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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용민 Nov 12.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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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다섯 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우리 학교는 일 층에서 부터 오 층까지 순서대로 학년이 배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이 학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삼 층을 쓰고 있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교무실이다. 이 층의 알짜배기 공간은 교무실로 할당되어 있었고, 일 층 또한 교장실에, 행정실에, 많은 공간이 어른들의 영역으로 분배되었기 때문에 일 학년과 이 학년들은 총 세개의 층에 걸쳐 교실을 배정 받았다.


당연하게도 이 층의 교실은 모두에게 기피대상이었다. 교무실 바로 옆에 위치한 교실이라니. 듣기만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일 반, 이 반, 삼 반은 꽝이네. 입학식 날 반 배정표를 보며 친구들과 나눴던 말이 떠올랐다. 돋움체로 적힌 칠 반이라는 글씨 아래 내 이름이 있는 걸 확인한 나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고, 반면 일 반에 당첨된 누군가는 절망 섞인 비명을 질렀다.


운동장에는 체육 선생님과 몇몇 학생들이 있었다. 구령대와 그 밑에 커다란 자물쇠가 채워진 철문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은 철문을 열고 그 안의 어둠속으로 당당히 들어가더니, 잠시 후 축구공과 농구공을 가지고 다시 나타났다. 스탠드에서 수다를 떨던 학생들 몇몇이 소리를 지르며 그들에게 합류했고, 다른 몇몇은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고생하세요, 선배님들.’


기분이 좋아졌다. 속으로 휘파람을 불며 고개를 돌렸다. 나리의 옆모습이 보였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리와 이렇게 둘이 있는 건 처음이었다. 짝꿍이긴 했지만 엄청나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던 데다가, 쉬는 시간만 되면 나는 남자 아이들과 숨바꼭질이나 술래잡기를 하러 밖으로 나가버렸으니까.


솔직히 어색했다. 곁눈질로 나리를 쳐다보았다. 이 아이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까? 궁금했지만 나리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었다. 그냥 별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생각해봤자 머리만 아파. 그렇게 우리 둘은 계속 걸었다. 운동장을 지나고, 정문을 지났다.


어느새 학교 바로 앞 분식집에 다다랐다. 가게에서 퍼진 맛있는 냄새가 솔솔 코를 간지럽혔다. 좌판위로 어묵 꼬치들이 보였다. 주인 아주머니게서는 떡볶이를 휘적이고 계셨다. 옆을 슬쩍 확인했다. 나리는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그녀의 시선은 떡볶이에 꽂혀있었다. 국자가 좌우로 움직일 때마다 그녀의 눈동자도 함께 왔다 갔다 했다. 꼬르륵. 배에서 소리가 났다. 나리는 깜짝 놀라더니, 주위을 두리번거렸다.


“어묵 먹을래?”


내가 물었다.


“나는 떡볶이.”


나리가 대답했다.


“두 개 다 먹자.”


“그래, 그러자.”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용돈을 받았다. 일요일에 어머니께서 삼천 원을 주셨는데, 어떨 때는 일주일 내내 돈을 쓰지 않은 적도 있었고, 수요일만 지나도 돈을 다 써버릴 때도 있었다. 그 주는 운이 없게도 돈을 꽤 많이 써버렸다. 내 수중에 사백 원 정도만 남아있었는데, 다행히 나리가 천 원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는 어묵과 떡볶이를 함께 시킬 수 있었다. 나리에게 다음 주에 내 몫을 갚겠다고 약속을 했다. 나리는 갚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했다.


세로로 크게 메뉴가 적인 미닫이 문을 열고 가게의 안으로 들어서자, 그 시절 자주 쓰였던 비취색과 자주색의 조합으로 얼룩진 식당이 우리를 만겨주었다. 문이 밀리며 초인종이 역할을 했고,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고개를 들지 않은 채 환영의 인사를 외치셨다.


분식집은 여덟 평 정도 되어보였다. 초등학생들의 몸집에 맞는 조그마한 식탁 6쌍이 오와 열을 맞춰 준비되어 있었고, 가게의 맞은 편 끝에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진 조리대가 이곳은 요리사의 공간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가게의 오른편에는 요일이 한문으로 적혀있는 커다란 달력이 벽에 걸려 있었고, 그 위로는 먼지가 잔뜩 쌓인 선풍기가 보였다. 여름이 오면 주인 아주머니께서 선풍기 청소를 하실까? 문득 궁금해졌다. 답을 알려면 한 두달은 더 있어야겠지.


