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허사이 May 18. 2024

그런 나이

한 번도 행복의 끝을 생각해 본 적 없는 나에게

아내 친구의 남편이 죽었다.

나와 동갑이다.

수년 전 몇 번 만났던 터라 나 역시 친근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중에도 자신의 꿈인 파일럿이 되고자 주경야독하고, 결국 하늘을 날았다.

꿈을 이룬 소식만으로, 그의 삶에 펼쳐질 무지갯빛 행복을 그릴 수 있었다.


그러던 올해 초, 아내에게 그가 위암 말기라는 말을 들었다. 순간적으로 아내의 친구와, 본 적 없는 아이들의 존재가 떠올라 숨이 막혔다.


내뱉은 첫마디는 ‘어떻게..’다.

정기검진으로 조기 진단하고 치료할 수 없었는지, 암의 원인은 과로였는지와 같은 발병 경과가 궁금하면서 동시에, 어떤 치료를 받게 될지, 완치될 가능성은 있는지와 같은 치료 과정, 함께 할 가족의 고난과 원치 않는 사별까지, 이 모든 지난한 과정이 어떤 흔적을 남길지를 담은 한마디였다.

어떤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 늘 식상했지만, 더 나은 표현을 찾지 못한다.


그런데 무언가 다르다.

주변의 슬픔이 아닌, 그의 아픔이 가까이서 신음하고 있다.


어느새,

죽음이 성큼 다가온 나이에 놀란다.

어깨나 무릎이 결려도, 가슴이 스치듯 저려도 내 젊음을 믿고 대수롭지 않게 지내던 터다.

아내는 술과 담배를 줄이라고 한다.

내가 담배도 피우지 않고 술은 가끔 맥주 한 캔 마시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아내 역시 다르게 느낀다.


아내는 장례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친구의 슬픔을 마주할 때, 아내가 겪을 고통의 크기는 짐작도 할 수 없다.

친구의 남편도 대학원 선배로, 오빠라 부르며 친밀하게 지냈단다. 아내는 오빠의 영정 사진과 친구의 무너진 얼굴을 감당해야 한다. 위로의 말을 전해달라고 말하기조차 버겁다.


이렇게,

죽음이 성큼 다가와 자신을 알린다. 잊지 말라고.

오늘을 어떻게 살 지는 네 마음이지만, 날 잊지는 말라고.

망각의 은총 속에 희로애락을 즐기며 살았지만,

이제는 틀렸다.

집에 있는 아내와 학교에 있는 아이, 그리고 컴퓨터 앞에 앉은 나를 둘러본다.

그동안, 우리 행복의 끝을 생각한 적 없다. 한 번도.


하지만,

그런 나이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