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월 Sep 26. 2022

노들섬, 내게 닿은 그 날의 바람

관악살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하루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우리네 일상에서 꽤 자주 마주치는 문구이다. 그렇다 해서 그 가치가 닳아 없어지지는 않는 소중하게도 식상한 표현법. 마알간 파란 하늘에 싱싱하게도 초록으로 빛나는 나무들. 흐드러진 잎을 가진 거대한 나무들이 습기 하나 없는 달큼한 가을 바람에 이리도 휩쓸렸다가, 저리도 휩쓸렸다가 하던 아주 우아하고 경쾌하기 짝이 없는 어느 가을 날이었다. 나는 이 ‘푸름’들의 합작을 온몸으로 흡수하며 적당히 불편한 풀바닥 위에 돗자리 한 장을 사이에 두고 가만히 누워있었다.


저 멀리 낯선 이의 낯설지 않은 노래들은 바람을 타고 내게로 스쳤다 멀어졌다를 반복했고, 나는 생각했다. 이 바람은 어느 누군가의 어떤 마음을 어루만지고 내게 닿는 걸까.

그렇게 한참을 누워있다 평소 가뜩이나 말썽이던 허리가 이젠 도저히 한계임을 알릴 즈음, 나는 일어나 그새 달라진 풍경을 또 잠시 바라봤다. 윤슬이 퇴근하고, 하늘과 강물의 색을 구분하려면 수면에 비친 건물의 경계를 좇아야만 알 수 있는 저녁이 되어 나는 오른쪽에서 대각선으로 가로지르는 기차와 그의 대교의 배웅을 받으며 집으로 향했다.


그런 밤이 있지 않은가. 언제고 나를 품던 방 한구석이 묘하게 낯선 향기를 풍기는 그런 밤. 끈적끈적 땅에 자꾸만 들러붙는 발걸음을 외면하고 들어간 오, 나의 홈 스윗 홈……

노들섬에서 나를 배웅하던 물가의 빌딩별빛숲을 잃기 싫어 내가 한 짓은 창가의 조명만을 켜두고, 암막 커튼을 활짝 젖히고, LP 플레이어의 볼륨을 가장 크게 높이고, 빌리 아일리쉬의 따뜻하게 음침한 목소리를 안주 삼아 와인 잔 한 가득 와인을 마시는 것.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는 나만의 안식 행동이었다.


그날 밤, 종교가 없는 나는 허공에 대고 기도를 새겼다.

부디, 나의 삶의 마지막 날이 오늘과 같기를.

작가의 이전글 그와 그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