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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Sep 22. 2022

임신 8주차

아기 크기 18.29mm, 심박수 172bpm

8 2. 일생일대의 술기운 없는 숙취, 엄청난 울렁거림으로 아침을 마주했다.


좋아하는 냉면도 김치도  먹고 빵도 쿠키도 모두 밀쳐가며 매일 먹히는 음식으로 겨우 조금씩 골라 먹는 입덧 시즌이 이어진다. 입덧 덕에 불안감을 덜어낼  있었지만 체력도 덜어냈다. 지하철에서 임산부석에 누군가 앉아있으면 매정한 마음에 약간 눈물 나는 그런 체력.


입덧과 함께 달라진 점은 불면. 새벽 3시면 칼같이 일어나 속쓰림을 버텨냈다. 그 시간에 무엇을 먹기엔 입덧이 올라오고, 아무것도 안 먹으니 속이 쓰리고, 어쩌면 입덧 때문에 조금 비어져 있던 속에서 탈이 나 잠에 들지 못했던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몸이 어떻든 아기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샌가 18mm 되었다. 초음파를 보는 내내 약간 덩어리 같아 보이는 묘한 느낌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는데, 원장님께서 화살표로 콕콕 집으시며 “여기는 머리 여기는 엉덩이, 그리고 이건 팔과 다리예요."라고 하셨다. 화살표를 따라가야 겨우 보이는   아가의 모양새. 예전엔 아주 작은 씨앗을 보시며 이게 아기집으로 자랄 거예요 라는 말씀을 듣고 조금 의심했던 과거의 나. 이젠 그저 팔이라 하시면 팔인가보다 다리라 하시면 다리인가보다 한다.


8주차는 사실 나에게 고비와 같은 주간이었다.


심장박동수가 주수 대비 정상 범위에 들어오지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다른 산모의 초음파에서처럼 '꼬마곰' 모양의 태아가 나에게도 찾아올까라는 끊임없는 기대감과 의심이 들기도 했다. 저화질의 난임 병원 초음파에서 보이는 태아가 덩어리이건 꼬마곰이건 뭐가 대수랴. 그저 주수 대비 정상 범위의 아기 크기와 심박수만 확인했으면 됐다 싶었다.


주수별 아기 크기 비교 / 8주차, 정말 젤리크기(Jelly Bean)가 되었다.
블로그 발췌 / 주수대비 정상 크기 확인표(50th: 평균)


다행히 주수대비 (8주 2일 기준 56일+2일) 아기의 머리부터 엉덩이까지 길이(CRL; 아기 크기)와 심박수(HR) 그리고 매번 재지 않지만 아기집크기(GSD)도 모두 정상이었다. 정상이라니.


나의 유산 이력이 남긴 ‘고위험 산모’ 라는 꼬리표 덕에 지난  달의 진료 동안 직간접적으로 대학병원으로의 전원을 권하던 원장님은 이제 태아 상태로 보았을  일반병원에서의 분만도 가능해 보인다는 소견을 주셨다. 마침내.


임신을 알게 된 지 꼭 한 달째, 달라진 점은 뭐니 뭐니 해도 눈에 띄게 떨어진 체력. 그 외에도 손발 저림, 입덧으로 인한 입맛의 변화, 새벽 3시면 눈을 뜨는 불면과 속옷과 옷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이 모든 것으로 비롯한 삶의 질 대폭 저하도 큰 차이점 중 하나였다. 지난 6개월을 일주일에 1~2번씩 꼬박꼬박 가던 필라테스도 하루만 보 걷기도, 짧은 등산도 못하니 소화도 안 되고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매일을 어김없이 내 속의 파도로 병든 닭처럼 보냈다. '헤어질 결심'이 개봉하고 조금 더 지나면 영화관에 앉아 영화를 보는 것 마저 아기에게 해로울 수 있다기에 부랴부랴 영화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한 번, 보면서 한 번, 보고 나와서 한 번, 강한 입덧의 파도가 찾아왔다. 이러다 몇 주 더 지나면 물리적인 구토가 나올 것 같아서 걱정이 됐다.


일반 산모의 안정기는 유산 확률이 떨어지는 12주라고 하지만 내 마음속의 안정기는 8주부터 비로소 시작됐다. 임신확인서를 발급받고, 임산부가 신청해야하는 여러 정부 혜택들을 알아보기도 했다. 분만병원 주치의 원장님(미래와희망 정희정 원장님)의 예약을 잡고, 산후조리원(트리니티 삼성) 얼리버드 예약을 진행했다. 산후조리원을 선택한 이유는 전후사정 볼 것 없이 병원과 근접하고 남편 회사 바로 코 앞이면서 마사지에 능한 곳. 얼리버드로 하니 마사지를 모두 포함한 중간 단계 방으로 예약해도 아주 큰 부담은 되지 않을 것 같아 바로 예약을 진행했다. 산후조리원까지 예약하다니 이제 정말 '산모'가 되는 전환점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임신 8주차 증상

- 아기 크기 1.8cm

- 모든 음식의 냄새가 뚜렷하게 난다

- 속옷과 옷이 불편해지기 시작

- 손발 저림

- 체력 저하 심해짐

+ 산후조리원 예약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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