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은 길 위의 고독한 문장

젖은 길 위의 고독한 문장

젖은 길 위의 고독한 문장


비에 젖은 보도블록은 질문을 몸속에 품고

지친 신발 밑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한 걸음으로 달려온 시간의 그림자를 비춘다.


희로애락으로 물든 붉고 누런 외벽들이

좁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의 문자를 붙들고

바삐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게 물어본다.


하소연을 품고 걸어가는 한 사람은

영원한 이방인의 물음표에 비추어

찢어진 시간의 외투를 입고

지금 이순간을 살아가는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어깨를 스치는 타인들의 바쁜 걸음은

힘겨운 눈물의 물레를 돌리며

어느덧 배경음악처럼 아득해지고

파란 점퍼 아래 숨죽이며 기다리는

묵직한 고독만이 우렁찬 침묵으로 골목길을 메운다.


복잡했지만 단순한 앎으로 다가오는

삶의 진리가 끊임없이 말을 걸어오지만

이해할 수 없는 의문만이

침묵으로 대답하는 법을 배운다.


낯선 골목의 끝에서 마주할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슬픔의 곡선 속에서 아름다움을 잉태하다

아직 모르는 미지를 만나 먼산을 바라보다

여태 모르는 무지에게 아직 태어나지 앎을 전한다


신발 끝에 닿는 차가운 현실의 감촉과

공기 중에 섞인 이름 모를 관념이

불타는 저녁 노을의 대장간에서

매번 처음 만나는 오늘의 이 순간을 노래한다.


길을 잃어야 낯선 길과 조우하듯

시선은 낯선 사물과 마주치며

앞으로 걸어간 지도보다

수천 개의 길이 별처럼 흐르는

예감할 수 없는 지형에서 발길을 멈춘다.


- 2026.1.28.일 나폴리의 어느 골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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