. 싸가지는 머리로 이해는 가지만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 지식이다. 지식에 나의 용기와 결단, 철학과 신념이 들어있지 않은 지식이다. 몸이 부실하니 책상에 앉아서 잔머리만 굴린다.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시행착오도 겪어봐야 판단 착오가 줄어든다. 하지만 몸으로 실천할 기력이 없어지니 책상에 앉아서 요리조리 잔머리만 굴린다. 얄팍해진 허벅지로 버틸 수 있는 힘도 줄어든다. 싸가지는 몸으로 터득한 감동적인 지식이 아니라 겉으로 맴도는 밥맛없는 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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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가 얇아지면 나오는 두 번째 지식은 꼬라지(知)다. 싸가지가 그 사람이 보여주는 태도에서 나오는 말인데 비해 꼬라지는 겉으로 드러나는 외모나 모습을 보고 지칭한다. 본래 꼬라지는 ‘꼬락서니’나 ‘꼴’에서 나온 말이다. ‘꼴’은 ‘겉으로 보이는 사물의 모양이나 사람의 모습 또는 행태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꼴을 갖췄다‘는 표현에서 꼴은 좋은 모습을 지칭하지만 ‘저 사람 꼴이 말이 아니다.’, ‘꼴도 보기 싫다.’처럼 쓰이는 꼴에서는 좋지 않은 부정적인 모습이다. 이 ‘꼴’을 더 심하게 말하면 ‘꼬락서니’가 된다. 적당히 맘에 안 들면 ‘꼴’을 쓰고, 정말 불쾌한 언행이 등장해 심기가 몹시 불편한 경우 ‘꼬락서니’를 쓰면 된다. 꼬락서니의 방언인 꼬라지는 남을 얕잡아 보면서 무시하거나 비하할 때 나오는 오만한 지식이다. 꼬라지는 남을 업신여기고 깔보는 오만과 거만한 자세에서 빚어지는 지식이다. 성품도 없어 보이는 데다 겸손하지 않고 얼마 되지 않는 지식으로 남을 깔보기 시작하면 꼬라지가 탄생된다. 꼬라지는 꼴도 보기 싫은 지식이다. 몸이 부실해지니까 책상머리에 앉아서 온갖 잔머리를 굴려 지식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지식에는 그 사람의 철학과 혼, 인격과 정성이 증발되어 있다. 내 몸을 던져 깨달은 체험적 지혜가 없다. 살갗을 파고드는 깊은 감동은 당연히 없다. 허벅지가 튼실해야 내 몸을 던져 나의 체험적 깨달음으로 터득하는 속 깊은 지식을 창조한다. 골이 깊어져야 결도 고와진다. 골수에 사무칠 정도로 처절한 사무침이 없을 때 쉽게 사라지는 꼬라지(知)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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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가 부실할 때 탄생하는 세 번째 지식은 철부지(知)다. 사리분별을 하지 못하고 어린아이처럼 형편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우리말이 바로 철부지다. 철이 없다는 말은 계절의 변화를 모른다는 말이다. ‘철’없이 사는 사람은 계절의 변화를 모르고 천방지축(天方地軸)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과일이 ‘철’을 잊고 아무 때나 나온다. ‘철’없는 과일을 먹어서 사람도 ‘철’이 없다는 이야기도 일리가 있다. 여기서 ‘철’은 세상의 변화를 감지하고 사리를 헤아릴 줄 아는 지혜를 뜻한다. 철을 알려면 오랫동안 계절의 변화를 몸으로 익혀야 한다. 봄이 오면 가장 먼저 변하는 자연현상이 무엇인지, 어떤 꽃이 언제 피는지, 나무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어떤 모습을 바꾸어나가는지 유심히 관찰하고 몸으로 익히다 보면 때가 되었을 때 무의식적으로 몸이 반응한다. 그때가 바로 철이 든 상태다. 철부지(不知)"라는 말이 시사하듯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지 못하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일컬어 철부지라고 한다. 철부지는 상식과 개념이 부족해서 세상 물정을 모르는 지식이다. 세상의 미묘한 변화라도 오랫동안 관찰하면 철 따라 변하는 작은 움직임도 포착된다. 철부지는 알량한 지식으로 세상을 재단하고 평가하려는 무모한 노력에서 비롯된다. 허벅지 근육이 부실해지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현상에서 색다른 깨달음을 얻어내는 인내심이 부족해진다. 허벅지 근육이 얇아지면서 일정한 시간을 참고 기다리는 인내심도 현격하게 줄어든다. 