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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밥이 뭐길래

완두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비건의 시선

   지난 9월 결혼식을 했다. 나의 결혼식은 결과적으로는 매우 아름다웠고 감사한 기억이지만 마치 혼자서 도맡아 하는 조별 과제 같았다. 착하고 순수하고 귀엽지만, 항상 마음과 말이 급한 우리 남편은 ‘나’라는 믿을 구석에 다리를 뻗었다. 나는 뭔가를 계획하고 해내야 할 의무를 다하는 것을 늘 거부하고 싫어해 왔지만, 나보다 더 한 다른 무계획자 앞에서는 누구라도 하기로 결심한 일을 해야만 했다. 이놈의 결혼식, 빨리 끝나기를 바랐다. 바쁜 일상에 추가된 마감에 마감을 코에 받쳐 쳐내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우리처럼 밀린 숙제를 겨우겨우 해내는 학생처럼 결혼식을 하는 이들도 어딘가는 있을까?


   결혼을 하면 배우자와 혹은 양가 부모님과 싸우게 되는 경우는 아주 흔하다고 한다. 흔히들 생애 마지막 효도를 한다 다짐하며 이를 악물고 견뎠다고 말했다. 나의 경우에는 상견례를 준비하며 겪었던 약간의 당혹스러웠던 일을 제외하고는, 신랑이 아닌 그의 가족과는 특별한 마찰이 없었다. 비건을 지향하는 나는 상견례 장소로 어느 사찰음식점을 예약했었다. 그곳의 모든 음식은 비건이었고, 사적인 대화를 나누기 좋게 공간은 독립적이었고, 분위기도 고급스러워 상견례 장소로 적당했다. 종교가 없는 나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지만, 시댁에서 종교의 문제로 조심스럽게 그곳에서의 식사가 불편함을 내비쳐 급하게 다른 장소를 찾느라 당황했던 일 말고는 이렇다 할 큰 문제는 없었다.


   문제가 있었다면 앞서 언급했던 나의 배우자의 나에 대한 믿음과 떠넘김이랄까? 하지만 내가 책임지고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고 해서 ‘그는 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알아서 찾지 않을까?’하는 약간의 불만은 있었지만 사실상 괜찮았다. 맞아 이만하면 완만하고 순조로운 결혼식 준비였다.


   허나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말처럼 문제점은 가까운 곳에 예기치 못하게 있었다. 문제는 바로 나의 아버지. 늘 나와 싸우는 데다, 매사 무관심하고 쌀쌀맞은 나의 아버지. 내가 비건을 지향하기로 했다고 아주 어렵고 조심스럽게 가족들에게 말을 꺼냈을 때도 그는 늘 그렇듯 무관심했다. “넌 항상 이상해서 언젠가 그럴 줄 알았어, 남에게 강요하지만 않으면 괜찮아.”와 같은 상대를 존중하면서도 자기중심적이기만한 요상하게 기분 나쁜 말을 했었다.


   내가 비건을 지향하고, 어떠한 이유로 느닷없이 결혼을 결심하고, 빠르게 혼인신고를 해도, 그는 늘 그렇듯 싱겁게 이에 대해 별 의견이 없었다. 그것은 나의 영역이라 생각했던 걸까? 우리 집에 결혼 승낙을 받으러 간 나의 남편은 나의 부모님 앞에서 눈물이 나왔다가, 그 상황에서도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는 나의 무관심한 아버지 때문에 나오던 눈물이 쏙 들어갔었다.


   혼인신고는 내 맘대로 빨리했지만 결혼식은 망설였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바닷가 어느 해변 모래사장 위에서 낭만적이게 하는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있었지만, 나이를 먹어가며 결혼도 결혼식도 불필요하고 의미 없고 초대받는 것마저 아주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결혼식을 다들 왜 하는지. 억지로? 혹은 해야만 한다 생각해서 하겠지? 나는 결혼식을 그다지 원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우리 둘이 앞으로 잘 사는 것이 중요하지, 결혼식이라는 이벤트는 일종의 자랑과 사치로 느껴졌다. 더군다나 나에게는 밥이 문제였다.


