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핏의 맛] 8. 스테디셀러가 베스트셀러
모처럼 글을 쓰려고 키보드 앞에 앉아있습니다. 한동안 일상에 쫓기다 보니 시간을 거의 내질 못했습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쌓여있어 노트에 실컷 정리해두었습니다만, 시간은 하염없이 흐르기만 하고 이러다간 한 편도 못쓰겠다 싶어 8월의 첫날에는 글을 쓰자고 작심했습니다. 어찌어찌 첫날은 성공했습니다.
오늘 다룰 주제는 운동입니다. 여느 때처럼 크로스핏을 하며 깨달은 것들에 대해 말해보겠습니다. 취미로 운동을 하다 보니, 조금이라도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어야 할 때면 괜스레 궁색해지는데 이걸 이렇게 말해도 되나 조심스럽기도 하고, 과연 어디까지 말해야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을 분리할 수 있을지 고민입니다.
그 대안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그날그날의 경험을 공유한다는 느낌으로 사실과 주관을 적당히 버무려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번 글도 그런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다음번에 쓸 글은 어느 정도 알아본 후에 써보려고 하는데, 그에 앞서 오늘은 편안한 마음으로 그간 느낀 바를 다루어 보려고 합니다.
여하간 오늘도 퇴근을 하자마자 크로스핏을 하기 위해 박스(Box; 크로스핏 체육관)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의 운동은 그 이름도 생소한 '닌자 테스트'였습니다. 명칭과는 달리 아주 단순한 운동이었지요. 12분 동안 매분마다 버피를 12개씩 하면 됩니다. 하지만 정말 그게 다였다면 오늘 글을 쓸 일도 없었겠죠.
매번 끝나는 시간을 기록하여, 가장 늦게 끝난 시간을 기준으로 28초 안에 들어갔다면 명실상부한 '닌자', 31초 안에 끝냈다면 '숙련자(advanced)', 34초 안에만 들어가면 '중급자(intermediate)', 37초까지는 '초심자(novice)', 38초부터 59초까지 사람, 한 라운드라도 실패하면 좀비(!)라는 조건이 붙어있었습니다.
그동안 나름대로는 열심히 크로스핏을 해왔으니 닌자까지는 몰라도 초심자, 욕심을 좀 더 내면 중급자까지 어떻게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만 이게 웬걸, 6R까지는 어찌어찌 28초 안에 끝내지 뭡니까. 괜히 욕심이 생기더군요. 하지만 그게 바로 문제였습니다. 대부분 욕심이 크면 일을 그르치기 마련이죠.
아니나 다를까 8R부터 슬슬 처지기 시작하더니 30초를 넘기고 말았습니다. 닌자는 글렀으니 숙련자라도 유지해보고자 했지만, 10R부터는 아예 30초 안에 들어가지도 못했지요. 결국 마지막 12R에 이르러서는 아예 40초를 넘어가며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초반부터 너무 달린 게 패착이었나 싶었습니다. 꾸준히 자기 템포로 가신 분께서는 33초로 마무리하신 걸 보고 아차 싶었습니다. 역시 크로스핏은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구나. 아니, 어쩌면 크로스핏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운동, 인생의 모든 것들이 그런 것인지도 모르죠.
어쨌거나 저쨌거나 저는 닌자가 되지 못하고, 사람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자고로 닌자란 참고 견디는 자를 말하는 것이라고 유명한 닌자 만화의 캐릭터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버피의 고통을 참고 견디지 못한 제가 닌자가 되지 못한 건 필연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참고 견디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그러면 그걸 '참고 견딜만하게' 만드는 것도 실력입니다. 그 중 하나가 자신만의 페이스로 가는 거죠. 옆에서 아무리 빠르고 무겁게 운동을 해도, 휘말릴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되는 걸요. 괜히 따라했다가 퍼지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어쩌면 내가 먼저 끝낼 수도 있는 것이고, 더 운동을 잘했다고 할 수도 있죠.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알고 그에 맞게끔 운동을 하는 것도 실력입니다. 크로스핏에서는 더더욱 그런 부분이 중요합니다. 괜히 무리했다가 다음 날 운동을 못하거나, 다치는 것보다야 자기한테 맞는 정도로 운동을 하는 게 낫지요.
물론 그 '정도'를 알기 위해서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합니다. 너무 쉽게 하면 운동이 안 되고 너무 어려워도 운동이 안 되는 건 똑같거든요. 이런 부분은 트레이너 분들이 있으니 어느정도 해결되긴 합니다만, 그분들도 회원 한 명 한 명에게 온전히 시간을 쏟기가 어려워 개인이 알아서 해야한다는 곤란함도 있습니다.
자기의 실력을 제대로 몰라서, 난이도를 조절하는 게 어렵다고는 해도 할 수 있는 건 있습니다. 바로 일정한 템포로 꾸준히 하는 거죠. 기령 오늘 글에서 다루었던 닌자 테스트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3초에 버피를 하나씩 하면 12개를 36초에 끝마칠 수 있죠. 이 템포로 간다면 적어도 초심자로 끝낼 수 있습니다.
괜히 처음부터 달렸다가 완주를 못해서 좀비가 되거나 마지막 라운드에 한참 쳐져서 기록을 그르칠 바에야 처음부터 욕심을 버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성취감이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기껏 28초로 끊다가, 마지막에 늦게 들어와서 기록이 한참 밀리는 그 슬픔을!
그러므로 크로스핏에서도 꾸준한 것이 결국 최고입니다. 여기서 포인트는 대충하거나 적당히 한다는 의미의 꾸준함이 아니라, 적당한 출력으로 꾸준히 최선을 다한다는 거죠. 인생도 그렇습니다. 이 악물고 달린들 오래가지 못합니다. 자기 템포로 꾸준히 오래 하는 사람이 최고가 되는 경우가 좀 더 많죠.
사실 제가 쓰는 글들에서 다루는 내용은 굳이 크로스핏이 아니어도 어디에나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이라 굳이 크로스핏에 대해 다룰 필요가 있나 제 스스로도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어떤 생각이나 고민은 현실에서 구체적인 경험과 만나 좀더 설득력을 가지기도 하니까요.
제 경우에는 주로 크로스핏에서 그런 깨달음들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여러분들께서도 비슷한 경험을 다른 영역에서 하셨는지도 모릅니다. 그 경험들은 모두 그 자체로 소중하고, 또 인생을 살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주겠지요. 그 깨달음이 다른 영역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는 정도로 받아들여주시기를.
쓰다보니 다소 두서없는 글이 되었습니다. 일필휘지를 하려던 건 아닌데, 단숨에 글을 쓰다보니 이런 문제가 반복되는 것 같습니다. 다음 번에는 좀 더 정리된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