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눈총'은 절반으로 줄이고,
‘눈길’은 두 배로 늘린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총은 눈총이고, 세상에서 가장 따듯한 길은 눈길이다

눈총은 절반으로 줄이고따듯한 눈길은 두 배로 늘린다

     

눈치 주면서 눈총 쏘면 은총 받을 수 없다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눈치 주는 사람, 눈총 쏘는 사람, 눈빛이 빛나는 사람, 눈물 흘리는 사람. 눈치 주고 눈총 쏘는 사람보다 눈빛이 빛나고 감동해서 눈물 흘리는 사람이 세상을 이끌어간다. 누군가 눈치를 줄 때 상대는 눈치를 본다. 상황에 흐르는 맥을 잘 짚어내는 능력이 바로 눈치다. 하지만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다른 사람의 눈을 쳐다보며 망설이는 눈치는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남의 눈치를 본다는 이야기는 그 일의 성패 여부가 다른 사람의 평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눈치를 보면 자신감을 갖고 몰입하지 못하는 이유다. 그러니 오십 후반전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급적 눈치 주는 사람보다 따뜻한 눈길을 주는 사람으로 거듭나야 한다.


여러분은 지금 눈치 보게 만들고 눈총 쏘는 사람인가. 아니면 뜨거운 눈빛으로 자기 일에 열정적으로 몰입하면서 감동적인 눈물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인가. 남의 눈치 보는 사람은 진정한 나의 가치를 발견할 수 없다. 눈치 보는 사람은 늘 골치가 아프다. 다른 사람의 눈에 어떻게 보이면 좋을지 상대의 입장에서 상상력으로 생각하는 노동을 한다. 눈치 보는 사람은 자기 특유의 기치를 발휘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사물이나 현상의 이면에 흐르는 이치를 파악하지 못한다. 당연히 눈치 보는 사람은 자기만의 특이한 아우라에서 은은히 퍼지는 운치가 없다. 눈치 보는 사람은 자기 삶을 다른 사람에 맡겨놓고 신탁통치를 받는 사람이나 다름없다. 당연히 눈치 보는 사람은 자기 가능성을 최고도로 끌어올리면서 성취감을 맛보는 피치를 올릴 수도 없다. 다른 사람에게 눈치 주고 눈총 쏘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은총 받을 수 없다. 



사람의 심리는 눈빛에 나타난다. 심기가 불편하면 가장 먼저 눈빛으로 표현된다. 기분이 좋아지고 가슴이 뛰면 눈빛에 윤기가 흐르고 감동의 빛이 역력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빛은 햇빛도 아니고 달빛도 아니다. 눈빛이다. 대학원 제자들을 나는 가르치지 않고 가르친다. 너를 믿는다는 따듯한 눈빛과 스스로 깨우칠 때까지 기다려준다는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제자를 믿는다는 눈빛에는 제자를 사랑한다는 믿음이 함께 담겨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지혜는 혼자 터득하는 것이다. 깨우침이 없는 가르침은 피뢰침보다 더 치명적이다. 스스로 깨우치는 과정을 지켜보고 무언의 신호를 보낸다. 너는 지금 아주 잘하고 있다고.


이는 회사 조직에도 적용된다. 탁월한 리더는 팀원의 마음을 눈빛으로 읽고 눈빛으로 말해준다. `난 너를 믿는다` 눈빛으로 말하고 무언의 신뢰를 보낸다. 믿음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들고, 한계상황에서도 돌파할 수 있는 용기를 주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의 빛을 준다. 팀원을 몰입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눈총`주지 말고 널 믿는다는 신뢰의 `눈빛`으로 말해야 한다. `눈총`은 소리 없이 팀원을 죽이지만, `눈빛`은 소리 없이 팀원의 가슴을 뛰게 만든다. ‘눈총’은 불신의 신호지만 ‘눈빛’은 신뢰의 상징이다. 팀장이 ‘눈총’을 주면서 강제로 총대를 메라고 하지만 정작 ‘눈총’ 받은 팀원은 총기를 잃고 마지못해서 일에 임한다. 일의 성과도 없을뿐더러 신이 나지 않는다. ‘눈총’은 총 중에서 가장 힘이 없는 총이지만, 상대의 기를 꺾어버리는 가장 강력한 총이기도 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빛은 눈빛이다


