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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사랑한다면 먹을 수 있을까

민선 / 2022 소소기록 희망의숲 청년 비건의 시선

   나는 그날, 어떤 것은 먹고, 어떤 것은 먹지 않는다는 것이 무심한 폭력과 지극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달았다.


   2022년 1월 14일, 살을 에는 추위가 이어지던 겨울날이었다. 나와 몇몇 이들은 어떤 트럭을 한없이 기다렸다. 트럭이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도. 우리가 찾아간 곳은 화성의 한 도살장 앞이었다. 우리는 트럭에 실려오는 소와 돼지들을 만나기 위해 새벽부터 모였다. 고깃집이 즐비한 도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외딴곳에 위치한 이 도살장에서는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도로변까지 울려 퍼졌다. 검붉은 피와 이를 희석하기 위한 화학약품들이 뒤범벅되어 도살장 앞 하수구로 철철 흘러나왔다.


   하지만 우리를 제외하고 그 울음에 귀 기울이는 이는 없었다. 냉담한 폭력만이 울음 사이를 스쳐갔다. 높고 단단한 벽 따위가 우리의 존재와 그들의 죽음을 구분지었다. 건물 앞에는 ‘우수 축산물 유통센터 선정’이라 적힌 현수막이 자랑스럽게 걸려있었고, 이따금씩 도살장으로 드나드는 유통 트럭에는 ‘건강한 돼지 안전한 먹거리’라는 기만적인 문구가 적혀있었다. 우리는 누구도 애도하지 않는 바로 그 죽음들의 현장, 도살장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매서운 바람에 손과 발이 얼어가던 순간, 이미 눈빛까지 얼어버린 소 한 명(命)이 트럭 뒷칸에 실려왔다. 몸 하나 겨우 들어가는 공간에서 죽음을 직감하는 듯한 그의 표정, 나는 그와 얼굴을 마주한 채 찬 입김을 내쉬었다. 나는 그때 절실히 느꼈다. 함께 숨을 쉰다는 것이 이리도 고통스럽고 어려운 일이었음을. 그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를 마주한 나의 눈에도 물이 차올랐다. 우리가 연결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결국 도살장으로 끌려가버린 그에 대해 지금도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어진다.


   그날 우리의 행동은 비질(Vigil)이라 부르는 것이었다. 이는 동물해방운동의 일환으로, 죽음을 앞둔 존재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모두가 외면하는 폭력을 목격하며 애도하는 것을 뜻한다. 이처럼 삶과 죽음의 경계를 목격한다는 것은, 누군가의 고통과 아픔에 함께 연결되기를 시도하고 모두의 해방을 꿈꾼다는 것이었고, 이는 지극한 사랑 없이는 버틸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의 얼음장 같던 공기와 시린 눈물이 문득 떠오르는 날엔 애써 쥐어짜 낸 사랑이 아니고서야 아픔을 견딜 수가 없었다.


   고기를 먹지 않는다는 나에게 누군가가 무심코 이런 말을 던진 적이 있다.


   “사랑하면 맛있게 먹어야지.”


   새빨간 선홍빛으로 비닐에 깨끗이 포장된 고기, 그 이면에는 반짝거리는 눈과 슬픈 표정을 지닌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이를 알고도 사랑을 내세워 맛있게 먹어치울 수 있을까. 어찌 사랑과 폭력을 혼동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시간들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그에게 소는 언제나 ‘고기’였다는 것을 말이다. 그가 말하던 사랑에 대한 모순은 그저 단순한 무심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일상에 스며든 죽음과 폭력들은 참으로 생명에 무심하다. 식당 간판에서는 활짝 웃는 사랑스러운 소 캐릭터가 무한리필 소고기를 먹으러 오라며 홍보한다. 치킨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며 ‘치느님’이라 칭송받는다. 고통에 무감각하게 만드는 도시, 여느 길을 걸어가다 보면 죽음을 사랑으로 포장하는 이미지와 언어들이 넘쳐난다. 죽음이 그득한 도살장은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 은폐한 채로.


   우리는 폭력을 사랑으로 포장할 수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한때 관습으로 행해졌던 ‘사랑의 매’는 이제는 녹슬어버린 모순으로 남았다. 이것이 모순이 이유는 ‘사랑’과 매라는 ‘폭력’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이고, 폭력은 폭력이다. ‘치느님’이라 칭송하는 것을 사랑이 아닌, 수많은 생명들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폭력이라 부른다면, 모두에게 사랑이 진정 실현될 수 있을지 상상해본다.


   나는 소를 ‘고기’로 태어난 물건이 아닌, 나와 눈을 마주하며 감정을 나누었던 존재로 기억한다. 나는 지독한 사랑에 대한 기억으로, 일상이 되어버린 무심한 폭력의 틈에 균열을 내고 싶다. 살아있는 존재들의 눈을 마주하며 서로의 아픔을 끌어안는 다정함이 넘치는 사랑으로 말이다. 누군가의 접시에서, 어딘가의 식당에서 죽음을 마주하는 매일매일이 고통을 감내하는 동시에 사랑을 다짐하는 나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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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선


살아있는 것들을 사랑하고, 사라지는 것들을 붙잡고 싶은 한 인간.

아름다운 바다와 생명들, 다정한 글과 음악을 애정합니다.

나의 연약함이 모두의 용기가 될 수 있다고 믿기에,

아픔과 분노를 온 마음으로 드러내는 활동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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