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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파 Nov 05. 2021

#6. 오소리가 우울하대요

나는 누군가의 두더지가 되어주고 싶다.

오늘의 그림책


오소리가 우울하대요

글 히아인 오럼

그림 수잔 발리

출판사 보물창고




  오늘도 미음이는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책상에 코를 박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자신의 굳은 의지를 온 몸으로 외친다. 수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나도 같이 힘이 쭉 빠진다. 미음이는 내가 기초채움교실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아이다. 또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에 비해 읽기나 쓰기에서 전혀 진전이 없어서 고민이 들게 하는 아이다. 이번 주 들어서는 기초채움교실로 이동하느라 쉬는시간을 뺏기는 것이 싫다며, 교실에 들어오자마자 눈물을 뚝뚝 흘리기까지 한다. 나도 울고 싶다.


  그림책 속 오소리처럼, 공부하기 싫어, 학교 오기 싫어, 물에 젖은 솜이불처럼 무기력하게 의자에 늘어져있는 미음이와 오늘도 수업은 해야한다. 더듬더듬 글자를 읽고, 수학익힘책 한 쪽 정도를 어르고 달래서 풀고나면 이정도 했으면 많이 하지 않았냐는 텅 빈 눈으로 또 나를 본다. 마음 속에 슬슬 화가 올라온다. 오소리를 기다려주는 친구들의 인내심은 나에게 없는 듯 싶다. 제자리에 앉으라며 오늘도 엄하게 아이를 다그쳤다. 몸을 비비꼬고 거의 누워있는 미음이를 보니 나도 맥이 탁 빠진다. 결국 책을 덮는다. 아직 수업시간은 반 이상 남았다.


  이 그림책을 읽으며 오늘 교실의 풍경이 떠오른 것은, 우울한 오소리의 곁을 지켜주고 다시 밝은 기운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주는 두더지가 미음이에게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음이는 ADHD, 과한 행동, 친구들을 자주 괴롭힘, 교실에선 아무것도 하지 않음, 2학년인데 아직 글을 제대로 읽고 쓸 줄 모름. 각종 꼬리표가 덕지덕지 붙었다. 미음이가 학교에서 환대와 인정을 받는 일은 매우 드물다. 모든 사람은 존재만으로 소중해,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어. 와 같은 누구나 끄덕거릴 만한 아름다운 말은, 어쩐지 학교에선 실현되기가 어렵다. 공부를 좀 못하면, 행동이 바르지 못하면, 친구들과 선생님을 힘들게 하면. 금방 사랑과 인정의 자격을 잃는다. 미음이도 그렇다.


  모든 동물친구들에게 상이 하나씩 다 돌아간다. 누구나 칭찬할 구석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장점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미음이에게 주고픈 상을 떠올려본다.


‘자연의 아름다움을 아는 친구에게 주는 상’.

며칠 전, 밖에 나가서 수업을 한 날에 나무를 보며 예쁘다고 하던 미음이에게 주고싶다.


‘뛰어난 관찰력상’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를 보지도 않고 똑같이 그리는 미음이에게 주고싶다.


‘그럼에도 불고하고상’

학교에 오기 싫다면서도 매일 학교에 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교실에 존재해주는 미음이에게 주고싶다.


내일은 미음이의 칭찬할 구석을 찾으며, 내 속에 올라오는 화를 잘 다스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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