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온통 시다

가을은 온통 시다.

“이 거리들은

알을 깨고 나오기만 기다리는

한 편의 시다(31-32쪽).”

파리로 여행을 떠난

미국의 뮤지션이자 작가이며 공연 예술가인

패티 스미스(Patti Smith)가 그의 책 《몰입》에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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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생각을 가다듬다

바깥세상이 너무 궁금해지는 순간

창 밖에 펼쳐지는 가을의 향연을 넘겨다보니

한 편의 시를 넘어 우렁찬 침묵 속에서 펼쳐지는

대자연의 웅장한 합주곡이 연주되고 있었다.

칼 베듯 다가온 선선한 가을날,

짙푸르렀던 녹색 옷을 벗어던지고

형형색색으로 물드는 단풍 옷으로

갈아입는 소리가 들린다.


한 생명의 치열함을 남기고

우주의 중력을 견디지 못했는지

어디선가 다가온 바람결에

단풍으로 마지막 삶을 불태우기 전에

어떤 나뭇잎이 떨어지고 있다.

스스로 떨어져야 뒤떨어지지 않음을 알고나 있는 듯.


바람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멀쩡하게 햇볕을 쬐고 있는

나뭇가지를 뒤흔든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안간힘으로 버티는

나뭇잎의 처절한 마지막 몸부림을

가늠하기 어려운 자태를 띤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다.


온몸을 휘감으며 들뜨게 만드는 한낮의 태양,

코 속으로 빨려 드는 공기의 청량함과

눈앞에서 흩날리는 낙엽의 외로운 독무(獨舞)를 바라보노라니

머리는 잠시 판단력을 잃었고

시야는 허공을 향하며

심장은 숨을 죽이는 사이

어느새 땅으로 내려와 납작 엎드려있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이 가을 잠시 갈 길을 잃고

바람결에 엎치락뒤치락 안간힘을 써본다.

비록 바람으로 떨어졌지만

그 바람으로 다시 사라지고 싶지 않은

한 장의 낙엽이 벌이는 사투를 바라보며

낙엽을 떨궈낸 나무의 바람을 들어본다.


봄부터 여름까지 쉬지 않고

조용한 혁명을 거듭하며

달려온 우주와 자연, 그리고 내가 살아온

삶의 순환을 생각하며 다시 나무를 바라본다.


한 눈을 팔아보니

한눈에 반해 눈이 맞았던 가을날 오후,

다른 한 눈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다.

한눈에 반한 가을 전령사의

참을 수 없는 유혹의 무거움에 백기를 들고

눈을 감았다.

가을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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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을 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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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좋아서 읽는 이 책들은

현재의 책들이 아니라 미래의 책이다.

우리가 읽는 문장들은

미래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그러니까 지금 읽는 이 문장이

당신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아름다운 문장을 읽으면

당신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287쪽).”

김연수의 《우리가 보낸 순간, 시》에 나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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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미래를 움직이는 생각을 잉태하기 위해

다시 멀었던 눈과 나갔던 정신을 불러들여

책과 다시 눈이 맞는다.

지금 읽는 문장이 미래의 내 생각을 출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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