분식집은 조용했다. 식탁에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 널부러져 있는 접시들은 이곳에 저학년들의 파도가 한번 몰아쳤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소강상태를 맞이한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다음번 공세를 대비해 여전히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우리는 깨끗이 치워진 몇 되지 않는 식탁을 찾아 앉았다.


떡볶이와 어묵을 시켰다. 아주머니께서는 조금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곤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둘이 함께 멍하니 앉아 있다보니, 금방 음식이 나왔다. 어묵은 양은 냄비에 국물과 함께 나왔고, 떡볶이는 비취색의 타원형 접시에 가득 담겨 나왔다. 어묵에는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물떡이 함께 나왔다. 어릴 적 분식집 메뉴 중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었다. 물떡은 가래떡을 꼬챙이에 꽂아 어묵탕에 넣은 음식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 특별할 것 없는 음식은 이었는데도, 나는 물떡을 참 좋아했다.


나는 물떡을 나리에게 권했다. 나로서는 대단한 양보라고 할 수 있었다. 돈이 부족했던 나와 함께 분식집에 들어와준 것에 대한 고마움과, 삼십 분이 넘는 시간 동안 나를 기다려 준 것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지금까지 함께 걸어온 것에 대한 동지 의식, 그 모든 것이 섞인 제안이었다. 나리는 잠시 고민하더니 알겠다고 했다. 그 아이는 하나를 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 크다며, 반반 나눠 먹자고 말했다. 전부 양보할 생각이었던 나는 그래도 물떡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아졌다. 물떡을 덜어 내 접시로 옮겼다. 꼬치를 빼고 아주머니께 받은 가위로 떡을 반으로 잘랐다. 크기가 반으로 줄었지만 물떡은 여전히 맛있어 보였다. 접시에 국물을 조금 덜고 남은 떡을 옮겨 담았다. 심심해 보이지 않게 어묵 몇 개도 같이 덜어 넣었다. 정성이 가득 담긴 접시를 받은 나리는 미소로 화답했다. 그러면서 자기는 이렇게 많이 먹지 못한다며, 나보고 어묵을 같이 먹자고 했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우리는 함께 허겁지겁 음식을 먹어치웠다. 나리는 떡볶이에 집중했다. 나는  물떡과 함께 어묵 국물을 호호 불어 먹었다. 떡볶이 접시의 바닥 무늬가 보일 때쯤, 저 멀리서 학교 종소리가 들렸다. 삼 학년 형 누나들이 하교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선배들을 위해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아주머니의 뒤통수에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우리는 다시 길을 나섰다. 가방을 들쳐메며 나는 나리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돈도 없는데 같이 먹어줘서 고마워. 배가 진짜 너무 고팠거든.”


“아니야, 같이 먹어줘서 내가 고마워. 나는 떡볶이를 너무 좋아하거든. 그런데 혼자 먹기엔 양이 늘 많았어. 친구들이랑 먹어도 늘 남기기 일수였거든.“


“그래? 다음에 떡볶이 먹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나는 잘 먹으니까.“


기분이 으쓱해진 나는 괜히 턱을 들고 거만하게 말했다. 내 표정을 보고 나리는 웃음을 지었다.


”그래, 그럴게.“


“근데 떡볶이를 좋아하면 물떡도 되게 좋아하겠다. 그치? 가래떡 같은게 비슷한 걸로 만든 거잖아.“


내 물음에 나리는 고개를 저었다.


“물떡은 양념이 안되어 있어서 그런가 그렇게 좋아하지 않아. 어묵 먹을 때 물떡을 찾아 먹은 적이 한번도 없거든.”


믿기지 않는다는 내 표정을 보며 나리는 웃음을 터뜨렸다.


“싫어하는 건 아냐. 그냥 찾아서 먹지는 않는 정도? 근데, 내가 미안해 해야하는 거야?”


“나는 완전 좋아하거든. 어묵 국물에 푹 담군 가래떡이잖아. 엄청 맛있다고.”


“오늘 먹어보니 맛있긴 하더라.”


“그치?”


“다음번에도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나랑 먹으러 오면 돼. 떡볶이랑 어묵이랑 아까처럼 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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