자신이 나서야 할 때를 망각하고 아무 때나 나서서 자기주장을 펼치는 순간 철부지(知)로 각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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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허벅지가 만들어내는 네 번째 지식은 어거지(知)다. 우리 속담에 '콩을 보고 팥이라고 우긴다'는 말이 있다. 사실과 다른 주장을 막무가내(莫無可奈)로 내세운다는 뜻으로, 억지스럽게 고집을 부리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렇게 말이 되지도 않는 것을 맞는다고 우기거나 잘 안 될 일을 무리하게 기어이 해내려고 고집을 피울 때 '어거지'란 말을 자주 쓴다. 남들이기 보기에는 무리수라고 생각되지만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기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남의 입장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주장만 관철시키려는 자세와 태도에서 나오는 지식이 바로 어거지다. 어거지가 나오는 이유는 상대방의 입장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자기 이익을 앞세워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기 때문이다. 주어진 상황에서 어떤 판단과 행동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자기 입장만 고수할 때 탄생되는 지식이다. 어거지가 쌓일수록 대화가 되지 않고 불통이 심화되며 불신의 싹이 자라기 시작한다. 어거지는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킬 수 있는 신념이 부족할 때 자신도 모르게 싹트는 억지 주장이다. 신념은 체력이 뒷받침되면 생기지만 체력이 실종되면 바로 체념으로 둔갑한다. 허벅지 근육은 나의 주장을 밀고 나가는 신념이 싹트는 원천지다. 신념이 없어지면 관념이 고개를 들고 어거지 주장을 근거 없이 펼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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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 근육이 부실할 때 탄생하는 다섯 번째 지식은 노다지(知)다. 노다지는 본래 캐내려 하는 광물이 많이 묻혀 있는 광맥을 뜻한다. 땅속의 노다지 광맥도 숱한 시추와 탐사 끝에 발견되는 고행의 산물이다.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쓰이고 있는 노다지는 손쉽게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 되었다. 힘든 노력을 통해서 얻는 성취감보다 한 두 번의 노력으로 일확천금(一攫千金)을 꿈꾸는 헛된 망상을 지칭하기도 하다. 한두 번의 노력으로 기대 이상의 대박을 꿈꾸는 사람이 노다지를 기대하는 사람이다. 우여곡절과 파란만장, 시행착오와 절치부심을 경험하며 오랜 시련과 역경 끝에 마침내 맞이하는 성취감보다 적은 노력으로 보다 많은 성과를 더 빨리 이루려는 헛된 망상이 낳은 부정적 부산물이다. 노다지는 힘든 노고와 정성을 들이지 않고 한 방에 한 탕을 노리는 부질없는 지식이다. 노다지가 만들어지는 이유는 주어진 기간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하면 신변의 위협을 느끼는 제도적 장치 때문이다. 모든 지식은 문제의식과 열정, 철학과 신념으로 숙성시킨 고뇌의 산물이라는 점을 세상이 기다리고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에 한 방에 한탕을 노리려는 속물주의적 근성이 만들어낸 지식이다. 일정기간 노력을 투입해서 만들어야 하지만 힘이 약해지고 사는 것 자체가 귀찮아질 때 고개를 들고 나타나는 지식이 바로 노다지다. 별다른 노력을 투입하지 않고도 일확천금(一攫千金)을 노리는 허무맹랑(虛無孟浪)한 지식이다. 허벅지가 부실해지면 일장춘몽을 꾸면서 한꺼번에 뭔가를 달성하고 경지에 이르려고 한다. 무리한 요구이자 꿈이다. 꿈을 깨지 않고 요행을 바라기 시작하면 헛된 망상이나 몽상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설상가상으로 몸이 부실해지고 체력이 약화될수록 망상과 몽상은 더욱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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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한 허벅지가 만들어내는 여섯 번째 지식은 답안지(知)다. 