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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욕심많은워킹맘 Nov 09. 2017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날마다 사랑한다고 말할 것이다.

어제 블로그 이웃님 은결님의 포스팅을 보고 요 근래 '워킹맘의 아이'라는 중심이 내내 머릿속을 떠다녔다. 평생을 워킹맘의 딸로 살아온 내가, 내 아이들도 워킹맘의 자녀들로 자라고 있다. 

어린 시절,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면 아무도 없는 텅 빈 방이 허전하고 외로웠던 기억이 난다. 친정 엄마는 퇴근 시간이 나처럼 사무직이라 6시까지의 근무 시간이 아니어서 늘 퇴근이 늦으셨다. 우리가 잠들 즘에 나 집에 도착하셨다. 그래서 공부나, 우리들의 습관 같은 거를 잡아주시고 이끌어 주실 시간이 전혀 되지 못하셨다. 그래서 정리 정돈 습관도, 밥 먹고 나면 양치질을 하는 습관도, 매일 공부하는 습관도 어떤 것도 형성되지 못했다. 그래도 뭐 주위 사람들로부터 나름 야무지다 혹은 꼼꼼하다는 말을 많이 듣는 편인데 이 야무진 성격은 성격인 건지 아님 습관인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남편의 일이 갑자기 변동이 생기면서 이사를 간다고 서둘러 정리했던 공부방도 결국은 원점대로 돌아왔다. 남편은 다시 내려왔고 나는 다시 일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를 했다. 숑숑군이 2학년이 되면서 나는 취직을 준비하는 '취준생'이 되었다. 그때 당시에는 주위 환경이 안정되지 못했었다. 그래서 그럴까? 숑숑군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1학년 때는 준비물도 잘 챙기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도 공부도 곧잘 따라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복습하면서 이해를 잘 못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럴수록 더 아이를 채근하고 다그쳤다. 1학년 때보다 오히려 더 학습 태도가 엉망이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온통 내 마음에 들지 않는 것 투성이고, 정신을 똑바로 안 차리고 학교 다닌다고 엄청 혼을 냈었다. 

엄마가 이제 일하니까 제발 네 일은 신경 덜 쓰게 좀 똑바로 해!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이제 일을 시작하니까 아무래도 엄마의 손길이 부족할 테고 그리고 초등학교 1년 동안 학교생활했으면 이제는 혼자서 할 때도 되지 않았나?  제발 조금 더 정신 차리고 똑바로 했으면...이라는 바람이 강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바람이 너무 강했으니까 아이의 작고 사소한 실수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였다. 아이가 이유라도 들면 '핑계를 댄다'라며 가혹하게 평가를 내렸다. 아이 실수 앞에서 엄격한 잣대로 아이를 평가했고 혼을 냈다. 하나에서 열까지 제대로 하는 게 없다며 이미 아이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못마땅'으로 갇혀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날들이 지속되면서 이게 아닌데 싶었다. 내 눈에는 그저 똑똑하고 의젓하고 너무 어른 같은 아이라 애틋했던 큰 아이였는데.... 미안하면서도 실망스러운 마음이 공존해있었다. 동생보다 다섯 살 많다는 이유로 더 잘하길 바라고 더 스스로 하길 바라는 내 욕심이었다.

큰 아이와 관계가 이렇게 되어서는 안되겠다 싶어 감사 일기에다 하루 한 개씩 큰 아이의 감사함을 적어보기 시작했다. 


