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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초등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같은 동네에서 자랐으니 당연한 일이었을까. 사실 그 시절의 나에게 그 아이와 같은 학교를 다닌다는 사실은 그렇게 의미있는 일은 아니었다. 난 그 아이에겐 아무런 관심이 없었으니까. 우리는 입학과 동시에 일 학년이 되었고, 일 년 후 이 학년이 되었다. 이 학년 칠 반. 교실에 들어서는 첫날, 나리의 얼굴을 마주쳤다.
“아…?”
서로의 얼굴을 보며 우리는 말을 잃었다. 그래, 같은 반이야 될 수도 있지. 서른 명 중 한 명 쯤 사이가 별로인 아이가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아. 어른의 삶을 예습하는거야. 하지만 내 평정심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첫날 우리는 짝궁이 되었으니까. 짝궁 발표를 듣고 나는 한번 푹 내쉬었다. 엄청 싸우겠네. 머리가 괜히 아파왔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는 엄청나게 티격태격했다. 내가 잘했네, 네가 잘했네. 우리는 사소한 걸로 늘 다투었고, 싸움은 항상 나리의 커다란 눈동자에 눈물이 맺힌 채로 끝이 나곤했다.
“넌 진짜 못된 아이야.“
나리를 달래주며 규리가 나에게 쏘아댔다. 하지만 나는 나만의 이유가 있었기에, 아무렇지 않게 그 말을 넘길 수 있었다.
“나보고 왜 난리야, 그러니까 누가 책상을 넘어오래?“
어쩌면 아무렇지 않지는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하루는 내가 청소 당번이었을 때의 일이다. 당번들끼리는 항상 가위바위보로 청소 담당을 정했는데, 내가 창문 닦기를 맡게 되었다. 청소 당번들 사이에서도 가장 기피하는 일 중 하나가 바로 닦기 당번이었는데, 재수도 없게 내가 맡게 된 것이다.
다들 닦기 청소를 하기 싫어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닦기는 청소의 가장 마지막 순번이었기 때문에 다른 당번들보다 일을 늦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는데, 따라서 제일 청소가 늦게 끝나는 건 물론이거니와, 청소를 시작하려면 다른 친구들이 본인 몫의 일을 끝내기를 가만히 기다려야만 했다. 이게 참 고역이었다. 십 초만 가만히 있어도 좀이 쑤시는 나이에 청소가 끝나가기를 가디리기만 해야 한다니.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본우야.”
투덜거리며 걸레를 집어 들고 화장실을 가려는데 누군가 나를 불렀다. 나리였다. 무슨 시비를 걸까 잔뜩 긴장한 나에게 그 아이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을 했다.
“오늘 집에 같이 갈래?“
생전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던 아이가 무슨 바람이 분 걸까. 나랑 싸우는게 재미있어 지기라도 한건가? 딴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이게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나리의 집은 사실 우리 집에서 별로 떨어져 있지 않았다. 가는 방향도 같은 데다, 나리 집에서 조금만 더 걸으면 우리 집에 도착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같이 갈 수 있지. 그럼. 하지만 나는 오늘 청소 당번인걸. 혹시 얘가 이 사실을 잊어버렸나 해서 나는 친절히 오른손에 쥔 걸레를 들어올리며 말했다.
“나 오늘 청소해야 하는데?“
나리는 괜찮다고 했다. 기다리겠다고 했다. 그래, 그럼 그래라. 알겠다고 대답한 후 걸레를 빨러 갔다. 전 당번이 제대로 해놓지를 않았는지 걸레를 짤 때마다 검은 물이 엄청나게 나왔다.
우리 교실은 삼 층에 위치했다. 그래서인지 선생님께서 항상 신신당부 하셨던 일이 있다. 절대로 선반 위에 올라가지 말 것. 혹시나 우리가 장난을 치다 창밖으로 떨어질까 걱정하셨던 것이다. 청소할 때도 손이 안 닿는 곳은 굳이 청소하지 않아도 된다고, 우리에게 의자보다 높은 받침대는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선반 위로 올라가거나, 책상을 두고 올라가서 청소를 하려는 사람이 있으면 혼구녕을 내겠다고 엄포를 놓으셨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제일 재미없는 일을 하는데 마지막에 조금의 보상은 주어져야 하는 것 아닌가. 다들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선반 위에서, 내 키보다 큰 창문을 앞에 두고 내려다본 학교의 전경은 언제나 압도적인 경외감을 선사했거든.
