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가족이 어떻게 되세요?”라는 질문은 어쩌면 상대를 이해하기 위해 너무 흔하게 나누는 이야기 중 하나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쉽게 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나는 이 질문을 받으면 3초 정도 망설인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 나도 잘 가늠이 안 되기 때문이다. 보통은 이렇게 대답한다. “그냥 평범해요. 부모님, 저 그리고 남동생이요.” 거짓말은 아닌데 거짓말을 한 기분이 든다. 그냥 저 단어들 사이에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남들보다 조금 많을 뿐이다. 나는 아빠도 동생도 이 대답을 하는 지금에는 세상을 떠나고 없다.
그들의 죽음이 믿어지지 않아 황망했던 시간이 있었다. 상실감이 피부에 닿아서 살아 숨쉬는 슬픔을 만났다. 햇살 아래를 걸어도 죽음의 그림자를 질질 끌고 다니기도 했다. 그래도 시간은 조금씩 지나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슬픔도 어느 정도 삶에서 밀려났다. 어느 날, 막연히 그들을 떠올리다 보면 둘의 빈자리가 처음부터 실재하지 않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분명 나와 같은 시간을 나눈 사람들인데 함께였던 순간을 추억하면 꼭 소설 한 편을 읽은 듯 하다. 그렇게 내게서 그들이 서서히 잊혀진다. 그렇게 무뎌지며 일상을 다시 살아내다보면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은 날이 온다. 그 행복은 이내 '죄책감'이라는 이름을 바꿔 달고 나를 덮친다.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나는 이 질문의 답을 찾기 보다 애써 무시하며 슬픈 기억을 잊어버렸다. 지난 수 년을 그렇게 슬픈 일 따위는 겪어 본 적도 없다는 듯이 잊기만 하며 살았다.
그런데 인생에 행복만이 길게 늘어질 수는 없는 모양인지 다시 삶이 지루해지는 순간이 왔다. 반짝이는 순간들은 너무 짧아서 그 순간만으로는 삶을 지탱할 수 없는 시간이 결국에는 왔다. 애써 덮어 둔 슬픔은 결국 지연된 애도의 시간을 예정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피하지 않으려고 글을 썼다. 이 슬픔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없어서 떠오르는 대로 계속 썼다. 많이 잊고 나니 정확한 기억을 되찾기 어려웠다. 어떤 부분은 부풀려졌고 어떤 부분은 의식적으로 삭제했다. 그렇게 기억을 하나씩 꺼내어 쓰다가 식도가 부어서 꽤 고생을 했다. 울고 싶었는데 나는 잘 울지 못한다. 대신 목구멍에 힘을 꽉 주고 참는 게 버릇이 되었다. 미지근한 물을 삼키는 것도 힘들어졌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은 조금 가벼워졌다.
아빠와 동생을 그리워하는 일은 무게가 조금 달랐다. 아빠는 암이라는 질병으로 삶이 끊어졌지만 동생은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생의 마침표를 찍었기 때문이다. 어떤 죽음에는 사회적 가치 판단이 끼어든다. 동생의 죽음은 너무나 갑작스러웠다. 가족인 나조차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짧지만은 않은 시간동안 쌓아 온 가치관들이 내 안에서 충돌했다. 그래도 결국은 가족이기에 사랑하는 마음이 제일 앞섰다. 그런 선택을 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여 가까운 가족들만 소수 모여서 조용히 보내주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모진 삶의 끝에 타인의 평가를 보태어 얹어주고 싶지 않았다. 굳이 알리지 않았던 죽음을 다시 글로 써서 내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과 달리 이 글을 세상에 내어 놓는 일에는 많은 고민이 따랐다. 편안히 보내준 동생을 다시 이 생으로 데리고 와서 괴롭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동생의 선택'에 대한 글이 아니라 그 후의 나의 삶에 대해 쓰는데 집중했다. 누군가에게는 나의 지난 흐린 시간이 도움이 되길 바라면서 어둠 속을 더듬으며 조심히 걷는 듯이 썼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음에 마음이 떨린다. 부디 내 서툰 글이 누군가에게 아직 덜 치유된 상처를 헤집는 일이 되지 않길 간절히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