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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디 리 Aug 06. 2022

우중산행의 시큰한 기억

21. 무등산 (2022.03.13 일)




한두 방울 똑똑 내리던 비는 해발 700m에서 줄기찬 모양으로 바뀌었다. 비 소식이 있었지만 흐린 눈으로 출발한 대가였다. 돌아가자니 아깝고, 계속 가자니 애매한 기분이었다. 어떤 선택을 해도 아쉬울 것이 뻔하다면 덜 후회할 것 같은 쪽을 택하는 편이다. 찰나의 고민 끝에 '정상을 찍고 후회하자'는 결론이 났다. 정수리부터 적셔오는 빗물을 애써 무시하며 산길을 뚜벅뚜벅 올랐다.


돌부리는 미끄러웠고, 흙길은 질퍽여서 걸음을 뗄 때마다 확신은 불안으로 얼룩졌다. 안전하게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는 확신, 정상에서 행복감을 느낄 것이라는 확신. 두 종류의 확신은 쏟아지는 빗물 앞에서 희석되어 연해졌다. 마침내 정상에 올랐을 땐, 과도한 불안으로 인해 하산의 갈증만 남아있었다. 절정의 순간을 만끽하지 못한 채 실현되지 않은 불안에 대한 두려움에 쫓겨 길을 내려갔다.


무등산 산행은 시큰함으로 기억된다. 하산 직후 훈에게 미안해서 코가 시큰했다. 비를 뚫고 오르락내리락하느라 허리와 무릎, 발목이 시큰했다. 그리고 감기에 걸려 한동안 훌쩍이며 코가 시큰했다. 온몸으로 느낀 시큰함은 '우중산행 하지말자'는 교훈을 주었다. 앞으로는 비가 오면 집에 있기로 했다.





무등산

2022 3 13 일요일, 무등산은 해발 1,000m 넘지만 경사가 비교적 완만하여 비나 눈만  온다변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올  있다. 우리는 가볍게 시작했으나 빗물에 젖어 무거운 몸으로 내려왔다. 뽀송한  다녀오는 것을 추천한다.



#템플스테이로 개운한 마음

느지막이 입실한 터라 사람소리없이 뒷마당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만 가득했다. 배정받은 9 방은 방바닥이 아주 뜨끈했다. 환기를 위해 방문을 열어놓자, 몸은 이불 속에서 훈훈하고 얼굴은 바람에 시원하니 좋았다. 밤을 보내기 아쉬워 찻방에 들러 따뜻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눴다. 방에 돌아가자 심신이 노곤해져 휴대폰을 만지는 시간없이 스르륵 잠들었다.



#새벽기상과 아침공양

4시 30분 예불에 참석하기 위해 알람을 맞춰놓았으나 기상하지 못했다. 결국 식사시간인 6시가 되어서야 부리나케 일어나 옷을 입었다. 아침 공양은 시금치와 우엉조림, 두부부침, 시래기국이었다. 생각보다 밥맛이 좋아 과식을 했더니 들머리부터 속이 좋지 않았다. 원래는 아침을 먹지 않는 데다가 들기름과 참기름을 과도하게 먹은 탓이었다. 힘겹게 오르며 몸을 달구자 금방 당산나무가 나왔다. 해가 뜨지 않아 으스스한 모습이었다.



#우중산행의 시작

비가 부슬부슬 내리더니 중머리재에 도착하자 우수수 쏟아졌다. 훈은 안전의 이유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으나 나는 너무 아쉬웠다. 서울에서 광주까지 먼 길을 달려왔는데 중도하차한다는 생각에 아쉬움을 지우기 어려웠다. 시무룩한 나를 보고 훈은 조금 더 가보자고 말했다. 비 소식을 알았지만 일정 조율이 어려워 눈을 질끈 감고 시작한 것이었기 때문에 용기를 냈던 것 같다.



#맵싹한 마라 맛 등산

용추삼거리에 도착했을 , 몸이 모두 젖어있었다. 이때부터 무리한 산행이라는 생각과 함께 불안감이 찾아왔다. 최소한의 장비인 우비도 없이 우중산행을 도전한 것이 지독히도 무모하게 느껴졌다. 나는 스스로 원해서 올라갔지만, 훈은 나를 위해 올라갔기 때문이겠지. 당시에는 미안한 마음보다는 산에 오르고 싶은 욕심이  컸다.



#수동 탈수를 곁들인 등산

입석대까지는 정말 대화 없이 묵묵히 올랐다. 비에 젖은 옷이 무거워서 손으로 듬성듬성 짜며 올라갔다. 무거워진 몸으로 미끄럽고 질퍽거리는 산길을 오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짙은 운무에 시야도 확보되지 않아 정말 최악의 상황이었던 것 같다. 보고 싶었던 주상절리는 뿌연 윤곽만 보고 지나왔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오르는 도중 하산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인지 물으니 대부분 아니라고 말했다. 정상인이라면 '위험하구나. 그만 내려가야지' 생각하겠지만, 산친자였던 나는 오기가 생겨 의지를 불태우고 만다. 어렵사리 만난 정상은 사진을 남길 상황이 아니었고 정수리를 뚫고 올라오는 위기감에 다급하게 내려가기 시작했다.



#2번의 엉덩방아와 하산

다음은 정신없이 내려오느라 기억나지 않는다. 산행 일지를 보니 하산 기록이 있는데 기가 막히다.

발목 접지름 2번 / 엉덩방아 2 / 등산스틱 1 파손 / 겉옷 2 폐기

우중산행은 만반의 준비가 된 상태에서도 위험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준비도 없이 덤벼들었다가 쫄딱 젖은 생쥐꼴을 면치 못했다. 방에 돌아와서 뜨거운 물로 샤워를 마치고 온돌방에 몸을 녹였다. 여기저기 관절이 아프고 근육도 욱신거렸다. 욕심이 부른 참사란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산행을 마치며

그날의 산행 일지

얻은 것보다는 잃은 것이 많은 후회되는 산행이었다. 시야 확보와 체온 보존이  되는 상황에서 자칫하면 위험한 상황이  뻔했다 위에서는 욕망에 눈이 멀어서 그걸 인지하지 못하고 계속 욕심을 냈다. 그리고  욕심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명하고자  욕심을 냈다.  높이 올라가면서 땅이 물러졌고 내려오는데  많은 시간과 체력이 필요했다. 다시는 이런 무리한 산행은 계획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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