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질문에 돌아버린, 아니 돌아오는 아침
늦은 밤 1시 넘어 가까스로 잠들었다. 사그라지는 의식이 마지막으로 본 시각은 1시 15분이었다. 중요한 업무 보고가 있으니 머리를 맑게 하기 위해서라도 푹 자야 한다고 뇌까리며.
뒤척이다 눈을 떴다. 푹 잤을까. 머리맡을 더듬어 폰을 찾는다. 칠흑 속에 강렬한 화면은 섬광처럼 눈에 새겨진다. 5시 15분. 쓸데없이 무의식에 지배된 손가락이 앱을 누르면 뇌는 깨어나고 만다. 꿈으로 향한 문이 닫히는 데 걸리는 시간은 5초. 손가락이 검색 앱을 누르고 말았다. 눈은 네모난 빛에 적응하고 말았다.
다시 잘까? 공허하게 던진 질문은 답을 듣지 못했다.
엉뚱한 질문이 환영에 실려 메아리쳐 돌아온다.
회사 사무실, 내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나’를 전지적 시점으로 바라본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하지?
무엇을 보는지,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골똘히 빠져 모니터와 씨름을 하는 듯한 ‘나’를 보았을 뿐이다.
회사에서는 일을 하니까, 일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은 먹고살기 위해, 먹는 것도 살기 위해, 사는 것은 태어났으니까, 태어난 것은 부모님…
탓에?(부정적이고 패륜적이다), 덕분에?(긍정적이지만 인위적이다) 때문에?(중립적이지만 수동적이다)
쓸데없이 애써 키워주신 부모님을 머릿속 희극 무대에 올릴 이유는 없다. 시선을 돌려 의식의 물꼬를 터준다. 신이 보냈으니까. 보낸 이유는 있거나 없다. 여기서부터 선택의 문제다.
이유가 있다고 할까? 없다고 할까?
없다고 하면 물길이 끊길 것 같다.
에라, 있다고 하자. 문장을 다시 읊조린다.
보낸 이유는 영혼의 성장을 위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 거창하다. 지우고 다시.
보낸 이유는 더불어 살기 위해, 사는 것은 먹기 위해, 먹는 것은 돈을 벌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은 일을 하기 위해? 회사를 위해?
아, 첫 질문이 쓸데없는 이유는 가역적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일을 하는 것은 결과일 뿐, 원인이 아니었다. 질문의 수원지는 일도, 회사도 아닌, 돈이었다.
응? 그런데 웬 돈?
잠을 청하려 읽던 책 <자살하는 대한민국> 때문일까. 질문이 돌고 돌아 돈으로 향한다.
머리가 돈 걸까.
출생에 시간을 더하면 인생이 된다.
인생이 두텁지 못하고 베일 듯 얇고 위태롭게 느껴진다면, 어느 순간 제자리에서 돌고 있기 때문이리라. 돌고 도는 돈 때문에, 살고 살아야 할 삶이 흐르지 못하기 때문에.
졸리다.
6시 알람이 울린다. 창밖은 이미 밝다.
아침이 쓸데없이 돌아왔다.
지구가 한 바퀴 돈 까닭이다.
5초 룰은 진리였다.
그것은 쓸데없는 질문에서 도망칠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