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한편] 길들임
8월 말, 이사를 했다. 결혼을 앞두고 새로운 보금자리로 왔다는 설렘도 잠깐, 두어 가지 문제들이 눈에 띄었다.
첫째, 바퀴벌레였다. 이전에 살던 자취방은 6년을 넘게 살면서도 단 한 번도 바퀴벌레를 보지 못했다. 물론 내 시야가 닿지 않는 곳에 있었을 가능성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모습을 드러내서 나를 괴롭히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새집에 살면서 바퀴벌레를 2번이나 마주해야 했는데 그 크기도 제법이어서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무척 경악스러웠다. 첫 번째로 마주한 놈은 어떻게든 살려서 내보냈는데, 두 번째 나타난 녀석은 안방에 나타나는 바람에 어떻게든 죽일 수밖에 없었다.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 바퀴벌레도 불운한 노릇이었겠지만, 직접 때려죽여야 하는 나도 마냥 편하진 않았다. 내가 벌레까지 보듬는 박애주의자라서가 아니라, 무언가 죽인다는 행위가 썩 내키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모기는 예외인 걸로 봐서 다른 종류의 문제인가 싶기도 하고.
둘째, 전기가 시원치 않았다. 이사 전에는 미처 생각도 못 했던 문제였다. 살고 나서야 알게 되는 종류의 문제여서 어쩌면 바퀴벌레만큼이나 난감한 문제였다. 화장실 전등은 온전히 켜지는 법이 없이 눈이 아플 정도로 깜빡였다. 부엌도 인덕션을 사용하고 있을 때는, 인덕션과 연결된 콘센트로는 다른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못할 정도였다. 여기까지는 그렇다쳐도 토요일 밤에는 갑자기 집안의 전기가 나가서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한 가지 문제만 있으면 모르겠지만, 연이어 다른 문제가 터지게 되면 사소해보이던 현상들도 쉽사리 넘기지 못하게 되지 않던가. 새삼 이 집에 정을 붙이고 살 수 있을지 걱정 아닌 걱정이 들기 시작했다.
요 며칠 사이에 겪은 일들을 정리해 보며, 집을 길들이는 시간도 필요하지만 내 스스로를 이 공간에 길들여가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종종 낯선 행동이나 대상과 관계를 시작하며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길들인다고 믿지만, 그것은 기들여가는 일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은 언제나 존재하기 때문이며, 노력한다고 해도 놓치는 부분은 생기기 때문이다. 도저히 변하지 않는 그 대상에 대해 분노하거나 실망하기보다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게 차라리 낫다고 결론을 내려보았다.
불합리한 지점을 고치려드는 게 아니라 납득하고 받아들이든 일. 물론 납득하지 못하겠다면 어떻게든 내 방식을 관철해야겠으나 이마저도 그것이 나를 길들일 수 있게끔 미세한 방식으로 조정해나가는 지점인지도 모른다.
가령 나는 바퀴벌레가 나온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다. 이사 온 집이 오래되기도 했거니와, 건물이 음지에 있기도 해서 벌레가 들어오더라도 이상할 게 없었기 때문이다. 벌레가 나타난다면 그 순간 끔찍하고 말뿐, 불편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벌레를 끔찍하게 여기는 여자친구는 바퀴벌레가 안방에 찾아든 그날 바로 사설 방역업체를 찾아내고는 연락을 했다. 일요일 저녁임에도 흔쾌히 방문해 준 친절한 방역업체 직원분 덕에 집안은 벌레를 차단하기 위한 여러 조치가 취해졌다.
나는 길들여지려고 했지만 여자친구는 길들여야만 직성이 풀린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저마다의 성향이 보여서 무척 흥미로웠다. 길들이거나 혹은 길들여지거나. 어떤 방식이 옳다거나 틀리다거나 논할 문제는 아니다. 외려 어떤 상황에서는 내가 반드시 길들이고마는 편이라면 여자친구 쪽에서는 순순히 길들여지는데 , 역전이 발생하는 순간, 우리가 관계에 있어서 일방적으로 길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는 듯하다.
더욱이 길들이는 과정은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길들였다고 믿은 것이 실은 전혀 길들여지지 않았거나, 혹은 내가 무언가에 길들여졌다고 여겼는데 알고 보니 그런 척만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거나. 그 굴곡을 건너는 일 자체가 오롯이 '길들임'인 것이다.
길들인다는 건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 길들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하자면 그 관계를 놓아버리면 된다. 길들이는 과정을 통해 왜 스트레스를 받아야한단 말인가. 그러나 때로 어쩔 수 없는 관계가 있으니 놓아버리고 싶지 않은 관계에서라면 다른 종류의 방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집 때문에 떠올리게 된 고민이었지만, 어쩌면 삶 전체와도 이어지는구나 싶어 몇 마디 적어본다. 또 한 번 이 삶에 나를 길들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