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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Feb 13. 2023

2월 13일 월요일

9개월 만에 홀몸이 된 후 쓰는 낯선 새벽의 월요일기

1. 임신과 엄마의 상관관계

몇 년 동안 임신이 되기를 고대했다. 뱃속에 블랙홀같이 작은 아기집이 생기고 반짝이는 심장을 보고, 손과 발이 생겨 꼬물거리는 작은 생명체를 보면서도 사실 엄마가 된다는 생각보다는 임신이라는 작은 프로젝트를 성공했다는 기쁨이 더 컸다. 임신기간 내내 가장 궁금했던 건 뱃속 작은 세포의 성장과 나의 안녕이었을 뿐, 9개월 후 엄마가 된 이후의 삶이 궁금했던 적은 없었다. 그저 때가 되면 배가 부르고 배가 부르면 애가 나오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출산을 앞두고 숨이 차고 운전을 할 수 없어지면서 출산휴가에 들어갔다. 휴가 내내 잘 먹고 잘 자는 것 말고는 여전히 달라진 건 없었다: 뱃속의 존재가 입을 옷을 세탁하고 몸을 뉘일 작은 침대를 구입해 방 한 구석에 넣어두긴 했지만 여전히 엄마가 되기 위한 적극적인 준비나 마음에서 우러난 행동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집정리나 이사 수준의 마음가짐이었을 뿐.


그래서였는지 수술장에 누워 아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도 갈고 낯설었다. 항생제 테스트에 수액을 꽂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병원에 왔구나 싶었는데, 수술장 베드에 누워 새우등을 하고 차가우면서도 뜨거운 마취액이 엉덩이 부근에 퍼지기 시작하면서 너무도 순진하게 이 약은 아기에게 괜찮을까라는 생각 따위를 하고 있었다.


‘타이레놀도 겨우 한 알씩 먹어왔는데, 이 약 정말 아기는 괜찮을까? 아. 이 약을 맞고 아기를 낳는 거였지. 그럼 아기가 이제 정말 태어나는 걸까?’


그 순간 긴장이 되었는지 심박수가 빨라지고 기계음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마취과 선생님이 발걸음을 멈추시고는 “산모님, 지금부터 벌써 긴장하면 안돼요. 숨을 천천히 쉬고 심호흡을 계속해보세요.”라며 두어 번 말씀하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수술이 시작되었다. 그 길로 나는 깊은 수면에 빠져 5분 후 태어난 아기의 얼굴은 결국 보지 못한 채 회복실로 옮겨졌다.


회복실에서 처음 본 얼굴에게 “아기는 괜찮나요?”라고 여쭈었다. 아기는 생각보다 더 건강하고 튼튼하게 잘 태어났다고, 보호자분이 사진도 영상도 많이 찍어가셨으니 나중에 병실에서 보시라며 가벼운 농담도 전해주셨다. 정기검진에서 확인한 아기 크기에 비해 거의 1kg나 더 큰 아기가 태어나면서 수술 부위에 비해 아기가 더 커서 겨우 꺼냈다는 원장님의 소소한 무용담을 듣고도 나는 여전히 임산부였을 뿐, 3.6kg의 포동포동한 아기의 엄마로서 그 이야기를 듣고 있지는 않았다.


수술 1일 차, 소변줄과 척추로 가는 무통주사 그리고 마약성진통제까지 달고 2시간에 한 번씩 잠에 들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 해 물을 마시고 미음을 먹으면서 남편을 보내 아기 사진을 여러 장 찍어왔다. 남편은 나보다 조금 격양된 모양새이긴 했지만 딱히 아빠가 된 것 같진 않았다. 조금 낯선 아기가 태어났다고 말했다. 아기가 태어나고 태명을 불러주라는 간호사 선생님의 말에도 입이 떨어지지 않아 겨우 반갑다는 인사만 했다고 말하는 남편의 마음이 십분 아니 백분 이해가 갔다.


수술 2일 차, 새벽부터 소변줄을 떼고 4시간 이내에 화장실도 가고 걷기 연습도 해야 하는 미션을 받았다. 후들거리는 다리는 붙잡고 겨우 몇 걸음을 걷고 나니 아기가 궁금해졌다. 내 이름을 달고 있는 달덩이 같은 아기를 보고 싶었다. 예상보다 조금 더 긴 시간의 걷기 연습을 거쳐 출산 30시간 만에 아기 얼굴을 마주했다. 정말 크고 동그란 달이 뜬 것 같았다. 입을 오물거리기도 하고 머리를 좌우로 열심히 밀어내며 자고 있었다. 임신기간 내내 뱃속에 떡 하니 앉아있던 역아, 동그란 머리로 갈비뼈를 밀어내던 그 모양새였다. 겨우 30cm 정도의 보폭을 유지하며 입원실로 돌아왔다. 태어난 날보다는 부기가 조금 빠진 생김새에 남편은 이제야 조금 우리 아기 같다는 말을 했다. 눈매에서 남편이 콧방울에서 내가 보였다. 시할머니 얼굴이 보이기도 하고, 일 년에 한 번 겨우 보는 고모 얼굴이 보이기도 했다.


