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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준희 Apr 13. 2022

그래도 기록할 것

나의 크로스핏 일지

1.

지난 한 주를 돌이켜보면 4월은 잔인한 달, 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릴 것 같다. 내가 자초한 것이긴 하지만 이렇게 바빠도 되는 건가 싶다. 그래도 운동은 계속해서 나갔다. 다만 기록을 남기지 못한 것 뿐인데, 개똥같은 글이라도 쓰는 것이 좋다는 누군가의 글을 보고서 이렇게나마 쓰기로 했다. 지금까지 써왔던 것처럼 하루하루 기록으로 남기면 내가 도저히 그걸 다 쓸 자신이 없는 관계로 일종의 총집편 같은 느낌의 글이 될 것 같다.


2.

2022년 4월 4일 월요일(627일째, D+925)

의욕만 앞선다고 모든 게 다 잘 풀리진 않는다.

여러모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걸 깨달았던 날이다. 운동이라는 게 의욕만 앞선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전략이 필요한 영역인데 나는 그걸 단순히 '열심히 하기'로 퉁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내가 노력한만큼 남들도 노력하고 있다는 당연한 사실도 까먹고는 한다. 그러니 기대한만큼 기록이 나오지 않았을 때 다소 지나칠 정도로 실망하는데, 월요일은 그런 것들이 겹친 날이라고 해야할까.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내 기록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좋지 않게 나왔고 그것이 객관적으로 좋은 기록이든 나쁜 기록이든 상관없이 그저 기록이 뒤쳐졌다는 사실 하나로 스스로에게 지나칠 정도로 실망한 날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그렇게 실망한 게 남들에게도 어떻게 비쳐질지 생각하지 못할만큼 너무 과할 정도로 충격을 받은 것 같아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역시 운동을 하다보면 몸이 좋아지는 것과는 상관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해 더 잘 알게 된다. 나라는 사람은 안 그런 척 하지만 굉장히 경쟁심이 심하고 여전히 남들과의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깨달았다.


2022년 4월 5일 화요일(628일째, D+926)

여러모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했던 화요일.

화요일도 월요일과 마찬가지였다.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기록이 밀려버리니까 어찌나 허탈했던지. 하지만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내가 열심히 했다고 그 노력이 반드시 보답받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리고 내가 열심히 한 만큼 다른 사람도 열심히 했을 것이다. 그러니 주어진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법도 필요하다.


한 가지 더, 팀 와드를 한다는 건 나 혼자 운동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파트너의 체력이나 페이스도 생각해야한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날 나는 뭔가 쫓기듯이 팀와드와 개인와드를 했던 게 아닌가 싶다. 마음의 여유가 없으니 사람이 참 옹졸해지는 건가.


2022년 4월 6일 수요일(629일째, D+927)

역도와 달리기가 섞이면 정말 괴롭다.

수요일도 기록이 좋았다고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그래도 최선은 다했다고 생각한다. 크로스핏을 시작하고 1년까지는 그렇게 기록에 욕심이 없었던 것 같은데 실력이 어느정도 오르고 나니 오히려 기록에 너무 집착하게 된 건 아닌가 싶고, 그러면서 즐거움은 좀 퇴색된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요즘 운동을 왜 시작했는지를 다시 생가해보게 되는데, 초심을 좀 찾아야되지 않나 싶다.


2022년 4월 7일 목요일(630일째, D+928)

뭐가 많아보이는데, 실제로 뭐가 많다.

액티브 리커버리라고는 하지만 다소 지나치게 '액티브'했던 목요일 와드. 너무 죽기살기로 하기보다는 정말 '리커버리'에 초점을 맞춰서 운동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적어놓고보면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해 핑계를 댄 느낌이라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데, 대체 '변명하지 않는 삶'이라는 건 언제쯤 가능할까 싶다.


2022년 4월 8일 금요일(631일째, D+929)

내 몸무게를 머리 위로 들어올리는 게 쉽지는 않다.

그나마 좀 만족스러웠던 금요일. 1년 전에 비해서 기록을 약 8분 정도 줄였는데, 그래도 운동을 꾸준히 해온 보람이 있다는 걸 느낀 하루였다. 지난 한 주가 기록이 계속 쳐지기만 해서 나 자신에게 실망했었는데, 너무 좌절할 필요는 없다는 걸 운동을 통해 또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문득 든 생각은 무작정 노력하는 것보다 역시 노력의 방향성이 중요한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대충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마인드로 어떻게 해야하는지, 방법론의 필요성을 간과하곤 하는데 노력도 중요하지만 노력만큼이나 어떻게 노력할 것인지, 그리고 무엇에 대해 노력할 것인지도 중요한 게 아닐까 싶다. 물론 크로스핏은 취미에 가깝고 -물론 단순히 취미라고 말하기에는 지금 내 삶과 너무 가까워졌지만 - 선수를 할 것도 아니지만... 그런 부분을 고민해보게 된다.