   내가 원하든 아니든 나로 인해 다른 이들이 초대받아 축하해 주고, 나로 인한 어떤 일로 누군가의 죽음이 소비되는 일을 원치 않았다. 아예 모르면 몰랐지 알게 된 이상, 나의 즐거움을 위한 다른 존재의 슬픔과 고통 그리고 죽음은 나에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결혼을 그다지 하고 싶지 않았던 나는 결혼식 식사를 위해 흔치 않은 비건 뷔페를 알아보고 말고 할 것 없이 결혼식은 깔끔하게 그냥 안 하고 싶은 일이었다.


   결혼을 결심하고, 혼인신고를 한 후에 나의 배우자는 결혼식을 굳이 하고 싶지 않다는 나의 뜻을 존중했지만, 양가 부모님은 작고 소박하게라도 식을 올리기를 바랐다. 나는 서울시 공원에서 소규모로 하는 작은 결혼식, 식사가 아예 불가능해 나에게는 오히려 좋은 친환경 공원 결혼식을 찾았다. 양가 부모님에게는 ‘가뜩이나 말 안 듣는 애들이 그나마 결혼식을 하겠다는 게 어디냐.’라는 인식이 있었다.


   평소 허례허식이 많아 다른 이들에게 있어 보임을 즐기는 아빠에게 식사가 없는 친환경 공원 결혼식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을 때, 아빠는 예상외로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며 나에게 호언장담을 했다. 그는 “결혼식에 식사가 없어도 된다. 그 점은 전혀 걱정하지 말라.”하며, “식이 끝나고 모두를 데리고 고깃집에 가면 된다.”라고 말해서 나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그러기만 해 봐라. 내가 그것 때문에 결혼식을 안 한다는 건데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말이냐.”하고 길길이 날뛰었더니, 늘 그렇듯 혼자 술을 마셔 약간 기분이 좋았던 아빠는 “알았어, 알았어~ 안 그럴게. 걱정 말고 네 맘대로 결혼식 해.”라고 말했더랬다. 그가 얼마나 아무것도 모르는지 내가 조금 더 현명하게 눈치를 챘어야 했을까?


   그는 그런 점은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내가 왜 더 이상 육식을 하지 않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 결혼식에는 그러지 않기로 한 그의 말을 믿었다. 나는 식사가 없는 대신 어차피 쓸 돈이 지역 여성 농민들에게 쓰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동물 착취가 없고 비건이면서도 로컬 친화적인 결혼식 답례품을 나의 옷과 메이크업, 웨딩 촬영보다도 더 열심히 찾았다. 지역의 여성 농민들이 직접 생산하고 유통하는, 유리병에 담긴 국내산 생들기름을 주문했고, 돈을 오히려 더 쓰더라도 스티로폼 박스에 담는 택배 배송보다는 종이박스에 담을 수 있는 용달로 배송을 시켜서 준비했다. 결혼식 당일 하객들이 마실 음료도 기존의 우유 음료를 오트 밀크로 만들 수 있도록 요청했고, 일회용 플라스틱 컵이 아닌 머그잔에 제공하기로 했다. 결혼식 당일 아침까지도 혹여나 그 머그잔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혀있지는 않을지 나의 메이크업보다도 플라스틱 사용이 없도록 더 신경 썼다.


   결혼식에서는 미리 준비한 답례품과 비건 음료로 식사를 대신하기로 했고, 먼 길을 오신 각자의 가까운 친지들과만 따로 식당을 잡아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다. 결혼식 전날 아침, 엄마는 말이 안 통하는 아빠 때문에 힘들고 곤란하다고 하셨다. 아빠는 식구들을 데리고 자신의 지인이 하는 돼지갈빗집에 가겠다고 했고 엄마는 그거는 아닌 거 같다, 내가 들으면 속상해할 것 같다고 했다. 아빠는 내가 그 장소에 가지 않는데 뭔 상관이냐며, 나 하나 때문에 모두가 고기를 못 먹는 거냐고 말했다. (당시 나와 내 남편은 결혼식 다음 날 아침에도 일찍 일을 하러 가야 해서 결혼식 이후에 바로 집에 가기로 했다.) 엄마는 아빠가 전혀 말이 안 통하고 꼴통같이 굴어 걱정이라 전했다.


