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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분’ 속에 ‘전체’가 들어있다

개조심보다 더 조심해야 될 것은 인간 조심이다

‘부분’ 속에 ‘전체’가 들어있다


‘후랙탈(fractal)’이라는 전문용어가 있다.

‘자기 유사성’으로 번역되는 이 말은

부분을 보면 사람이나 현상의 전체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하거나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한 알의 모래알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수를 꿈꾸며〉를 생각해본다.



다양한 사람과의 인간관계 속에서

인간의 진면목을 보고

한 인간의 사소한 언행 속에서

인간적 미래가 추구할 이상향을 본다.


참으로 다양한 사람을 만난다.

만나는 사람의 한두 가지 언행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비록 그 사람의 일부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말과 행동이지만 그 속에는

그 사람의 심리와 성격과 인성이 무의적으로 담겨 있다.


비록 수많은 언행 중에 극히 일부분 일지 모르지만

그 일부분의 언행에도 그 사람이

의도적으로 인식하는 의식과

의도적으로 뭔가를 지향하는 의지가

자신도 모르게 표현된다.


자신도 모르게 표현되는 언행 속에

자신의 진면목이 숨어 있다.

강의를 다양한 곳에서 하다 보니

저마다의 특징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수많은 교육담당자를 만난다.


강의장에 도착하면서 만나는 진행자의 표정과 자세,

그리고 교육장 분위기를 보면서

직감적으로 ‘후랙탈’의 원리를 생각한다.

자주 경험하는 장면이 있다.

강의장에 도착하자마자 교육담당자자가

강사료 증빙을 위해 작성해야 될 서류가 있다면서

급하게 작성해야 되는 빈칸을 채워달라고 요구한다.


주소와 계좌번호, 주민번호와 연락처 등등을

채워 넣으면서 오늘 교육담당자는 수준 이하라고

마음속으로 이미 평가를 내린다.


어떤 강의장에는 도착하면 담당자는 없고

교육생만 간간히 앉아 있는 경우도 있다.

전화를 해도 받지 않는다.

노트북을 세팅하고 있으면 어디선가 헐레벌떡 달려온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지 않은 곳의

기업과 담당자는 대체로 사회적 평판도 좋지 않다.

후랙탈의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


담당자의 작은 행동 하나가

그 사람의 일면을 전면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이지미도 어렴풋하게 짐작이 간다.

또 어떤 경우에는 강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와중에도

담당자는 온 데 간 데 없어서 좋지 않은 기분으로

쓸쓸히 강의장을 빠져나오는 곳도 있다.


강의가 끝나고 한참을 이동하고 있을 때 전화가 온다.

가시는 걸 보지 못해서 죄송하다고.

그리고 전화를 끓으면서 남는 진한 여운은

다시 후랙탈의 원리를 생각나게 만든다.

전화 한 통에 담긴 그 사람의 인격과

그 사람이 몸담고 있는 조직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간곡한 부탁을 들어준다.

내가 부탁에 응할 수 있도록 상대방은 정성을 다해

자세를 낮추고 필요한 조치를 다 취한다.

그렇게 바쁜 일정을 조정해서 원하는 행사에 참석하고 나면

그때부터 나는 찬밥신세가 되는 느낌을 받는 경우도 있다.


행사를 성황리에 마친 당사자는 잠시 자기도취에 빠진다.

덕분에 행사를 성황리에 마친 것이 아니라

본인의 노력으로 대성황을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행사가 끝난 후에 보여주는 자세와 태도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보여주는 행동은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


돌아갈 시간이 임박해도 당사자는 보이지 않는다.

헐레벌떡 나타나서 갖은 핑계를 들러대는 듯한

부산한 모습과 위장된 가식적 행동의 이면을 본다.

깊은 인간적 공허함과 형언할 수 없는 허망함을 달래며

애써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정심을 찾아본다.


눈에 보이게 진심이 실종된 모습이 보이고

진정성은 이미 멀리 사라진 지 오래다.

작은 행동 하나에 담긴 한 인간의 전체 모습,

후랙탈 원리는 진리라고 생각한다.


갈급한 부탁에 전후좌우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없는 시간을 쪼개서 도움을 주기 위해 시간을 낸다.

때마침 산더미같이 쌓인 일거리에

짧은 시간이라도 여유 시간을 내기 어렵지만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측은지심이 앞선다.

없는 시간 쪼개서 내가 할 수 있는

시간과 노력을 최대한 쏟아부으며

상대방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도움을 준다.

목적이 달성되는 시점에 이를수록

서서히 그 사람의 진면목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드디어 원했던 목적이 달성되고

더 이상의 도움이 필요하지 않을 때

그렇게 갈구했던 도움의 손길은

이제 먼 길을 떠난 지 오래다.

갈급함과 간절함의 정도는 이미

저만큼 바닥을 기고 있음을 느낀다.


필요가 충족될 때 필요 없음으로 바뀌는 인간관계는

필요가 생기지 않는 한 불필요한 인간관계로 전락한다.

인간관계를 맺어가는 한 사람의 작은 언행에서

후랙탈의 진리를 엿보는 가을밤이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사람만이 희망임을 느낄 때

한 사람의 작은 배려와 마음 씀씀이로 감동받고

또 한 사람의 가슴이 먹먹해질 때

형언할 수 없는 인간미의 무한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그런 사람과 술 한 잔하고 싶은 가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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