`눈(雪, snow)`이 오면 세상이 하얗게 변하듯 기존 타성과 통념, 고정관념과 관습의 눈에서 벗어나 새로운 `눈(目, eye)`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눈(雪, snow)`을 아름다운 설경(雪景)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目, eye)`을 바꿔야 한다.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바꾸지 않고, 설경을 아무리 바라보아도 설경은 황홀경(恍惚境)의 마음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안목(眼目)과 혜안(慧眼) 모두 세상을 바라보는 남다른 눈으로 만든 식견과 통찰이다. 새로운 대안을 고안하려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잡는 착안(着眼)을 기반으로 심미안(審美眼)을 개발해야 한다. 머리에 붙어 있는 육안(肉眼)이나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뇌 안(腦眼)만으로는 세상을 이전과 다르게 보는 묘안(妙眼)이 생기지 않는다. 마음의 눈으로 타자의 아픔을 감지하는 심안(心眼)을 갖고 있어야 상대의 아픔을 따듯한 눈길로 보듬어 줄 수 있다.  


따듯한 눈빛은 주지 못할망정 눈총이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도 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총은 `눈총`이고 살아가면서 찌지 말아야 될 살은 `눈살`이다. 세상에서 가장 미끄러운 길이지만 동시에 가장 낭만적인 길은 `눈길`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매는 `눈매`다. 낭만적인 눈길에서 아름다운 눈매를 자랑하는 아름다운 사람은 `눈사람`이다. 세상에서 가장 독한 독은 `눈독`이고 세상에서 가장 슬프기도 하지만 기쁜 감동적인 물은 `눈물`이다. 세상에서 가장 보기 싫은 꼴은 `눈꼴`이고 세상에서 가장 치사한 짓은 `눈치` 주는 행위다. ‘눈치’ 주면서 눈살 찌푸리는 관계는 가급적 줄이고 ‘눈빛’에 담긴 심장의 열기로 눈길을 주는 사람과 만나자. 



얼굴은 그 사람의 ‘얼’이 ‘굴’로 파여서 생긴 흔적의 산물이다. 아직 얼이 성숙되지 못해서 어린아이에 머물러 있고, 얼이 성숙되면 어른이 된다. 오십을 살아왔으니 살아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얼이 희로애락을 겪으면서 삶의 결이 골로 파였을 것이다. 그게 바로 오십이 품고 있는 얼굴의 진면목이다. 얼이 제대로 들어차지 못한 얼빠진 어린애 같은 어른도 있다. 얼에는 한 사람이 품고 있는 영혼이나 넋, 상대를 생각하는 존중과 환대, 다른 사람을 맞이하는 자세와 태도가 그대로 반영된다. 그것이 겉모습으로 드러날 때, 얼굴표정, 눈매, 눈길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후반전을 살아가는 오십 중년에게 인생의 여유로움과 너그러움이 묻어나는 얼굴도 애쓰는 노력으로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눈꽃`이 피는 한 엄동설한의 겨울이 되어도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이심전심의 `눈빛`만 있어도 `감동`의 눈물을 흘리면서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 있다. `눈총`을 주면 `눈치`를 보고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 `눈매`가 달라진다. 엉뚱한 것에 흑심을 품고 `눈독`들이다 남을 ‘모독’하거나 치명적으로 ‘중독’되어 헤어나기 어려운 난국에 빠진다. `눈꼴` 사나운 일 당하지 말자. 어렵고 힘든 시기일수록 `눈총` 주면서 `눈살` 찌푸리게 하지 말고 따뜻한 `눈매`에서 나오는 `눈빛`으로 무언의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자. 



“나는 보는 법을 배우고 있다.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모든 게 지금까지 보다 더 내면 깊숙이 파고들어 과거에는 항상 끝났던 곳에 이제 머물러 있지 않는다. 옛날에는 알지 못했던 깊은 내면이 생겼다”(11-12쪽).

-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테의 수기》 중에서 -


교보문고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1197551

예스  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3400339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8606364&start=slayer

이전 12화 티칭은 절반으로 줄이고, 코칭은 두 배로 늘린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