수술 3일 차, 몸에 달려있던 줄을 대부분 제거했다. 간이 되어있는 아침식사를 받으면서 얼른 일어나서 아기를 보러 가자고 말했다. 무통주사 덕에 보폭도 늘어나고 걷기도 수월해졌다. 아침 7시부터 한두 시간 간격으로 여러 번 아기를 보러 갔다. 신생아실 간호사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아기 상태에 대한 대략적인 브리핑을 해주셨다. 아기가 생각보다 예민한 지 주위 소리에 반응해 계속 깨어 울고, 밥을 먹자마자 또 달라고 운다던지, 안아달라고 칭얼거리기 시작했다고 했다. 놀랍지도 않았다. 운전대를 잡고 후진 경고음이 울리는 순간 머리로 나를 밀어내던 아기였다. 사무실의 캡슐커피머신에서 들리는 일정한 진동소리에도, 텔레비전을 보며 깔깔거리는 내 큰 웃음소리에도 늘 반응했던 아기였다. 우리 가족들과 비슷하게 생긴 줄만 알았던 달덩이 아기가 내 뱃속에서 했던 여러 행동들을 하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저녁즈음 내려가니 아기가 보이질 않았다. 울어도 너무 울어 시원한 기저귀 갈이대 위에서 재우고 있으니 깨울 수 없다는 수신호가 왔다. 아기가 너무 운다고 몇 시간째 전해 들으니 조금 울컥했다. 내가 가진 예민한 기질을 숨기지 않고 내 멋대로 아기를 품은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과일이며 고기며 열심히 먹어 재끼다가 결국 1킬로나 더 커서 나오는 바람에 간호사 선생님들이 안아주기를 기피하는 거대한 아기가 돼 버린 게 문제일까, 아니면 다른 방의 산모들처럼 모유를 조금이라도 주면 아기가 늘어난 뱃골을 채우며 덜 울 수 있었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오고 갔다. 내가 조금 더 준비했더라면, 어떤 상황이 올지 미리 공부하고 대비해 왔더라면 덜 당황스러웠을까 싶었던 순간이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수술 3일 만에 내 몸을 지켜야 했던 임산부에서 나와 또 다른 존재를 돌봐야 하는 엄마가 돼버렸다.


출산을 마치고 남편과 누워 임신이 끝나면 엄마가 될 거라고 생각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눈앞에 아기가 나타나고 또 내가 그 아기를 지켜야 하는 엄마가 될 거라고 임신기간 내내 단 한순간도 진심으로 준비한 적이 없었노라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남편도 웃으면서 자기도 그렇다고 했다. 아기가 낯설어 유리창 너머로 아무 말도 못 붙이다 삼일이 지난 이제야 그 아기가 진심으로 귀엽고 예쁘기 시작해 사랑하는 마음이 들기 시작한 우리가 부부에서 부모가 되었다는 사실이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


이제 조리원에서의 2주가 시작된다. 홀쭉해진 배 위로 선명한 임신선과 수술 자국만 남았다. 홀몸에 적응하기도 전에 아기를 안고, 먹이고, 재우면서 아주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배워야 하는 시간. 이제는 내 몸에 주렁주렁 달린 무통주사도, 진통제도 없다. 내 몸을 챙겨가면서 갑자기 선물처럼 등장한 실물 아기를,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저 얼굴만 봐도 사랑하는 마음이 샘솟는 이 아기를 데리고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잘할 수 있을까? 다른 건 다 모르겠고 생애 첫 외출인 조리원까지의 이동이라도 잘 마치면 좋겠다. 아가 10분, 딱 10분부터 시작이다. 우리 지난 9개월의 팀워크가 있으니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잘 부탁한다!


2. 타코

병원에 누워있으면서 철없이 먹고 싶은 것들만 떠오른다. 어느 날엔 김치 왕만두가 어느 밤엔 올리브가 잔뜩 들어있는 빵이 먹고 싶어 졌다. 맘카페에 보니 첫날부터 커피도 벌컥벌컥 들이켠 사람들도 많던데, 간호사 선생님이 모유수유를 생각해서라도 병원밥만 먹으라고 강조하신 덕에 더욱더 바깥 음식이 먹고 싶어 졌다. 난 모유수유를 위해 입원한 게 아니잖아 라는 삐뚤어지는 심보.


생각해 보니 항생제에 진통제에 이미 모유는 쓸 수 없는 상태이니 먹을 거면 지금 먹는 게 맞는 것 같아 남편에게 졸라 타코를 사 먹었다.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올까 봐 약간 무서워하면서, 양심상 맵고 짜게는 안 먹겠다며 디핑소스는 하나도 찍지 않은 채 우물거리며 먹는 모습이 좀 우스꽝스러웠지만 즐거웠다. 사이다도 한 모금 없이 맹물에 먹어치운 게 아쉽긴 했지만 아마 입원의 마지막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병실에서의 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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