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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ondo Oct 24. 2021

나의 두 번째 서울

내 동네

마장동이 쏘아 올린 ‘내 집’, ‘내 동네’를 가지고 싶다는 소망으로 인해 나는 ‘내 동네’라고 부를 만한 느낌을 가지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 궁금해졌다. 살면서 유일하게 ‘내 집’과 ‘내 동네’라고 느꼈던 본가에서의 삶을 떠올려 보며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동네의 필수 조건들을 적어 보았다. 


인간 내비게이션처럼 속속들이 알고 있는 골목, 아지트처럼 나만 알고 있는 카페나 술집, 운동 코스, 그리고 내 단골 도서관. 


아, 바로 이건가? 도서관이었던 건가? 나머지는 모두 충족되어 있는데 도서관만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그리고 살았던 동네의 배경에서 모두 빠져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이상한데, 내가 오래 머물던 서울에서는 항상 책을 읽으러 도서관이 아닌 서점을 찾았고, 잠깐 본가에 내려갈 때는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하곤 했다. 얼마 전에도 근처 도서관의 위치를 검색해보고선 익숙한 동네 서점으로만 발걸음을 했는데, 이것이 바로 내가 사는 동네가 ‘나의 동네’로 승격이 되지 못했던 이유였던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운명적으로 ‘나 혼자 산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게 된다. 


‘나 혼자 산다’는 매주 게스트가 바뀌며 출연자의 혼자 사는 일상을 보여주는 예능 프로그램인데, 그날의 게스트는 내가 사는 동네 근처에 거주하는 어느 배우였다. 낯익은 골목들의 등장에 즐겁게 시청을 하던 중 운명처럼 그가 책을 빌리러 가는 장면이 나왔다. 어느 도서관으로 가나 유심히 보니 웬걸, 항상 걸어가며 지나쳤던 복지회관 안에 도서관이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그곳은 회사와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 곳이었다!


나는 곧바로 주말과 월요일(도서관 휴무날)을 보낸 뒤, 한껏 기대감을 안고 복지회관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보유하고 있는 책의 권수는 적었지만 알짜배기 책들이 빼곡히 정렬되어 있던 도서관. 드디어 단골 도서관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신중히 5권을 골라 대출을 하려고 보니, 주소지가 서울이거나 직장이 서울인 사람, 혹은 ‘서울시민카드’라는 게 있으면 된다고 했다. 

‘서울 시민 카드’라니.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입신고를 인터넷으로 해서 내 주민등록증엔 아직 본가 주소만 적혀 있다. 그래서 내가 서울에 살고 있다는 건 도시가스 요금지에서나 느낄 수 있었는데. 서울시민카드를 발급받으며 주소지를 인증받는 순간, 드디어 내가 서울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공식적으로 부여받았다는  엄청난 소속감이 밀려왔다. 손오공이 드래곤볼을 모을 때 바로 이런 느낌이었을까. 이 서울시민 카드와 함께 단골 도서관의 탄생으로 나는 마침내 서울에서의 ‘내 동네’를 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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