어제는 남편이 뿅뿅군과 마트에 가고 장을 본다고 좀 늦는다고 했다. 남편이 마트에서 장을 보고 어린이집에서 둘째를 데리고 집에 왔을 때 숑숑군이 불도 켜놓지도 않고 혼자서 거실에서 해리포터 시리즈를 읽고 있었다고 한다. 오늘 학교 도서관에서 책 2권을 빌려와 도서관에서 50% 읽고 쉬는 시간에 20%를 읽고 학교 마치고 오자마자 내용이 너무 궁금해서 나머지 30%를 아빠가 오기 전까지 거실에 불도 켜지 않고 읽었더란다. 그림 하나 없이 글밥으로 이루어진 책을 오늘 하루 만에 1권을 다 읽고 2권을 읽고 있는 중이라길래 정말? 이러며 무한 칭찬을 했다. 그리고 이 시리즈 다 갖고 싶다며 사달라고 부탁을 한다. 1학년 때는 엽기 과학자 프레니에 빠져서 잠들기 전에도 안고 자던 녀석이 올해는 해리포터 시리즈에 빠졌다. 작년과 똑같은 우리 아이였는데 작년에는 잘했는데 올해는 못한다는 프레임에 갇혀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 낮에 업무 시간 중에 숑숑군의 전화가 와서 전화를 받았더니 기가 죽은 목소리로 "엄마...... 나.... 오늘.... 있잖아요...."라는 말로 시작하길래 '받아쓰기 실수했나 보다'라며 마음을 비우는 사이 갑자기 반전 목소리로 "백 점 받았어요"라고 웃으며 말하는 것이다. 엄마를 놀릴 줄 아는 능구렁이 아들 녀석이 다 되었다. 

오늘 아침에는 어제 수학 교과서에서 배운 진도만큼 수학익힘책을 풀고 채점해오기가 있었는데 아침에 다시 한번 알림장 체크를 했더니 가방에 수학익힘책이 없었다. 어제 풀이하고 내가 채점을 해줬는데도 가방에 넣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였다면 나, 엄청 잔소리를 했을거다. 

                                          

야! 너는 내가 챙겨라고 하는 것도 안 챙기면 도대체 엄마가 어디까지 챙겨줄까?


이런 잔소리로 아이를 다그쳤을거다. 그때 순간 '나도 실수하는데 뭐, 나도 잘 빠트리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오늘은 바둑 방과 후 수업이 있는 날이었는데 알아서 바둑 교재를 잘 챙겨 넣은 아이에게 잘 챙겼다고 칭찬도 하고 다음부터는 알림장도 다시 한번 더 확인해보라고 일러두었다. 엄마의 작은 칭찬에 아이 표정이 부드러워진다. 혼날거라 생각했는데 스스로 잘한 부분을 칭찬 받으니 아이도 기분이 좋아보인다. 


블로그 이웃 은결님이 런치 특강의 후기 포스팅이 마음에 와 닿았다.

아이는 엄마가 아이를 대하는 것을 보고 
자신의 존재감에 대한 가치를 느끼는 것을 
거울이론이라고 한다.

아이의 크고 작은 실수를 혼내고 다그치고 엄격한 잣대로 평가를 내리는 내 얼굴을 보는 아이 마음에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 나는 이렇게 실수만 하는구나.
나는 만날 엄마한테 혼나기만 하는구나.
나는 너무 형편없는 아이 같아.
나는 내가 너무 싫다.
나는 엄마를 화나게만 만드는구나

나는 내 눈짓으로 몸짓으로 아이에게 '너는 형편 없는 아이' 혹은 '너는 나를 실망시키는 아이'라고 각인시켜주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워킹맘 김대리로 살면서 직장 상사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상냥하게 말하려고 노력하고, 이쁘게 말하려고 용쓰면서 정작 사랑하는 내 아이에게는 거름종이를 걸러내지도 않은 질 나쁜 잔소리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아이는 그대로였는데 아이를 바라보는 내가 바뀌었을 뿐이었다. 내 아이에게도 정성을 다해 말하려고 노력하는 순간 아이가 변했다고 생각했지만 본질은 내가 바뀐 거였다.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아이만 잘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이기적인 욕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얼마나 이기적인 욕심이란 말인가. 아이 앞에서 어른으로서 부끄러웠다. 

워킹맘으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에게 닿는 손길이 부족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그만큼 더 많이 사랑한다 표현해주고, 
더 많이 안아주고, 
더 많이 따뜻한 말을 해줘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늘 책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서는 아이에게 크게 인사한다.

                                          

엽아. 오늘도 즐거운 하루 보내.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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