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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empado Oct 02. 2021

살아남은 대화_ 니 마음만은

P: 사람들 참 무서워.


R: 사람들? 어떤 사람들?


P: 그냥 사람들. 세상을 살고 있는 사람들. 누군가를 빠르게 좋아했다가 또 금방 싫증 내는 사람들. 어떤 것에 환호했다가 또 바로 잊는 사람들. 잘 모르고 증오했다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사과하는 사람들. 난무하는 판단과 혐오, 애정과 갈구. 나는 그 속도가 너무 빠르고 쉬워서 사람이 무서워. 근데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나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거야. 다를 거 하나 없이.  


R: 사람이 무섭지.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사람 속은 모른다고 언제 어떻게 변할지, 어떤 마음에서 그러는지는 본인만 아는 거니까. 근데 어쩌겠어. 나도 사람인 걸. 사람이 무섭다고 다 피하고 살 수도 없고.


P: 그니까. 사람을 피하고 살 수도 없게 왜 사람으로 태어나서 이런 고민을 하고 있나 몰라. 바람이나 별 같은 걸로 태어났으면 좋을 텐데. 여기저기 세상도 마음껏 구경하고.


R: 바람이나 별은 또 나름의 고충이 있을 수 있지. 사람이 다 각자 고민이 있는 것처럼 만물이 다 그렇지 않겠어? 돌은 돌대로 물은 물대로 다 본연의 무게가 있겠지.  


P: 돌이랑 물도 우리처럼 힘들까?


R: 글쎄, 안 되어 봐서 모르겠네. 다음 생에는 돌이나 물로 태어나보지 뭐.


P: 야, 그게 마음대로 되냐.


R: 마음대로 안 되겠지. 나도 그건 신의 몫이라고 생각해. 근데 너 마음대로 되는 게 뭔지 알아? 사람 마음. 니 마음. 니 마음만은 니 거야. 니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고 또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어. 타인의 마음 같은 건 생각하지 말자. 애초에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근데 니 마음만은 니 거잖아. 니가 무서워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고 니가 구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


P: 니 마음은 니 거다. 무슨 통달한 사람처럼 말을 하네. 다행이야. 너 같은 사람이 세상에 있어서.


R: 나 같은 사람, 너 같은 사람 다 있어서 다행이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어서 세상이 그래도 살만 한 거라구. 나 말고 우리.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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