2022년 4월 9일 토요일(632일 째, D+930)

기록을 찍는 틈을 놓치지 않고 포즈를 취하신 회원 님이 인상적이다.

토요일의 무지막지했던 와드. 다른 것보다 1.6km를 덤벨과 캐틀벨, 플레이트를 들고 옮기는 게 가장 고역이었다. 그야말로 '강철부대'라는 와드명에 걸맞게 군대에서 군장을 메고 행군하는 느낌의 축소판이었다고 할까. 그리고 여자친구와 모처럼 팀와드를 함께 했었는데, 운동시간이 워낙 길고 힘들다보니 서로가 서로에게 본의 아니게 예민해져서 와드가 끝나고 가급적이면 팀 와드는 함께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힘들고 괴로울수록 가까운 사람에게 더 살갑고 친절해야하는데, 오히려 더 무례하게 대하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좀 돌아보게 되었다. 항상 느끼지만 운동에서 무언가 배워간다.


2022년 4월 10일 일요일

날씨가 풀려서 뛰기 좋았다.

크로스핏은 아니고 대회 준비 겸 대회에 함께 나가게 된 K와 가볍게 뛰었다. 역시 기본기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 4km를 쉬지 않고 달린 것도 아닌데 제법 힘들었다. 좀 더 페이스를 당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대회에서는 나 혼자 달리는 것도 아니고 연습이 더 필요하다. 이렇게 놓고 보니 지난 한 주는 일주일 내내 운동만 한 것 같다.


2022년 4월 11일 월요일(633일째, D+932)

코치 님이 애지중지하는 루스커스가 삐죽 튀어나와있는 것이 이 사진의 백미.

따로 기록을 적지는 않아서 운동이 끝나고 텅빈 박스 사진으로 갈음한다. 대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와서, 벼락치기로라도 연습을 해야할 필요성을 느껴서 대회에 참가한 모두가 처음으로 모여서 함께 연습했다. 필수로 해야하는 달리기와 버피 와드, 그리고 짐네스틱 위주의 와드, 클린 컴플렉스, 로잉과 버피 총 4개 와드를 연습했다.


기왕 대회에 나가게 되었으니 좋은 결과를 내보고 싶지만, 결과에 너무 연연하기보다는 같이 대회에 나가게 된 분들과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할 수만 있다면 좋겠다. 그럴려면 나부터 좀 더 노력해야겠지.


2022년 4월 12일 화요일(634일째, D+933)

좀 더 잘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드디어 오늘 화요일, 모일 수 있는 사람들은 모여서 대회 와드를 준비했다. 팀 와드이니 만큼 팀원의 페이스에 맞춰서 와드를 해야한다는 매니저 님의 조언에 따라 다음 연습 때는 내 페이스에 맞출 게 아니라 팀원에게 맞추려고 한다. 그리고 팀원과 함께 좀더 으쌰으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데 내가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약한 소리하기 보다는 그래도 최선을 다해봐야지.


3.

정말 일요일 빼고는 매일 같이 운동을 할 정도로 운동에 진심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냥 남들이 취미생활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만큼, 평소에 운동을 하는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해도 이렇게 모아놓고 보니 좀 심한가 싶은 생각도 들고, 그렇다.


남들에겐 일과 일상의 구분을 뜻하는 워라밸이라는 말이 나에게는 워크아웃 밸런스라고 해도 좋을 만큼(?) 운동을 할 수 있냐 없냐가 중요해졌는데, 문득 내가 왜 이렇게까지 운동에 진심인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에 관한 글을 가까운 시일 내에는 꼭 써보려고 한다.


그리고 운동만 하는 게 아니라, 일도 하고 나름 준비하고 있는 것도 있어서 글을 쓰지 못했는데, 글에 대한 욕심도 놓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는 한 편, 쉬고 싶은 마음도 있고 놀고 싶기도 하고 여러모로 몸은 하나고 의욕은 있는데 현실이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운동과 마찬가지로 의욕과 노력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게 있나 보다.


4.

오늘의 결론

1. 노력도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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