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와 박사보다 더 높은 학위는 밥사와 술사다
과시는 절반으로 줄이고, 보시는 두 배로 늘린다.
나이 들어 보이는 꼴불견 중 상위가 과시다
자기 과시에 매몰된 사람은 ‘눈엣가시’다. 쉽게 뜯어말릴 수 없을 정도로 구라도 만만치 않고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과시는 자신의 과거를 들먹이며 자랑만 일삼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무시하거나 경시하는 수준을 넘어서 멸시하거나 괄시한다. 자기 관심사 이외에 모든 걸 상관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도외시(度外視)’나 소홀하게 보아 넘기는 등한시(等閑視)’를 갖추면 자기 과시에 필요한 탁월한 기반 능력을 갖춘 셈이다. 자기 과시에 매몰된 사람이 주로 쓰는 안경은 ‘백안시(白眼視)’다. ‘백안시’는 흰자위를 보이며 흘겨본다는 뜻으로,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행동 또는 눈빛을 말한다. 백안시는 그야말로 과시하다 자기 파멸의 길로 빠진 최악의 자세나 태도 중의 하나다. 과시는 ‘백안시’라는 안경을 쓰고 ‘도외시’나 ‘등한시’를 쓸 때가 되면 이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경우나 마찬가지로 최악의 사태로 빠져버린 꼴이 된다.
과시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배움의 끈은 끊어지고 이미 습득한 지식이나 경험으로 자기주장의 정당성을 옹호하려고 한다. 과시는 배움의 욕망을 가로막는 장본인이다. 과시하려는 사람들이 자주 걸리는 병이 수주대토다. 수주대토는 농사를 짓던 농부 옆으로 토끼가 전속적으로 달려가다 나무 밑둥이에 부딪혀 죽는 모습을 본 농부는 농사짓기를 그만두고 토끼가 다시 나무 밑둥이에 부딪혀 죽을 것이라고 가정하다는 인간의 어리석음을 지적하기 위해서 탄생된 사자성어다. 수주대토는 과거의 성공체험을 버리지 않고 환경이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복해서 적용하려는 어리석음을 지칭한다. “현자(賢者)는 역사에서 배우고 우자(愚者)는 경험에서 배운다.” 아놀도 토인비의 명언이다. 진짜 현명한 사람은 주어진 경험이 나에게 던져주는 시사점이 무엇인지를 주도면밀하게 따져 물어본다.
나이 들어 보이는 꼴불견 중의 상위 랭크되는 경우는 과시에 몰두하는 꼰대들이다. 입력은 고장 난 상태에서 출력을 더 강력하게 발설할 때 꼰대의 자기 과시는 극치를 달린다. 과시는 가급적 절반으로 줄이고 평소 눈길이 안 가던 곳을 응시하거나 주시해서 세상을 위해 내가 은혜를 베풀 수 있는 보시(普施)에 관심을 갖는 게 중요하다. 보시에 관심을 가질수록 맵시가 돋보이는 중년의 중후한 미덕이 돋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과시하기보다 ‘묵시(默示)’나 ‘암시(暗示)’를 통해 자신이 뜻하는 바가 ‘넌지시’ 전달될 수 있도록 ‘살며시’ ‘보시’를 베풀 때 말로만 하는 봉사가 아니라 ‘유사시’나 ‘평상시’에 실천을 통해 세상을 바꾸는 ‘실사구시(實事求是)’는 ‘살포시’ 세상 속에서 구현될 것이다. 그러면 세상을 바꾸는 장편의 ‘대서사시’가 탄생해서 ‘지그시’ 눈감고 ‘살포시’ 감상할 수 있는 시적 상상력도 덤으로 생길 것이다. 이런 중년의 여유를 즐기는 오십에게는 존중과 환대의 손길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루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보시하려면 밥사, 술사, 감사, 봉사 학위를 취득하라
우리가 공부하는 1차 목적은 자신이 쌓은 전문성으로 자신의 삶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데 있다. 그런데 우리가 공부하는 더 중요한 목적은 내가 쌓은 전문성을 전문성이 부족한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활용하는 데 있다. 사람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개인적 욕구도 있지만, 남과 더불어 보다 밝은 사회, 함께하면 더욱 즐겁고 신나는 공동체를 구축하려는 이타적 욕구도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관계 속에서 행복을 찾고 추구한다.
따라서 공부를 계속하는 목적도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힘들고 어려운 문제를 함께 해결함으로써 모두가 행복한 공동체를 건설하는 데 있다. 그래서 `학사`와 `석사` 그리고 `박사` 위에 존재하는 더 높은 학위가 있다. 바로 `밥사`와 `술사` 그리고 `감사`와 `봉사`라는 학위다. `밥사`는 함께 일하는 동료를 위해 기꺼이 밥 한 끼 사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는 학위고, `술사`는 힘들 때 고민을 함께 들어주면서 술 한 잔 사는 사람에게 부여하는 학위다. `감사`는 못 가진 것을 가지려고 욕망에 이끌려 사는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에 만족하고 매사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사람에게 주는 학위다. `봉사`는 가진 것을 남과 나누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데 기꺼이 노력하는 사람에게 주는 학위다.
내가 갖춘 전문성도 결국 내가 전문성을 쌓는 과정에서 직간접인 도움을 제공해 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만든 사회적 합작품이다. 사회적 합작품으로서의 전문성을 다른 사람을 위해 기꺼이 사용하는 ‘봉사’야말로 일생일대 취득해야 될 가장 아름답고 값진 학위다. 불교에서는 이런 봉사를 실천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잡보장경》에는 재물이 필요 없이 보시하는 7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무재칠시(無財七施)’가 그것이다.
첫째는 눈으로 하는 보시하는 안시(眼施)다, 눈총 쏘지 말고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눈길을 보내주는 것만으로 서로에게 행복한 인사를 할 수 있다. 둘째는 화안열색시(和顔悅色施) 얼굴로 하는 보시라는 뜻이다. 온화한 얼굴과 미소 짓는 모습으로 인사를 나눠도 더불어 행복해진다. 셋째는 말로 보시하는 언사시(言辭施)다. 말하는 사람의 품격과 언격이 그 사람의 인격을 결정할 정도로 따듯한 온기를 품은 다정한 말로 인사를 나누자. 넷째는 몸으로 하는 보시라는 뜻을 가진 신시(身施)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먼저 일어나 인사하고 악수를 청하기만 해도 다가오는 사람이 행복해진다. 다섯째는 마음으로 하는 보시하는 심시(心施)다.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이심전심으로 통한다는 느낌만 받아도 행복해진다. 여섯째는 자리를 양보하는 보시라는 뜻의 상좌시(床座施)다. 빈자리가 생기면 먼저 앉기 전에 나보다 힘들고 불편한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미덕을 보여주면 서로에게 행복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 일곱째는 잠자리를 보시한다는 방사시(房舍施)다. 먼 곳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방석을 내주고 묵을 곳을 기꺼이 내주는 것도 보시가 된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무엇보다도 먼저 오늘은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기쁨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라.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