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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사이 Nov 28. 2024

권력과 본성, 그리고 변화의 딜레마

권력은 무죄, 차라리 내게로 오라

업무시간 자리에 앉아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으면, 옆에서 대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린다. ‘참, 생각 없이 사는 인간들 많아, 신발’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알고 있는 나는 깜짝 놀란다. 오늘 기분 나쁜 일이 있었나? 다음날, ‘개아이들, 말귀를 못 알아 쳐드셔 ‘ ’ 걔네들 머리가 텅 빈 님들이야. 설명을 해도 못 알아들으니 우리가 이렇게 해 ‘ ’님이 그동안 어떤 식으로 일했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하면 곤란하지. 내가 관리자 일을 할 수가 없네 ‘


관리자는 피아식별을 기준으로 여러 부류로 나뉜다. 내팀만 소중, 타팀만 소중, 나만 소중, 무관심. 난 목소리의 주인공과 몇 차례 술자리도 하고 따로 깊게 이야기를 나눈 적도 있기 때문에 호감을 갖고 있었다. 겉모습도 둥글둥글 인상이 좋아 기회가 되면 함께 일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그는 굳이 나누면, 나만 소중한 타입이었다. 말도 함부로 하는. 주위에 대다수가 40대 중반이다. 그가 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최근에 승진하여 직책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감투를 씌어주면 본성을 알 수 있다고 했던가. 그는 분명 똑똑하다. 그는 똑똑해서 권력을 잡을 때까지 기다린 것일까. 직책자가 되기 전과 후의 태도가 달라졌다. 아니, 과연 달라진 것일까?


사람의 성격을 시험하고 싶다면, 그에게 힘을 주어라 - 링컨


40대는 반응을 기다리는 혼합물과 같다. 진보와 보수의 갈림길로, 어떤 행위나 조건을 갖추어 활성화에너지를 넘으면 진보가 되고, 그렇지 않으면 보수가 된다. 밖으로는 마음을 열어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을 하되, 안으로는 책도 읽고 사유를 하는 것이 진보를 위한 에너지다. 진보는 에너지가 필요하다. 솔직히 피곤하다. 가만히 있으면 보수가 된다. 지키기만 하면 된다. 이 두 부류에게 권력이 주어졌을 때 서로 다른 성질로 변한다. 권력은 역촉매에 가깝다. 활성화에너지, 즉 진보가 되기 위한 장벽을 높인다. 따라서, 권력을 가진 진보가 되기란 쉽지 않다.


진보란 열린 마음으로 변화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끊임없이 탐구하고 수용하고 비판하는 자세를 말한다. 고인 물은 썩는다. 권력과 보수가 만나 시간이 흐르면 부패하기 쉬운 이유가 아닐까.


허례허식과 위선을 ‘악’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불순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눈을 가린다.


나름 기대했다. 그가 권력을 잡을 때 세상이 조금이나마 바뀔 것이라고. 몇 가지 행동과 말투로 섣불리 판단할 수는 없다. 내가 모르는 다른 장점으로 권력을 쟁취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다만, 사소한 언행에서 풍기는 위화감은 나를 실망시킨다. 아직 젊다. 현실에 안주하기에는 아직 젊다. 반백년도 살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그도 아이 아빠다. 우리만 살다갈 세상이 아니다.


세상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다. 구태는 벗어던지고 변화된 세상에 맞춰 새 옷으로 갈아입어야 한다. 현실 안주의 끝은 도태다. 인공지능과 로봇, 뇌과학, 유전학, 우주공학이 보증한다.


보수의 옹벽이 제아무리 완고할지라도 끊임없는 낙수 방울에 결국 뚫리리라.


이따위로 할 거면, 차라리 내게 권력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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