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버섯

여유를 가지고 보이는 것들

by 김우드


2025년 9월 24일


암 진단을 받은 후로 오전에 아파트 둘레길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핸드폰을 보지 않고, 계절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둘레길의 식생을 구경하는 것이 산책의 또 다른 재미가 되었는데, 오늘도 처음 보는 식물 앞에 멈춰 한참을 바라보다 사진으로 담아왔다.


구글 이미지 검색을 했더니 버섯이란다. '붉은 뱀버섯'. 어제는 뱀을 만나고, 오늘은 뱀버섯을 발견했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는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발견하지 못했던 일상의 다채로움을 느낀다.


작년만 해도 집에서 일만 하며 몰랐던 동네 산책길 풍경. 예전 같으면 핸드폰만 쳐다보며 지나쳤던 길에서 이제는 계절에 따라 피고 지는 꽃과 몇 달 전보다 키가 큰 나무, 새로 돋아난 새순까지 발견한다.


지금보다 더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며 1분 1초를 쪼개어 바쁘게 살았는데, 결국 건강을 잃고 모든 것이 멈춰버린 지금. 밖에 나가는 시간도 아까워서 온라인으로 장을 보고,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무언가를 찾아 하려는 강박에 지냈던 지난날들이 떠오른다.


'어쩌면 오지 않았을 하루'라고 생각하면, 핸드폰만 쳐다보며 지나치기에 너무 아까운 오늘의 장면들. 오늘만 느낄 수 있는 공기와 바람, 햇살. 전날 봤던 꽃봉오리가 오늘은 활짝 피어있는 모습에서 느껴지는 알 수 없는 뭉클함. 꼭 깊은 산이나 숲에 가지 않아도, 자연은 언제나 곁에서 느낄 수 있었다. 암 진단과 수술 후 자연과 계절을 느끼며 내가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된다. 돈과 명예가 없어도 행복할 수 있음을 배운다. 그렇게 여유를 가지고 자연을 들여다보는 일은, 자연스럽게 나의 감정과 상태를 확인하고 돌보는 경험으로 이어진다.


일상의 여유라는 게 별게 없었는데... 잠시 자전거를 타고 장을 보러 나갔다 돌아오며 자전거 도로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뱀을 만나고, 10분 정도 아파트 둘레길을 산책하다가 처음 보는 버섯을 발견하고. 모두 다 여유를 가졌기에 만날 수 있었던 것들.


내 인생에 하등 쓸모없어 보이는 뱀과 뱀버섯의 발견이 '지금 집을 사세요', '이 지역 대장 아파트'라는 숏츠 정보보다 훨씬 값지게 느껴진다. 내 하루를 오히려 더 풍성하게 만든다.


스스로를 돌보지 않는 여유로운 삶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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