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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기다렸다 터져 나오는
울부짖음이다

당신은 기다렸다 터져 나오는 울부짖음이다


내 마음속 환호는 너무 오래 갇혀 지냈다.

- 이윤학의 ‘첫눈’ 중에서 -


‘아직’과 ‘이미’ 사이에서

견뎌냈던 과거가 몸서리치고

힘겨운 현재가 몸부림치며 남긴 어둠의 찬양가,

불안한 미래를 기다리며 너무 오래 희망을 노래한다


뭉게구름이 햇살을 먹고 있어도

찬 서리가 내릴지 모를 불안감에

떨고 있는 풀잎,

너무 오래 밤의 적막에 갇혀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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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글자들이 누르는 무게와

빼곡한 글자들의 아우성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행간의 틈새에서 잠자코 있는 침묵의 단어들,

너무 오래 기다림의 불안감에 갇혀 지냈다


겹겹이 쌓인 세월의 주름과 무게

눈보라와 비바람 맞고도

옷을 갈아입지 않고 아직도 세상을 건너는 신발,

너무 오래 주인의 무게에 짓눌려 살아왔다


얼음과 물 사이에서

표면 장막과 긴장을 틈타 생긴 살얼음,

아무런 예고 없이 슬그머니 변신을 거듭하는 얼음,

너무 오래 불을 멀리하며 뜨거운 사랑을 꿈꿔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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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구름이 비바람의 징검다리를 만나

비구름을 건너는 사이

자기 몸을 부풀리며 낙하 준비를 하는 빗방울,

너무 오래 두려움에 떨며 땅과의 만남을 기다려왔다


늦가을 소낙비를

내복도 입지 않고 견디며

삭풍에 온몸을 떨고 있는 낙엽 한 장,

너무 오래 질퍽한 땅 위에서 시를 쓰고 있다


하얀 거품 가슴에 품고

오늘도 동의 없이 노래 부르다

바위와 부딪치며 산산이 부서지는 파도,

너무 오래 멍든 가슴 움켜쥐고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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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도 입지 않고

땡볕에 몸을 말리다

오랜만에 물에 젖어 흐느끼는 갯벌,

너무 오래 알몸을 드러낸 채 바람에 몸을 말리고 있다


눈보라가 밀려와도 추위에 밀리지 않고

벼락을 맞아도 상처받지 않는 대담함

폭풍에 항거하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담벼락,

안을 지키기 위해 너무 오래 밖을 향해 고함친다


체게바라를 읽고 혁명을 꿈꾸었지만

사르트르를 읽고 실존의 길을 잃었다

소크라테스를 읽고 나 자신을 찾았지만

여전히 묻는 길에서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 철학자들,

너무 오래 철들지 않고 들리는 소음에 괴로움이 말을 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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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곳 잃고 방황하는 갈대,

산 중턱에서 절치부심하던 억새,

둘 사이에 이어진 인연의 줄에

하늘 높이 날던 종달새가 걸어둔 엽서 한 장,

너무 오래 허공에 나부끼며 그리움에 몸을 떤다


주인을 기다린 지 벌써 몇 날 며칠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는 고통의 글자들,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는 불안한 백지,

한 필 붓이 잔뜩 머금은 검은 눈물,

너무 오래 산통을 겪고 있다


새벽하늘을 지키며 글썽이던 눈물

바라보아도 다가오지 않는 외로움

지은 죄가 많아 가슴 졸이는 초승달,

하늘 한 구석에서 너무 오래 기다림으로 수를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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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수록 어두워지는 가벼운 지식과

안간힘을 쓰며 몸에 새긴 무거운 지혜,

길거리 옆에 핀 질경이의 몸부림 하나

이해하지 못하는 허망한 깨달음,

너무 오래 관념의 방 안에서 신념을 키워왔다


한 여름의 열기 속으로 서글픔이 걸어 들어갈 때

시인이 되고 싶은 야망은 붉게 타오르는데

영감을 배달하러 오지 않는 깜깜한 우체부,

들판에 핀 시집을 만나려고 너무 오래 헤매고 있다


달리던 기차가 멈춰 선 정거장에는

발품을 식히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바퀴가 스승이다

나보다 먼저 앞을 가로막으며

다음 목적지를 예감한 바람,

너무 오래 무언의 채찍으로 우리를 길들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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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곳곳에 박힌 별들의 행선지

아직 갈 길이 멀어 서두르는 샛별

하루 종일 서서 앞길을 알려주는 이정표,

너무 오래 표정 없이 밤길에 하늘만 쳐다보고 있다


주소 없이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굳게 입을 다물고 있는 단풍잎,

그 잎 속에 품고 있는 알 수 없는 마음,

너무 오래 시를 찾아 먼 길을 헤매며 줄 달리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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