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월요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무 Apr 04. 2022

4월 4일 월요일

겨울 외투를 옷장 깊숙이 넣어버리고 맞이한 월요일의 일기

1. 세탁특공대

이러나저러나 집안일은 모두 번거롭다. 집에서 잠만 자던 삶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끼니부터 간식까지 잘 챙겨 먹는 요즘의 삶으로 넘어오면서 집안일은 정확히 2배가 되었다. 3일에 한 번은 쓸고 닦아야 깨끗한 집이 유지되고, 쌓인 설거지를 무시하기 어려워 매 끼니 손을 걷어붙여야 한다. 누군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리고 주로 누적된 지저분함을 참을 수 없는 사람인 내가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묵묵히 맡은 일을 해낼 뿐이었다.


얼마 전 새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집안일의 아웃소싱을 시작했다.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나를 대신해 스팀을 뿜어내며 해내고, 보리차 끓이기를 멈추고 정수기를 들였다. 이토록 고도화된 살림이라니. 그나마 가장 선호하는 청소와 세탁에의 아웃소싱은 고려할 필요도 없이 이미 많은 일을 덜었다. 아니 그렇다고 생각했다. 세탁특공대를 만나기 전까지.


겨울 외투를 잔뜩 모아 세탁특공대에 맡겼다. 여러모로 유용한 쿠폰을 모아다 쓰니 한 벌에 1만 원 꼴로 드라이를 맡길 수 있었다. 금요일로 넘어가는 목요일 밤늦게 문 앞에 내놓으니 그다음 날 수거 목록과 결제 안내 메시지를 받을 수 있었다. 맡긴 지 만 2일 만에 집 앞으로 드라이된 옷들이 도착했다. 심지어 새벽 배송. 이토록 편한 집안일 아웃소싱이라니. 남편과 우스갯소리로 코인세탁방에서 제2의 수입을 거두자는 말이 정말 우스울 정도로 세상이 이렇게 좋아졌다.


2. 운동의 기쁨과 슬픔

지난주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고 또 지쳐 운동을 한 주 쉬었다. 그 대신 이번 주는 호기롭게 3일이나 운동을 잡아두었다. 운동을 시작하자마자 척추를 쭉쭉 늘리고 또 겨드랑이 아래 어딘가 불편했던 곳들을 모두 늘리고 나니 숨이 쉬어지는 통로가 느껴질 정도로 시원했다.


운동을 ‘가는데’ 있어서 아무래도 가장 큰 난관은 역시 운동 전 3시간. 그 시간을 정신없이 넘기고 나면 어느새 현실을 받아들이고 운동복을 챙기는 나를 발견한다. 막상 운동을 ‘하는데’ 있어서의 난관은 없는 걸 보면 운동의 슬픔은 주로 전자에 있는 것 같다.


운동기쁨으로 꼽고 싶은  정자세로 잠에   있다는 .  뒤척이다 잠에 들면 이상한 자세로  몸을 꼬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새벽 즈음 다시 자세를 고쳐도 이미 온몸이 울퉁불퉁하고 쑤시는 아주 불쾌한 기분이 든다. 운동을  날은 우선 피곤함이 배가 되어 그럴 수도 있지만 아주 똑바로 정자세로, 그러니까 요가의 사바아사나 자세로 잠에 들었다가   있다. 운동의 기쁨이자 순기능.


그러니 운동을 가는 데서 오는 슬픔만 이겨내면 되는 거다. 그 이후는 기쁨뿐이니까. 어디선가 나이가 들 수록 모든 것이 익숙해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 의지와 욕망 모두가 그나마 체력이 받쳐줘야 한다는 글귀를 본 후로 늘 생각한다. 살기 위해서, 잘 살기 위해서 운동한다고.


3. 1분 1초

요즘 9 to 6 내 삶은 1분 1초가 부족하다. 점심시간과 퇴근시간을 잘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 달린다. 친구들과의 수다도 종종 머리를 비우기 위해 했던 공상도 모두 사치. 그저 아침 출근길에 적어둔 ‘오늘의 할 일’ 리스트를 지워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이렇게 바빴던 적이 언제였나 돌이켜보면 일이 한참 재밌던 지난 회사 생활의 이른바 황금기뿐이었는데. 지금은 보람을 느낄 새도 잘못을 돌이켜보고 바로잡을 새도 없다. 그저 맡은 바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가만히 누워 하루간의 휴식을 몰아 취해야 한다. 일의 사이클이 10주마다 동일하게 돌아가는 업무의 특성을 잘 파악하는 게 목표다. 이번 봄의 목표.


4. 주말엔 숲으로

오랜만에 화담숲을 걸었다. 벚꽃이 피기엔 조금 서늘한 날씨 탓에 진달래 몇 송이와 수선화만 잔뜩 보고 왔지만 오랜만에 근교에 나가니 기분이 좋았다.


그다음 날은 어쩐지 눈이 너무 빨리 떠져 아침 일찍 창경궁에 갔다. 처음엔 창덕궁 홍매화를 볼 작정으로 길을 나섰지만 사실 창경궁의 풍경도 절경이라 굳이 더 걷지 않고 돌아왔다. 나무마다 새 잎을 틔우고 매화가 곳곳에 피어 궁과 어우러졌다.


저녁이 오기 전 집 앞 공원을 한 바퀴 걸으면서 주말 내내 숲과 궁과 공원을 이틀 동안 걷고 있는 우리 부부의 모습이 귀엽고 웃겼다. 이래서 중년의 부부들이 봄이면 꽃구경 가을이면 단풍구경을 핑계 삼아 산으로 들로 떠나서 결국 한참을 걷다 오나 싶었다. 겨울이 지나니 어떤 것을 해도 좋은 계절이 왔다. 걸어도 좋고 쉬어도 좋은 날씨. 4월엔 부디 건강하고 평안한 일만 가득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3월 28일 월요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