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용실에서 배운, 누군가의 아픔 앞에 서는 법
자궁내막암으로 자궁적출 로봇수술을 받고, 약 3주간 이틀에 한 번씩 미용실에 가서 머리를 감았다. 암 진단만으로도 충분히 서글픈데, 거울 속 기름진 머리와 은근히 풍기는 머리 냄새는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돈이 아깝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나는 미용실 네 곳의 미용실에서 네 분의 직원과 대화를 나눴었다.
첫 번째 미용실은, 삼성서울병원에서 퇴원 후 갔던 친정 근처에 있는 미용실이었다. 그때의 나는 거의 절뚝이며 걸었고, 누가봐도 환자였다. 원장님은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고, 나는 수술을 받고 오늘 퇴원했다고 답했다. 하지만 질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떤 수술을 받으셨어요?"
"자궁내막암으로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어요."
"저도 겪어봐서 알아요. 저도 근종 때문에 수술을 했거든요."를 시작으로 전혀 궁금하지 않았던 자신의 이야기를 길게 이어가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시는 것 같아요."
항암치료를 받은 것도 아닌 사람에게 그 말은 배려 없이 느껴졌다. 이미 심리적으로 흔들려 있던 마음에 작은 돌멩이를 맞은 것처럼 아팠다.
두 번째 미용실은 집 근처 1인 샵이었다. 전화로 수술 후 샴푸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알리고 방문했다. 원장님과는 인사만 나누고, 어떤 대화도 없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고, 아무것도 궁금해 보이지 않으셨다. 조금 차갑게 느껴지긴 했지만, 나도 나의 상태에 대해 대화를 원치 않았기에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세 번째 미용실은 차를 타고 가야 하는 규모 있는 체인점이었다. 샴푸를 담당하신 스텝분께서 역시 "어디가 불편하세요?"라고 물었다. 나는 돌려 말하지 않고 암으로 자궁적출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분의 남편이 대장암 투병을 겪고, 항암 치료까지 받았지만 지금은 예전처럼 잘 지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비슷한 아픔을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는 잠시 위로가 되었지만, 나를 배려한다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기 좋은 상대를 만난 듯, 대화라기엔 독백에 가까웠다.
네 번째 미용실은 두 번째 미용실과 가까운 곳이었다. 여전히 걸음이 불편해 보였을텐데, 원장님께서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으셨다.
"샴푸만 예약하셨길래, 성형수술을 하신 고객님이신가 했어요. 그런 분들 꽤 많거든요."
라고 유쾌하게 말을 건네셨다. 굳이 내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괜찮은, 그런 분위기였다.
하지만 나는 먼저 말을 꺼냈다.
"저는 암으로 자궁적출수술을 받았어요."
"안 그래도 걸어오실 때 불편해보이셨는데, 여쭤보지는 않았거든요. 저는 20대에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어요."
예상치 못했던 원장님의 고백. 나보다 훨씬 어린 나이에 암 투병을 겪고, 지금은 결혼해 아이를 키우며 좋아하는 일을 하고 계신 모습에 '희망'이 느껴졌다.
그 이후로 나는 그 미용실을 네다섯 번 정도 더 방문했다. 한쪽으로만 흐르는 대화가 아닌, 서로의 경험을 조심스럽게 공유하며, 같은 상처를 보듬는 듯했던 대화는 큰 힘이 됐다.
무엇보다 감사했던 건, 항암이나 방사선 치료 여부에 대해 한 번도 묻지 않으셨다는 점이다. 그때 나는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며 마음이 불안했다. 수술보다도 항암이 가장 두려웠다. 같은 경험을 했다면 오히려 더 쉽게 물어볼 수도 있었겠지만, 묻지 않으셨다. 가장 두려운 단어가 항암이라는 걸 알고 계신듯 했다. 그래서 묻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침묵이, 진정한 배려로 느껴졌다.
나는 미용실에서 머리를 감으며' 태도'를 배웠다. 누군가의 아픔 앞에 서는 태도.
- 상대가 먼저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묻지 않는다.
-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해서 상대의 아픔을 내 기준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 상대의 상황에서 민감할 수 있는 부분은 언급을 피한다.
이 세가지는 내가 앞으로 살아가며, 암 환자뿐 아니라 상처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가져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겪어보지 않은 일에 대해 함부로 판단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신념이 생겼다. 그리고 같은 경험도, 사람마다 느끼는 고통과 슬픔의 깊이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배웠다.
마지막으로, 세상에는 생각보다 같은 아픔을 겪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희망이 되었다.
이제 나도, 그 아픔을 겪은 사람으로서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와 희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다 지나갈거라고. 이겨낼 수 있다고. 마음의 상처는 남겠지만, 그것 또한 점점 희미해질 것이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살아질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