   결혼식 전날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화가 치밀었다. 어떻게 마지막까지 나한테 그럴 수 있는지, 배신감에 얼굴이 뜨거워졌고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우선 일을 해결해야 했기에 당장 내일 저녁에 스무 명 이상의 예약을 받을 수 있는 채식 위주의 한식집을 찾아 예약했고(완벽하게 비건 식당도 아니었다.) 일을 마치고 부모님을, 아빠를, 만나러 갔다. 본가에 가서 나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결혼식 이후에 다른 가족들과 함께 고깃집에 간다는 말을 들었어. 내가 다른 한식집에 예약을 했으니 내가 예약한 곳에 갔으면 좋겠어. 결혼식을 하기 전에 나한테 어쩌면 제일 중요했던 것은 육식이 없는 식사였고, 이미 합의가 된 내용이잖아. 그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이렇게 결혼 준비를 하고 있는데, 나는 너무 속상해. 나에게 사과를 해줬으면 해.”


   하지만 그는 되려 나에게 화를 냈다. “그래, 알았다.”하며, 내가 예약한 그 집에 가겠다며, 그러면 됐냐고. 네가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해서 모두가 고기를 먹으면 안 되는 건지. 동물권인지 뭔지 너나 열심히 하라고. 동물권이라는 단어가 그의 입에서 나오는 게 놀라웠고 나는 화가 났다.


   ‘내가 못 먹게 한다고? 정말로 내가 못 먹게 했으면 당신이 매일매일 밖에서 먹는 식사에서 내가 먹지 말라고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나? 내가 앞서 걱정해서 나의 결혼식을 결정하기도 전에 미리 서로 약속을 했던 부분이지 않아? 왜 이제 와서 그런 적 없다고 거짓말을 하는 거야? 이럴 거면 나는 결혼식을 준비하지 않았어. 나 빼고 모두가 원해서 이 결혼식을 하잖아. 근데 나만 이 결혼을 준비하잖아. 내가 지켜달라고 한 그 유일한 약속도 나는 존중받지 못하잖아. 이럴 거면 그냥 하지 말지. 나는 하고 싶지 않았어. 나한테 사과해. 미안하다고 사과해.’


   그놈의 한 끼 밥 사건에 대해, 그가 나에게 몰랐다고, 그것이 나에게 그렇게까지 상처 줄 일이라는 것은 미처 몰랐다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길 나는 바랐다.


   결혼식 당일 식이 마칠 무렵, 나는 지난 모든 일이 홀가분했고, 진심으로 우리의 결혼식을 축하해 준 하객들에게 감동받고 감사해서 활짝 웃으며 기쁘게 춤췄다. 나는 생각보다 많이 즐거웠다. 내 지인들에게 감사하여, 하기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결혼식의 어떤 숭고함과 감사함에 대에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식의 제일 마지막에 우리 엄마, 그리고 그다음에 우리 아빠를 안았을 때, 내가 참지 못하고 엉엉 운 이유는 그날 하객들은 아무도 몰랐겠지. 그가 너무 미워서 울었는지는. 그의 기분 좋고 뿌듯한 얼굴이, 또 아무렇지도 않은 그 얼굴이 너무나 미웠다. 결혼식 전날, 당일까지도 맨날 먹는 고기 밥상, 그놈의 밥이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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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두


환경 공부를 하다가 비거니즘을 알게 되고 실천한 지 5년 정도 된 완두입니다.

도자기를 만들고 수업을 하며 살고 있고, 뭔가를 만들고 배우는 것을 좋아합니다.

최근에는 결혼을 했고,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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