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하고 미안하다.
5년 전 일이다.
어둠이 갓 내려앉은 토요일 저녁, 서해안 고속도로 하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탁 트인 고속도로를 시속 110km로 달리며, 경쾌한 노래를 듣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익숙해진 속도감에 몸을 맡긴 채 흥얼거린다. 저 멀리 용담 터널이 보인다. 편안한 관성 속에 미끄러지듯 커다란 입을 향해 달린다.
터널 입구까지 30미터 남짓.
어디선가 노란 줄무늬의 작은 동물 한 마리가 나타났다. 그것은 전조등 빛을 전신에 환히 받으며 나를 바라본 채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눈을 커다랗게 뜨고 너무 놀란 나머지 입만 크게 벌리고 있었다.
눈이 마주친 순간, 시간은 느려진다.
‘고양이구나. 왜 가만히 있지.
브레이크를 밟을까. 핸들을 꺾을까. 차 중앙 아랫면으로 지나치면 괜찮을까?’
물음표를 찍자, 이미 코 앞이다.
시속 110km는 30m를 불과 1초로 만든다.
통. 탕. 통.
가벼운 물체가 차 밑을 튕겨 지나간다. 소리뿐이다.
비명 대신 남긴 소리조차 자신의 몸집처럼 너무나도 가벼웠다.
빠르게 룸미러를 통해 뒤를 보았지만 어둠 속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
짧은 탄식은 이미 터널 중간까지 끌려와 있었다.
5년 전 어느 날 고양이와 내 삶이 교차한 순간은 짧고 깊었다. 지나칠 수 없는 필연적 순간은 감정이 일어날 틈도 없이 스쳐 지났고, 고양이와 내 삶의 접점은 각각 마침표와 느낌표가 되었다.
죽음이란 것이 누군가에게 기억될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적어도 나는 고양이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할 책임이 있다. 시간 단축을 위한 인간의 무심한 편의가 너의 생을 단축시키고 말았으니까.
너의 영정사진을 끌어안듯 기억하며 살아야 할 테다.
죄책감을 덜기 위한 추모의 되새김질이라 해도.
박제된 너의 기억을 돌에 새기듯, 기억을 끄적여 본다.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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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도로 위에는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흔적이 보인다.
공생하기엔 이제 너무 늦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