힘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빨리 답안지에 정답을 찾아 쓰려고 한다. 답안지에는 주어진 문제에 대한 하나의 정답만 존재한다. 다른 가능성을 제시하거나 대안적인 관점을 제시하는 답안지는 이미 답안지가 아니다. 답안지는 문제를 낸 사람의 의도를 벗어나는 답이 들어있지 않다. 출제자의 의도를 정확하게 꿰뚫고 이에 상응한 정답을 써넣을 때 비로소 빛난다. 다른 답은 틀린 답이다. 내가 원하는 답만이 정답이고 다른 생각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일리가 있는 답은 무리한 답으로 판정된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정답만을 요구할 때 지식은 편협한 의견으로 전락한다. 다른 생각으로 유도하지 않는 답, 하나의 길만이 존재하는 정답을 추구할수록 문제의식은 실종되고 생각은 닫히기 시작한다. 남이 제기하는 문제에 다른 답을 찾아 나설수록 정답을 찾는 인생은 무의미해진다. 답안지가 갖고 있는 치명적인 문제점은 정답은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독단적 발상이다. 그리고 문제나 질문보다 정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익숙해진 우리들에게 답안지를 잘 쓰는 능력은 곧 출세의 지름길로 가기 위한 선결 지식이라고 생각해왔다. 답안지는 고뇌에 찬 결단으로 물든 질문이나 호기심의 물음표 없이 주어진 문제에 대해 고속으로 정답을 찾아가면서 요점만 뽑아 간추린 지식이다.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 성과 달성의 급소, 방대한 지식을 요점 중심으로 정리한 요약판이 판치는 세계에 어울리는 지식이다. 정답이 아니라 현답을 찾아 나서기 위해서는 몸이 따라줘야 한다. 뇌력은 체력에서 나온다.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끈질긴 탐구심이 다양한 가능성의 문을 열어놓고 현답을 찾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다. 부실한 허벅지는 탐구심마저 약화시킨다. 그냥 빨리 주어진 문제가 요구하는 하나의 정답을 찾아놓고 쉬고 싶은 욕망이 지배할 때 답안지는 모험을 거부하고 모범생을 양산하는 온상이 될 수 있다. 세상은 답안지대로 풀리지 않는다. 답안지 대로 풀리지 않을 때 생각해보게 만드는 지식의 원천을 깊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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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벅지가 부실해서 생기는 지식, 싸가지, 꼬라지, 철부지, 어거지, 노다지, 답안지가 만들어지면서 일관된 이미지(知)와 메시지(知)를 전해준다. 다각적인 교육적 노력으로도 쉽게 정화되지 않는 ‘싸가지’와 ‘꼬라지’는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상식 이하의 발언과 행동을 일삼게 만드는 몰지각한 지식이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세상 물정을 모르고 대책 없이 천방지축을 떨며(철부지) 자기 생각만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어거지’를 쓰고 한 방에 일확천금을 올릴 수 있는 일장춘몽(노다지)을 꾼다. 이런 사람에게 답은 딱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고 다르게 생각하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답안지). 허벅지가 얇아지면서 내 몸 하나 간수하기 힘들어진다. 얇아진 허벅지(知)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면서 집요하게 탐구하는 의욕을 상실하게 만든다. 당연히 나만의 철학과 신념을 담아내는 지식보다 편안하게 앉아서 잔머리를 굴리며 세상의 지식을 편집하기 시작한다. 타자의 아픔에 귀를 기울일 경청 여유가 없어지고 마음도 밑바닥을 아픔을 감지하기 어려워진다. 부실한 허벅지(知)가 싸가지(知)와 꼬라지(知)를 만들고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知)를 양산하는 이유다. 몸을 움직여 체험적으로 녹여내는 지식보다 기존 생각을 고수하며 어거지를 부리거나 힘 안 들이고 쉽게 노다지를 캐려는 욕심이 부채질한다. 그렇다 보니 빨리 정답을 찾아 호기심의 물음표를 버리고 탐구 여정에 마침표를 찍으며 답안지(知)를 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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