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는 혈투를 부르지만 질문은 관문을 열어간다
질투는 절반으로 줄이고 질문은 두 배로 늘린다.
질투심에 불타는 고군분투(孤軍奮鬪)는 혈투를 부를 뿐이다
천부적 재능이나 내가 지니고 있지 않은 탁월한 능력을 갖고 태어난 사람을 시기하는 질투는 결과적으로 절망감이나 열등의식을 갖는데 이런 현상을 심리학적 용어로 ‘살리에리 증후군(Salieri Syndrome)’이라고 한다. 살리에리 증후군은 1984년에 개봉된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유래된 말이다. 영화 속 주인공인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태어난 모차르트와 달리 꾸준한 노력으로 정상급 대열에 오른 음악가다. 사실 모차르트보다 세상의 명성을 얻었던 살리에르지만 모차르트가 지니고 있는 천부적 재능을 늘 부러워하고 질투하면서 절망적 생활을 이어간다. 그는 늘 ‘신이시여! 어찌하여 제게는 귀만 주고 손은 주지 않으셨나이까?’라고 절규하며 울부짖는 삶을 살수록 불행의 나락으로 빠질 뿐, 모차르트를 능가하는 능력과 명성을 얻지는 못한다
살리에르는 모차르트와 비교하는 질문을 던질 것이 아니라 자신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재능으로 탁월한 음악가로 변신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거듭해야 되는지를 자문하는 질문을 던져야 했다.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나 존재목적을 근본적으로 물어보는 질문(質問)이 없는 삶, 질의(質疑)가 없는 삶은 마땅히 질책(叱責)이나 질타(叱咤) 받아야 한다. 삶의 목적과 자기의 존재이유에 대한 질문 없이 질주(疾走)하다 속도감에 못 이겨 질식(窒息)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에 던지는 질문에 답하지 않고 질질 끌려다는 삶은 병든 삶이나 마찬가지다. 질풍노도(疾風怒濤)의 청춘시절을 지나 인생 후반전을 준비하는 사람은 남과 비교하는 질문으로 질투심을 불태울 게 아니라 내가 하면 행복한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 탐구하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질투심에 불타는 고군분투(孤軍奮鬪)나 악전고투(惡戰苦鬪)는 혈투를 반복할 뿐이다. 성찰을 지향하는 질문보다 남과 비교하는 질문은 오히려 질투심을 유발하고 극심한 경쟁심을 자극하여 결국 심각한 자기 파멸의 길로 빠질 뿐이다.
성공한 사람의 결과만을 보고 질투(嫉妬)하거나 남을 밉게 보는 질시(疾視) 또는 흘겨보는 질시(嫉視)도 마땅히 질타(叱咤) 받아야 마땅하다. 남의 약점에는 질끈 눈감아 주는 미덕을 갖고 가능하면 강점과 재능을 보고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다. 이걸 거꾸로 하는 사람은 질색(窒塞)이다. 진정한 리더는 혼돈스러운 시기일수록 시류에 휘말리거나 남을 탓하기보다 우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밖에서 위기를 극복할 대안을 찾기보다 안에서 답을 찾는다.
‘질문’이 ‘관문’을 바꾼다!
지금부터는 정답을 찾아내는 모범생의 노력보다 그 누구도 던지지 않은 전대미문의 질문을 디자인하는 모험생이 필요하다. 당신은 지금 뛰는 가슴을 멈추게 만드는 질문 앞에 정답을 찾고 있는가? 아니면 잠자는 심장을 흔들어 깨우는 낯선 질문 앞에서 새로운 관문을 찾아 나서려고 고뇌하고 있는가? 당신은 출제된 문제 앞에서 정답을 찾기 위해 골몰하는 해결사인가? 아니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난생처음의 문제를 출제해서 세상을 편지풍파로 몰아넣는 문제아인가? 지금은 정해진 답을 찾아 나서는 공부보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은 불확실 세상의 파고를 헤쳐 나갈 전대미문의 질문이 필요한 시기다.
앞문이 막히면 질문을 던져 옆문과 뒷문으로 나가면 된다. “해답은 질문 속에 있다.” 영화 파인딩 포레스터에 나오는 대사다. 늘 다녔던 앞문이 갑자기 막힌 상황에서 방법을 찾기 위해 옆문에게 물어보았다. “가끔은 옆길로 새면 생각지도 못한 샛길도 있고 돌아가는 길이 빠른 길이라고.” 옆문은 한 마디 더 했다. “진퇴양난(進退兩難)의 위기는 없다고. 앞으로도 못 가고 뒤로도 못 가면 옆으로 가면 된다고,” 사실 옆길로 새다가 우연히 만난 길에서 내가 걸어갈 길을 만나는 경우도 발생한다.
이번에는 뒷문에게 물어보았다. 뒷문이 인생의 또 다른 지혜를 알려주었다. “일보후퇴(一步後退)하는 길이 이보전진(二步前進)하는 길이라고.” “앞으로 가는 것만이 능사(能事)가 아니라 가끔은 마음을 비우고 뒤로 물러나는 길이 내 앞의 난적을 물리치는 길이라고.” 모두가 힘들고 말문이 막히는 상황, 전대미문의 질문으로 전인미답의 관문을 열어 가면 어떨까. 남이 만든 문제의 정답을 찾는 능력보다 누구도 던지지 않는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한 사람의 수준은 대답이 아닌 질문 능력으로 판단할 수 있다.” 프랑스의 계몽사상가 볼테르의 말이다.
인생 중반전을 넘어서면 이제까지 당연하게 믿어왔던 신념이 혹시 낡은 통념은 아닌지를 심각하게 따져 물어봐야 한다. 기존 지식과 경험으로 대답을 제시하기보다 어제와 다른 질문으로 낯선 세계를 향하는 설렘의 질문이 인생 후반전을 행복하게 만드는 비결이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세 가지 질문이 있다. 바로 톨스토이의 세 가지 질문이다. 첫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때는 언제일까? 둘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일까? 셋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일까?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은 지금 당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전화해서, 맛있는 밥 한 끼 나눠먹는 일을 하는 것이다. 질투하고 시기하기보다 낯선 질문을 던져 놓고 그 질문의 대답을 찾아 나서는 길 위에 우리가 꿈꾸는 일상의 작은 행복이 널려 있다.
“물음의 역량은 물음이 향하는 대상은 물론이고 그에 못지않게 묻고 있는 자를 위험에 빠뜨리고, 또 자기 자신을 물음의 대상의 위치에 놓는다”(424쪽).
- 질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 질 들뢰즈(지음), 김상환(번역)(2004). 《차이와 반복》. 서울: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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