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키파 Nov 05. 2021

#5. 노를 든 신부

웨딩드레스를 벗고 야구유니폼을 입은 신부처럼

오늘의 그림책


노를 든 신부

오소리

이야기꽃


배가 산으로 가는 이야기. 

신부와 모험,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 두 단어가 엮인 이 그림책을 보며 든 생각이다. 

두 번 그림책 영상을 보면서도 뭐하나 꽂히는 것 없이 흘러갔다. 오늘은 진짜 되는대로 써보자.



마을의 청년들이 하나 둘, 결혼을 하러 떠나고 홀로 남은 소녀는 신부가 되기 위한 모험을 떠난다, 노 하나를 들고. 하나 뿐인 노는 이 소녀의 모험의 첫걸음부터 걸림돌이 된다. 노 하나를 들고 산으로 간 소녀는 두 개의 배를 더 만난다. 하나는 마치 팔려가듯 순백의 드레스 차림의 수많은 신부가 올라타있는 배였다. 소녀는 그 배를 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삶이 정답처럼 여겨지곤 한다. 많은 이들이 우르르 몰려가는 길에서 군중 속 무명의 한 사람이 되버린 개인은 개성과 색깔을 잃는다. 똑같은 드레스를 입고 배에 올라탄 신부들이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소녀는 자신만의 길을 간다.


또 하나는 호화로운 모습의 배였다. 돈과 명예. 나의 외형을 화려하게 꾸미고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자 하는 욕망을 따라 사는 삶은 정상에 있어도 어쩐지 위태로워 보인다. 산꼭대기에서 겨우 균형을 잡고 있는 듯한 크루즈선의 모습이 그래보였다. 소녀는 그 배에도 오르지 않는다. 


여정 중에 소녀는 자기가 들고 있던 노의 진가를 발견해낸다. 다른 이의 생명을 구하고, 과일을 따고, 격투를 하고, 홈런을 치며. 결핍이었던 노를 통해 숨겨진 재능을 발견한다. 노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올리는 우람한 신부의 모습에서 진정한 승자의 당당함이 느껴진다. 


나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 드레스를 입은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오랜만에 오는 연락을 받으면 “혹시 결혼하니?” 라는 질문이 어색하지 않을 나이가 되었다. 혼자서, 충만한 삶을 살고 싶지만 가끔은 혼자 뒤처지고 있는게 아닌가, 별나게 사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교과실에서 활발하게 오가는 주식정보에 나도 귀가 솔깃하지만, 많이 가지고, 가진 것을 더 불리는 것에 너무 몰두해서 살고 싶지 않다. 자신만의 길을 떠난 소녀처럼  나또한 나만이 살 수 있는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고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4. 오소리네 집 꽃밭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