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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Nov 08. 2021

11월 8일 월요일

늦가을 비가 내리는 월요일의 일기

1. 오늘

간밤에 모기와 보일러 열기로 자는  마는  밤을 꼬박 보냈다. 그 덕인지 여느 월요일보다 일찍 일어나 머리를 바싹 말리고 출근을 했다. 평화로워 보였지만 휴대폰을 집에 두고  사실을  순간부터 지옥 시작.


재택이 끝난 남편은 더 이상 나의 자잘한 심부름을 해줄 수 없고 비가 너무 많이 내려 퀵 비용도 2배가 넘게 올라갔다. 결국 11시가 다 돼서야 지퍼백에 담긴 휴대폰을 받았다. 그 사이 미팅은 하나 잡혔다가 캔슬됐고 오전 내내 걷잡을 수 없는 많은 일이 벌어졌다.


점심을 먹고 아이스커피를 마시고 정신을 차려보니 퇴근시간. 퇴근 후에는 입사 6개월 만에 있는 나의 입사 환영 회식이 있었다. 이쯤 되면 내 몸을 가장 잘 돌보지 못하는 건 나인가 싶을 정도로 뭉치는 배를 부여잡고 겨우 저녁식사를 마쳤다. 오늘은 정말 길고 지겨웠다. 월요일이라니.


2. 비

아마도 거의 10 전쯤이었던 것 같은데. 비가 억수로 내리던 어느 저녁 올림픽공원 잔디마당에서 이적 공연을 본 적이 있었다. 이제는 전설  이름 같은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의 마지막 날, 마지막 밤 공연이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낙엽이 돗자리에 덕지덕지 붙고 손발이 얼었다. 그래도 20대였으니까 즐거움이 가장 크긴 했다. 추위 따위.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무대로 비가 들이쳤는데 그때 이적이 ‘Rain’이라는 곡을 부르기 시작했다. 뒤에 세션들이 악기와 스피커를 비닐로 열심히 싸매고 있던 그때 ‘오늘도 이 비는 그치지 않아’로 시작된 노래에 짐 싸던 사람들도 모두 멈췄던 영화 같던 순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노래를 시작하던 이적의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년 봄엔   있을까 페스티벌. 정수리가 벌겋게 익도록 잔디마당에 누워서 낮잠도 자고 밤에는 담요를 돌돌 말고 헤드라이너 공연까지 꼬박 보고 집에 와서 즐겁게 잠들던 계절들이 그립다.


3. 가을 산책

삼청동의 가을은 정말로 아름답다. 작년에도 그 작년에도 늘 가을 그러니까 11월 즈음엔 삼청동에 갔다. 알 사람은 다 아는 영추문 앞 철문으로 닫힌 무명의 건물 앞의 은행나무가 얼마나 예쁜지. 그리고 삼청동 언덕 위로 올라가는 좁은 길의 은행나무가 바람이 불 때마다 얼마나 많은 은행잎을 쏟아내는지 모른다.


오전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지만 경복궁 주차장 줄이 거의 삼청동 초입까지 서 있었다. 우리는 브런치를 먹고 삼청공원 한 바퀴를 느리고 짧게 걸었다. 얼마나 아름답던지. 화담숲도 석촌호수도 아니고 삼청공원에서 단풍 구경을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의외의 장소에서 큰 감명을 받았다. 남편은 무려 행복하다고 했다. 돌이켜보니 나도 행복했던 것 같다.



4. 집에 대한 단상

본격적인 인테리어를 일주일 앞두고.

2년 간 사랑으로 가꾼 이 집을 떠날 날을 이 주 앞두고.

새로운 동네에서 낯설게 시작할 날을 한 달 앞두고.


지난 주말 따뜻하게 들어오는 햇살을 바라보면서 정말 복 받았던 시간이었다고 여러 번 생각했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이사 온 이 집에서 나는 우울한 휴직 기간을 보내며 아침마다 햇살에 몸을 비춰가며 심심한 기분을 달랬다. 남편은 햇살을 등지며 일 년 넘게 재택근무를 했고 나는 곁에서 책을 읽고 공부를 하기도 했다.


늘 연남동 신혼집을 생각하면서 코로나 시절에 그곳에서 하루를 보냈더라면 얼마나 답답했을까 서로를 위안한다. 창문 옆에 옆 건물의 창문이 붙어있고 좋아하는 음식점과 카페들이 줄줄이 문을 닫는 모습을 보면서 조금은 쓸쓸했을 것 같기도 하고. 사실 이 집의 가장 큰 매력은 아침부터 오후까지 쏟아지는 햇살이기 때문에 우울해도 환기를 할 수 있었다. 새로운 집에서도 금방 적응하고 정 붙이며 살겠지만 (역대급 일회성 비용인 인테리어까지 하고 들어가니 어련할까) 왜인지 우리 집은 이 집인 것 같고. 아쉽고 조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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