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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Nov 22. 2021

11월 22일 월요일

이사를 일주일 앞둔 월요일의 일기

1. 이사

주말에 짐을 빼기로 했다. 다행히 주중에 영하로 떨어진 날씨가 주말엔 다시 영상권으로 회복된다고 한다. 첫 이사 시점이 12월 1일이었던 관계로 자연스레 겨울이 시작되는 즈음에 이사를 나간다.


어제는 급하게 이불 커버를 걷어 빨래를 했다. 이삿짐을 빼고 인테리어를 기다리며 머물 2주간의 숙소에서 쓸 생활용품들도 함께 챙기고 있다. 휴지와 치약, 수건과 속옷, 이불 커버와 세탁세제같이 전혀 관련 없지만 2주의 시간 중 단 한 번이라도 쓸 것 같은 물건은 죄다 챙기고 있다. 이사하는 날 그저 천둥번개나 폭설만 오지 않기를. 그 외에 나머지는 운과 준비에 맡겨보려고 한다.


2. 지구에서 한아뿐

11월 내내 계획되어있던 주말근무를 위해 지구에서 한아뿐 전자책을 빌렸다. 근무라고 하지만 시험 감독류의 자리 지키기가 전부여서 어느 때보다 조용한 장소와 시간에 독서를 즐길 수 있었다.


정세랑 작가의 책은 언제나 책등이나 표지나 봐왔지 한 번도 구입해본 적은 없었다. 읽어본 적도 없었고. 좋아하는 책의 90% 이상이 소설인데도 불구하고 조금 낯설었다. 지구에서 한아뿐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한 날 하늘에 개기월식이 있던 날이었다. 한껏 들뜬 아빠와 아들이 아파트 사이로 붉어진 달을 보고 있었다. 왜인지 ‘경민’과 ‘아폴로’가 그곳에 있을 것만 같았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운 좋게 자리가 나 10분 남짓의 거리를 편하게 앉아서 갔다. 그 10분 동안 책을 읽었다. 올해 들어 처음으로 마음 편히 독서를 즐기는 기분이었다. 어쩐지 종종거리게 됐던 한 해였는데. 참신한 소재의 소설에 몰두할 수 있는 아침과 저녁이 평화롭고 평온하기까지 했다. 얼른 내일 출근길 지하철에서 또 읽고 싶다. 물론 출근이 기다려진다는 의미는 아니고.


3. 여행

같은 사무실 조금 먼 자리의 동료가 신혼여행으로 글쎄 스페인을 간단다. 아래층 조금 낯선 동료도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간다고. 그 소식을 듣고 그 길로 괌으로 가는 티켓을 알아봤다. 신혼여행이라는 명분이 없는 나와 남편은 결국 부산에 있는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었던) 숙소를 예약했다. 지금 이 시국에 부산이라도 어디냐 하면서.


시국이 이러기 전까지만 해도 명절 연휴 초반에 짧은 근무를 마치고 그 길로 해외로 도망치듯 떠나곤 했다. 겨울엔 따뜻한 남국으로 가는 게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었으니까. 숨이 턱턱 막히는 괌 투몬베이에 앉아 겨울을 맞아 큰 맘먹고 돈 들여 제거한 주근깨를 하루 사이에 다시 자글자글하게 올라오게 하면서도. 뻣뻣해진 머리와 말도 안 되는 호텔 컨디션에도 즐거웠던 겨울 속의 여름들. 모르겠고 부산이라도 가는 게 어디냐. 벌써 즐겁다!


4. 정체성

한 달 전쯤 심리상담 선생님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납득이 안 되는 어떤 부분은 ‘그 사람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라고 말해준 솔루션이 계속 마음을 맴돈다.


언젠가 너무도 최선을 다 하고 있는 회사 속의 나를 보며 남편은 나를 괴롭게 하는 인간관계를 ‘층간소음’이라고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덜어내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저 그 사람의 정체성이고 그것이 층간소음 정도라고 생각하며 내 인생에 깊숙하게 안 들이면 그만인 것을. 오늘은 그래도 적정한 거리를 두며 내 에너지와 내 진을 다 빼지 않고 잘 담아 집으로 왔다. 회사생활 정말 녹록지 않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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