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관악산에 오르던 어느 한낮에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어쩌다 관악의 품에 터를 내렸을까, 인생의 연은 나를 또 어디에 데려다 놓으려나…….
흔히들 말하는 인연의 한자는 인할 인因과 인연 연緣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결과를 낳는 직접적인 힘을 뜻하는 "인"과 그 외 간접적인 힘을 뜻하는 "연"이 함께 쓰였죠. 여기에 사람 인人이 쓰이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것 사이의 관계에 의의를 두기 때문인 듯합니다. 인연으로 생기고 인연으로 소멸한다는 불교의 교리를 담고 있거든요. 뭐, 쉽게 말해 삶은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이뤄진다는 말일 겁니다. 그러니 생의 걸음에 힘은 쓰되, 뜻대로 되지 않음에 좌절할 필요가 없겠어요. 때론 연의 힘이 뜻밖의 순간과 공간에 나를 데려다 놓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을 테니까요.
이 연의 힘은 나를 관악의 품에 떨구어 놓았습니다. 여느 지역처럼 그저 스치는 곳일 줄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제법 터를 잡고 있더군요. 익숙해진 출근길에 정 한 스푼, 낯익은 길 고양이에 정 한 스푼, 성인이 되고 처음 가져본 동네 친구에 정 한 스푼. 야금야금 정을 쌓다 보니 가랑비 옷 젖는 줄 모르듯 이곳은 고향 아닌 고향이 돼버렸습니다. 관악구의 이름은 관악산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관악은 갓 관冠자에 큰 산 악岳자를 씁니다. 관악산 생긴 것이 삿갓의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 관악이 나를 품었으니 나는 큰 갓을 쓴 사람이 되었습니다. 혈혈단신이던 몸에 갓을 쓰니 여간 든든한 게 아닙니다. 하고많은 모양 중 또 하필 갓이라니, 조선의 얼까지 얻은 느낌이랄까요? 이 든든함에 보답하는 마음으로 일상에 가치를 더해볼까 합니다. 마음에 담기는 감정과 머리에 스치는 생각을 문자로 담으려 하니, 기꺼이 오시어 훑고 가세요.
나의 글이 어떤 연과 닿게 될지 궁금해하며 프롤로그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