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A가 될 수 있다
‘대법원 형사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지난달 12일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2024도 1195)’
(법률신문, 2024-05-13 06:27, [판결] 교차로 진입前 노란불에 멈추지 않아 사고 냈다면… 대법 “신호위반으로 봐야”)
노란불을 보고 급정거를 하더라도 제동거리 때문에 자동차는 정지선을 넘어 교차로 한복판에 멈출 가능성이 크다. 운전자는 노란불을 보면 일순 고민한다. 멈출 것인가 지나갈 것인가. 속도가 느리고 정지선까지 거리가 있다면 브레이크를 밟을 테고, 속도가 빠르고 정지선이 가깝거나 지났다면 엑셀레이터를 밟는다. 이렇게 노란불을 보고 고민하는 구간을 딜레마존이라고 부른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딜레마존에서 멈추지 않으면 법적으로 유죄일 수 있음(아직 확정은 아니다)을 밝힌 것이다.
‘현행법은 교차로 진입 전 황색 신호로 바뀐 경우엔 정지선이나 교차로 직전에 멈추도록 규정해 운전자가 차를 멈출지, 진행할지 선택할 수 없다’
노란불로 바뀐 시점에 교차로 진입 전이라면 급정거를 하더라도 멈추라는 의미다.
이미 기사 댓글에서는 판사의 정치성향까지 들먹이며 원색적 비난을 할 정도로 대중의 신경은 날카롭기만 하다.
가장 큰 이유로 제동 하더라도 정지선을 넘는 불가피한 상황을 든다.
이분법적 판결을 해야 하는 상황을 전제로 생각해 본다.
신호등에서 노란불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초록(또는 파랑), 노랑(또는 주황), 빨강의 3색으로 구성되는 신호등. 멀리서도 눈에 띄는 빨간색과 인간의 눈에 가장 편안하게 보이는 초록색은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명멸한다. 노랑은 빨강과 초록 사이에서 선명한 대비색으로서, 초록에서 빨강으로 변하기 전 켜지며 운전자에게 신호등이 바뀜을 주의환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어린이 보호 구역이나 어린이 보호차량을 떠올려도 노란색 일색인데 아이들을 생각하면 절로 조심하게 되니 지정색과 의미 부여의 선후관계를 떠나 노란색이 곧 ‘주의환기’ 메시지가 되었다.
그럼, 무엇을 위한 ‘주의환기’인가.
보행자나 다른 방향의 주행 차량 등 나와 다른 대상물을 안전하게 통행할 수 있도록, 내 자동차의 주행 관성에서 벗어나 행동을 취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 노란불이 요구하는 행동은 무엇인가.
신호등의 목적은 주행보다는 멈춤에 있다. 자동차의 목적은 대상물을 이동시키는 것이요, 즉 무언가를 싣고 달리는 것이다. 고속도로와 같이 자동차가 계속 달릴 수 있다면 신호등은 필요 없지만, 세상은 이차원이다. 평행하지 않은 두 선은 한 점에서 교차할 수밖에 없으며, 두 선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충돌을 막기 위해서는 주행할 수 있는 기간을 배분해야 한다. 여기서, 신호등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다가오는 자동차를 교대로 멈춰 세운다.
초록불에서 노란불, 그리고 빨간불로 변하면서. 이때, 빨간불에서 노란불, 그리고 초록불의 순서로 변하지는 않는다. 노란불은 정지를 위한 비가역적 방향으로 켜지며, 주행을 멈추기 위한 예비 신호로 기능한다.
그런데, 노란불을 보고도 브레이크가 아닌 엑셀레이터를 밟는 이유는 무엇인가.
노란불이 되자 액셀을 밟아 교차로를 서둘러 지나가려는 시도는 교차로에 어중간하게 서있는 상태를 피하거나, 또는 다음 초록불을 기다리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런데, 과연 액셀을 꾹 밟아야 할까? 어중간하게 설 경우, 정지선을 넘어서더라도 후진하여 가깝게 붙여 놓을 수 있다. 교차로에서 다른 진입 차선의 통행을 방해하여 교통체증을 불러오길 원하는 운전자는 없다. 뒤차 운전자도 마찬가지다. 물론, 뒤차는 차간거리를 무시한 과속이 아니라면 미리 정지하기 때문에 천천히 후진하여 안전하게 거리를 좁힐 수 있다. 반대로, 어중간하게 설까 봐 엑셀레이터를 밟는다면 주행속도를 넘겨 가속하기 때문에 초록불을 보고 출발한 보행자나 앞선 차량과 추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따라서, 노란불을 보면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렇지 않고 사고를 낸다면,
죄가 없다고는 할 수 없다…
누구나 A가 될 수 있기에 끝을 흐릴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사건이다.
환송 후 판결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한편, 노란불 사건은 유독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AI기반 자율주행차 도입을 앞둔 시대에 현대판 트롤리 문제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노란불을 보면 멈추라’는 알고리즘을 토대로, 하나의 상황을 예로 든다.
자율주행차 안에서 나는 운전석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자율주행차는 시속 80km/h로 정속 주행 중이다. 앞쪽으로 10m 지점에는 교차로가 있고 위쪽에는 신호등이 있다. 교차로를 향해 나가는데 정지선을 앞두고 신호등이 노란불로 바뀐다. 그 순간, 자율주행차는 강력한 급정거를 시도한다. ‘끼—익’ 날카로운 소리가 짧게 들린다. 가까스로 정지선을 넘지는 않았다. 내 놀란 가슴은 극심하게 요동친다. 손에서 튕겨나간 책은 발치에 떨어져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고민할 겨를도 없이, 눈밑에서 퍼져오는 극심한 고통에 몸서리친다. 얼굴을 운전대에 들이받은 듯했다. 룸미러로 내 얼굴을 바라보니, 앞니가 그리고 코가 부러졌다.
AI는 운전자가 다칠까 고민하지 않는다.
노란불 사건은 법원 판단을 넘어 공론화의 계기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