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나와의 대화, 그리고 새로운 도약
어느 날 우편함에 한 통의 편지가 도착했다. 수신인 자리에 선명히 찍힌 나의 이름과 다르게 발신인에 그 어떤 이름도 적혀있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발신인불명의 편지를 꺼내 들었다.
편지 봉투는 흰색 바탕에 군데군데 벚꽃 잎 무늬가 연한 분홍빛을 띠며 양각으로 도드라져 있었다. 손끝으로 문지르면 섬세한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봉투 한쪽에는 일본 우표가 붙어 있고, 한 귀퉁이에는 우편날짜도장이 또렷이 찍혀 있었다. ‘2024.11.23.’
‘10년 전 오늘이라니… 잘못 찍힌 건가?’
의아한 마음으로 편지를 들고 집으로 들어왔다. 거실 소파에 앉으니, 아내가 커피 한 잔을 들고 와 건넸다.
“누가 보낸 거야? 요즘 이런 편지 받는 사람도 있나 보네.”
봉투를 열기 전, 문득 10년 전 내가 도쿄에서 파견 생활을 하던 시절이 떠올랐다. 편지를 손에 쥔 채로 나는 과거로 빠져들었다.
그때 나는 마흔다섯이었다. 한국 지사에서 꾸준히 인정받던 나는 도쿄 본사로 파견 근무를 준비하고 있었다. 당시 가족들과 이 문제로 수차례 이야기를 나눴지만 아내와 아들은 여전히 반대하고 있었다. 아내는 내 건강을 염려하며 말했다.
“혼자 가면 제대로 챙겨 먹지도 않을 텐데… 정말 꼭 가야만 해?”
나는 아내의 손을 잡으며 억지로 미소 지었다.
“걱정 마. 잘 챙길게. 그리고 자주 들어올 거야.”
그러나 아내의 표정은 여전히 무거웠다.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도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나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애써 밝게 말했다.
“아빠가 자주 들어올게. 이제 다 컸으니 엄마 일도 도와주고. 엄마랑 일본에 오면 디즈니랜드 가자!”
아들은 그 말을 듣고도 한동안 입을 삐죽거렸다. 가족과 떨어지고 싶은 가장은 없다. 외벌이 아빠는 고민을 거듭했다. 결국 회사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위해, 그리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기 위해서 떠났다. 당시, 나는 작가라는 꿈을 품고 있었다. 3년의 일본 생활 동안 언어도 배우고, 견문을 넓히며 글감을 쌓겠다는 셈법이었다. 인생 후반전을 앞두고 남은 10년을 도약의 밑거름으로 만들고 싶었다.
도쿄에 도착한 첫 달은 모든 것이 낯설고 고단했다. 회사에서는 다른 언어와 문화 속에서 업무를 익혀야 했고, 퇴근 후 기숙사로 돌아오면 쓸쓸함이 몰려왔다. 혼자라는 사실이 실감될 때마다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3년 동안만이라도 이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자. 이 시간이 나와 내 가족의 미래를 위한 마중물이 되도록.”
나는 아내와 아들에게 약속했던 대로 매일 저녁 짧게나마 영상 통화를 했다. 아내는 가족의 일상을 전하며 내 안부를 묻곤 했다. 힘들고 쓸쓸하다는 말은 할 수 없었다. 아들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신나게 떠들었지만, 가끔 “아빠 언제 와?”라는 말이 빠지지 않았다. 그 말이 가슴을 저미게 했지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아빠 곧 갈게.” 한편, 주말에는 온라인으로 문예창작과 수업을 들으며 작가로서의 꿈을 키워갔다. 도쿄의 이곳저곳을 걸으며 글감을 모으는 것도 일상이 되었다. 신주쿠의 번잡한 거리, 아사쿠사의 고요한 골목, 우에노 공원의 벚꽃 터널까지, 모든 곳이 나에게 새로운 영감의 원천이었다. 단골 가게도 생겼다. 카레라이스 전문점의 사장님은 나보다 더 한국을 좋아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고요? 책을 내면 저한테 보내줘야 해요. 사인도 잊지 말고.”
