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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 Jan 25. 2021

1월 25일 월요일

봄처럼 따뜻했던 월요일

1. 내 몸이 사라졌다

종종 요가를 하다 보면 내 몸은 사라지고 호흡과 근육만 남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는 요가를 할 때면 몸이 오히려 걸리적거리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움직이고자 하는 근육과 그 힘을 북돋아 줄 호흡만 제대로 따라붙으면 몸 따위 깃털처럼 가벼워도 좋을 텐데 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손과 손 끝이 유난히 멀게 느껴지는 날, 발 끝을 잡고 있는 엄지손가락이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을 때, 등 뒤에서 깍지를 낀 손이 바들바들 떨릴 때 왜 이토록 내 몸은 크고 걸리적거리는 걸까라는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몸이 안 좋은 날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가면 욕조에 가만히 앉아 물을 맞는다. 구석구석 깨끗하게 샤워를 마치고 싶지만 체력이 받쳐주지 않는 날은 그저 물을 맞으며 원기옥을 모으듯 에너지를 모은다. 아주 느릿느릿 샤워를 마치고 나면 내 몸이 이렇게나 클 일인가라는 생각과 함께 기가 막히게 화가 날 때도 있다.


몇 달 전 '내 몸이 사라졌다'라는 프랑스 애니메이션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손의 모험'이라는 부제가 붙어야 할 정도로 손가락 끝의 감각으로 모든 스토리를 이끌어가는 그 영화. 사실 영화 자체를 즐겼냐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다. 겨우겨우 일주일 내내 끊어서 그 영화를 마쳤기 때문에, 손의 모험을 계속 보고 있자니 조금은 거북하고 불편한 기분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즐겁게 감상을 하지 못했다.


영화의 감상과는 별개로 일상 중에 꽤 많은 순간 이 영화를 생각한다. 요가를 마치고 나서 아주 고요한 몸과 마음을 손 끝의 움직임으로 깨울 때 내 몸이 사라졌다 속의 손이 된 기분이 들곤 한다. 종종 아주 추운 날 모든 감각이 사라지고 주머니 속 손가락 끝에만 아주 작은 온기가 남았을 때도 이 영화를 떠올린다. 사실은 이 영화를 좋아하는 걸까? 혹은 나는 이 영화의 안티팬일지도. 좋아하지는 않지만 자꾸만 생각이 나는 그런 영화.


2. 코로나 검사

코로나 검사를 받았다. 보건소 유선 연락이 어려워 (서울 시내 모든 보건소로 전화하면 다산 콜센터 120으로 자동 연결되기 때문에 실제 원하는 정보를 얻기 어려워)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집 앞 보건소에 갔다. 9시 반 정도에 선별 진료소에 도착했고 내 앞에 20명 정도가 검사를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40명 정도가 이미 검사를 받았다고 했다. 은행 대기표처럼 생긴 대기표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현장에서 대기한다면 한 시간 이내에 검사를 받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일정이 있어 그럴 수 없었다.


일정을 모두 마치고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간 다시 선별 진료소에 갔다. 아침과는 다르게 검사소 안이 텅텅 비어있었다. 나눠주시는 비닐장갑을 끼고 개인정보를 문진표에 적고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주소와 전화번호가 맞는지, 어떤 목적으로 검사를 받으러 왔는지 등의 꽤 자세하지만 문진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인터뷰를 마치고 검사 도구를 건네받았다. 아주 긴 면봉 2개와 붉은색 시약 통. 검사 도구를 손에 쥐고 검사실로 갔다. 뉴스에서 보던 것처럼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 선생님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목 안과 양쪽 콧구멍에 면봉을 숙- 집어넣었다. 목은 참을만했고 코는 꽤 아팠다. 코피도 살짝 났다. "불편하셨죠? 마스크 쓰신 후에 시약은 통에 넣고 귀가하세요." 마스크를 다시 고쳐 쓰고 손 소독제를 손에 잔뜩 묻히고 돌아 나왔다. 검사를 받고 나면 가급적 자가격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해서 집에 오자마자 따뜻한 물로 씻고 방으로 들어왔다. 검사를 받았을 뿐인데 잠재적 환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부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3. 두 번째 지구는 없다

작년 여름 타일러 라쉬의 두 번째 지구는 없다를 선물 받았다. 선물 받았던 날 처음부터 끝까지 빠르게 훑긴 했지만 책을 펴고 활자 하나하나를 천천히 읽어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맨 첫 장에 선물해주신 분이 적어둔 '지구를 지켜라'라는 메시지를 보고 미소를 머금고 첫 번째 챕터를 읽었지만 금세 미소를 거두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누구도 쉽게 꺼내지 않는 말이 적혀 있었다. 우리는 현재와 미래의 지구를 골고루 낭비하고 있다는 말. 아마도 수십 년 내에 몰디브와 같은 아름다운 섬은 바닷속으로 잠기게 될 거라는 허무맹랑하지만 꽤 과학적인 말들을 여전히 가볍게 웃어넘기고 있는 의도적인 순수함 같은 것들이 떠올랐고 이내 부끄러워졌다.


내가 생활 속에서 아주 작지만 꾸준히 지키고 있는 몇 가지 습관들이 있다.


생수를 사 먹는 것을 멈추고 보리차를 끓여 유리 물병에 넣어 먹고 생수가 필요할 경우 브리타 정수기를 이용하는 것. 샴푸바(동구밭)와 비누(한아조) 사용을 귀찮아하지 않는 것, 보습이 필요한 겨울철에는 가급적 플라스틱이 아닌 유리로 제작된 제품 그리고 리필이 가능한 제품(아로마티카)으로 우선하여 구입하여 사용할 것. 그리고 외출할 때 번거로워도 텀블러를 꼭 챙길 것. 무언가를 포장하거나 구입할 때 비닐과 플라스틱을 최하위 순위에 두고 선택할 것. 그리고 가장 어려운 것이지만 불필요한 소비를 줄이고 불필요한 쓰레기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옷도 가방도 신발도. 가장 친환경적인 것은 친환경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사지 않는 것이라는 말을 언제나 되새긴다. 마치 버몬트의 마스코트 버니 샌더스 옹처럼.


두 번째 지구는 정말로 없다. 엘론 머스크가 우주 속 또 다른 생태계를 이번 생에 발견하지 않는다면 아마 이 곳이 우리와 우리 다음 세대의 마지막이 될 지구. 우리 모두 우리의 몫만큼의 지구를 지켜야 할 것 같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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