복도 창문, 창가 창문, 복도 창틀과 문까지 싹싹 닦았다. 업무를 완수한 뿌듯함이 가슴 깊이 차올랐다. 괜히 턱을 높이 들고 주변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저기 교실 구석에 청소 당번인 여자애들이 보였다. 그들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는 나리도 보였다. 시간을 확인했고, 나는 깜짝 놀랐다. 분침은 시간이 종례 후 족히 삼십 분은 지났음을 알려 주고 있었다. 도대체 나한테 무슨 볼 일이 있는 거지.
청소가 끝난 교실은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했다. 교탁에 선 반장이 큰 목소리로 우리들을 불렀다. 모두 떠드는 걸 멈췄다. 녀석은 선생님을 모시고 와야 한다고 말했고, 우리는 모두 동의했다. 누군가가 빨리 집에 가야한다고 외쳤다. 우리는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오락실 가기로 했어.’ ’만화방 가기로 했어.‘ ’축구 하기로 했어.‘ 모두가 빨리 학교를 벗어나고 싶어했다. 우리는 가위바위보를 했다. 몇 번의 환호와 짜증 섞인 외침 뒤, 심부름꾼이 정해졌고, 녀석은 투덜거리며 교무실로 달려갔다.
선생님은 오시지 않았다. 바쁜 일이 있으니 오늘은 너희를 믿고 보내주겠다고 하셨다. 모두들 환호하며 썰물 빠지듯 교실에서 사라졌다. 나도 기분 좋게 가방을 둘러메고 교실을 나서려는데, 그 순간 교실 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걸레가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과 장난친다고 마지막 빨래를 깜빡했던 것이다. 할건 해야겠지? 가방을 내려놓고 다시 화장실로 향했다. 오늘은 내가 꼴찌로 집에 가겠네. 물기를 짜면서 생각했다. 교실로 돌아왔다. 나리가 아직 그곳에 있었다.
”아직 안 갔어? “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같이 가자고 말했잖아.”
짜증 섞인 익숙한 말투가 들려왔다.
“아, 그래.”
나는 걸레를 선반에 널어두고 가방을 둘러멨다.
“이 시간까지 기다릴 줄은 몰랐어.”
나는 고갤 들어 교실 벽시계를 확인했다.
‘종례하고 40분은 지났는데….’
속으로 생각했다. 그 순간 나리와 눈이 마주쳤다. 0.1 초나 지났을까, 나는 이내 고개를 돌렸다. 목적 없이 여자애와 눈을 마주친다는 것은 되게 부끄러운 일이다.
“이제 가자.”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리는 천천히 인어공주가 수놓인 가방을 들쳐메더니, 그대로 내 옆을 지나쳐 교실을 나갔다. 당황한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좇았다. 나리의 뒷모습이 말을 했다.
“빨리 가자.”
건물을 나와 도보를 따라 걸었다. 길은 운동장을 둘러 정문으로 향했다. 운동장은 햇빛을 가득 품고 있었다. 빛나는 모래와 회색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계단식 스탠드, 교장 선생님이 끝나지 않는 연설을 하시는 갈색 조회대와 그 위로 그늘을 만드는 초록색 캔버스. 쏟아지는 정오의 햇살은 이 모든 것을 뿌옇게 만들었다. 교정은 고요했다. 점심시간 운동장을 가득 채웠던 그 많은 학생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엄지와 검지를 맞대어 탁! 소리를 내, 아이들을 모두 사라지게 만들어 버린 거야. 학생들은 모두 격자무늬가 그려진 정육면체의 공간으로 이동하지. 모두가 웅성웅성 대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려 노력할 때, 매우 낮은 목소리가 말을 시작하는 거야. 너희들은 선택 받은 아이들이다….’
한참을 상상의 나래에서 허우적댔다. 정신을 차리고 창문이 열린 교실로 시선을 돌렸다. 오 층에서는 수업이 한창이었다. 활짝 열린 창을 통해 고학년 선배들의 모습이 보였다. 무언가에 홀린듯이 여러개의 뒤통수가 함께 좌우로 왔다갔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