그의 격려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날, 사장님은 벽에 장식된 우표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허 상, 도쿄역 우체국에 가보세요. 우리의 역사를 담은 예쁜 우표들이 많아요.”
나는 그 말에 끌려 주말에 도쿄역 우체국을 찾았다.
도쿄역 우체국은 고풍스러운 매력을 가진 건물이었다.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 햇살 아래에서 나는 우체국 앞에 섰다. 안으로 들어가니, 우체국 한쪽에서 작은 이벤트가 열리고 있었다. ‘10년 후 나에게 보내는 편지?’
커다란 플래카드 밑에는 벚꽃 나무 조형물이 있고, 주변의 아기자기한 형형색색의 엽서, 사진, 우표들이 어우러졌다. 넓은 공간 곳곳에는 나무기둥 형태의 테이블이 놓여 있고, 그 위에는 펜과 편지봉투 세트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나는 하얀 벚꽃이 새겨진 편지지를 골랐다. 펜을 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안녕, 55세 허사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은 안 되지만, 후회 없는 멋진 모습일 거라고 믿어. 나는 늘 최선을 선택했고, 선택 후엔 최선을 다했으니까. 벚꽃 흐드러진 도쿄의 봄은 너에게 편지를 보내기 딱 좋은 시간과 장소야. 헬로 라이프 55! 이제 또 다른 인생을 열어갈 널 축복해. 그리고 사랑한다.’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더 적었다.
‘자신을 무조건 믿어.’
10년 후의 나를 떠올리며, 우체통에 편지봉투를 넣었다.
55세가 된 지금, 나는 한국 지사의 임원으로 아직 회사에 남아있다. 그리고 에세이스트이자, 소설가다. 그동안 책도 세 권이나 출간했다. ‘선택의 기로에서 도쿄로, 나는 날다’ ‘헬로 라이프, 삶을 편집하다’ ‘공돌이는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나, 인생 특이점’ 모두 도쿄에서 보낸 시절이 시작이었고, 글의 배경이었다. 마흔이 넘어 삶을 고민하는 이 세상의 중년들에게 하나의 길잡이로서, 입체적으로 고민하되 선택을 하면 자신을 믿고 밀고 나가자는 내용이었다.
회상에 젖은 채, 손끝으로 편지 봉투를 어루만진다. 조심스레 편지지를 꺼내 읽는다. 10년 전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전하는 목소리는 너무나도 선명했다. 머릿속에서는 지난 10년이 흑백 영사기를 빨리 감는 것처럼 스쳐 지나간다. 아내의 손을 잡고, 눈을 바라본다.
“고생 많았어, 늘 고맙고”
서재로 가서 엽서를 하나 꺼냈다. 푸른 하늘 아래 너른 들판에서 백조 한 마리가 날아오르는 이미지가 인상적인 엽서였다. 나는 펜을 들었다.
‘안녕, 65세 허사이.
너는 여전히 멋진 삶을 살고 있을 거라 믿어. 벚꽃이 흩날리던 그 봄날의 결심이 오늘의 너를 만들었으니, 앞으로도 자신을 믿고 나아가길.
그리고 새로운 10년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길 바라.’
55세 허사이는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고 싶고, 직접 아이들을 돕고 싶다. 그래서 틈나는 대로 동화를 쓰고 있고, 또 불우한 소년소녀를 위한 봉사활동도 시작한 참이다.
엽서를 봉투에 넣으며, 나는 미소 지었다.
“지금까지 걸어온 순간들이 나를 만들었다면, 앞으로의 시간은 나를 다시 창조할 기회야.”
10년 전 도쿄의 봄날처럼, 오늘도 또 다른 10년을 시작하는 첫 줄이 쓰이고 있었다.
*소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