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간접투자
국민연금의 해외부동산 투자에 가장 많은 도움을 주었던 운용사 중 하나가 The Townsend Group("타운센드", "Townsend" 혹은 "TTG")였다. TTG는 부동산 분야에서 글로벌 최대의 투자 컨설팅 업체 중 하나로 다른 업체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르게 재간접펀드("Fund of Funds" 혹은 "FoF")로의 전환을 이뤄냈다. 지금도 부동산 Fund of Funds로 글로벌시장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해외PE 투자를 하던 시절의 내 첫 공동투자("Co-Investment")는 Fund of Funds인 크레딧스위스 CFIG ("Customized Fund Investment Group", 이후 GCM Grosvenor에 합병되었다)이 조달한 건이었다. 실사 과정에서 CFIG의 포트폴리오 관리 시스템을 확인했었다. 수백개의 펀드에 담긴 수천개 수만개의 포트폴리오를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공공기관이거나 금융기관으로, Fund of Funds에 투자할 때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이중 수수료 구조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재간접펀드에 한 번, 그리고 직접 투자하는 펀드에 한 번, 두 번의 수수료를 지급하고 나면, 투자결과와 무관하게 내외부의 감사기관에 답변을 해야 한다. "중간에 나가게 된 수수료는 개인적인 관계로 착복한 금액이 아닌가요?" 관료적인 이들은 갑의 위치에 있는 투자자가 돈을 내고 도움을 받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투자자들이 Fund of Funds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번째로, 시장 내의 역학관계 때문이다. 투자 규모가 작을 때, 운용사와 투자자의 입장은 뒤바뀐다. 운용사들은 당연히 규모가 큰 투자자가 우선이다. 투자 규모가 1억불 미만이라면, 펀드의 LPA ("Limited Partnership Agreement", 펀드투자의 조건과 운영 방식을 정해놓은 펀드 계약서)에 대한 의견을 반영하기 힘들다.
Fund of Funds는 이러한 소규모 투자자들의 자금을 모아 앵커투자자로서 영향력을 발휘한다. Fund of Funds를 통할 때, 우리는 수수료를 비롯한 다양한 투자 조건에 대한 협상을 진행하여, 우리의 투자 포지션을 보호할 수 있다. LPA 협상은 복잡하다. 이해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경험이 부족하다면 어느 조건들이 중요한 지 잘 알지 못한다. 잘 알더라도, 영어 협상에서 정확하게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Fund of Funds는, 또한, 주요 투자자로 다양한 투자기회를 조달한다. 공동투자("Co-Investment") 기회는 소수의 주요 투자자들에게만 주어진다. 규모가 작은 투자자라면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다. 글로벌 시장에서 영향을 발휘하는 소수의 투자자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Fund of Funds의 공동투자에 재간접으로 투자함으로써 이러한 기회에 접근하게 되는 것이다.
두번째,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내부 자원이 부족하다. 인력의 충원과 시스템 구축 등은 정부나 조직의 예산 내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 예산이라는 것은 대부분 직전연도의 예산을 참고하여 이루어진다. "지금까지 이 정도 인원으로 시스템 없이 잘해왔는데, 추가 인원이 있거나 시스템이 갖춰지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낼 수 있다는 보장이 있나요? 책임질 수 있습니까?" 투자 성과에 대한 성과급이 높지도 않은데, 페널티를 받으며 책임질 사람은 없다.
Fund of Funds에 대한 투자는 내부 인력과 시스템 대비 비용효율적이다. Fund of Funds는 오랜 경험과 함께, 기관투자자들과는 달리 다양한 펀드와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기 위한 내부 시스템을 갖춘 경우가 많다. 투자자들은 Fund of Funds를 통해 분산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주기적으로 잘 정리된 정보를 제공받으며, 투자기회 조달에 쓸 시간을 절약한다.
세번째로, 규모가 큰 투자자들은 규모가 작은 투자 건을 진행하기 어렵다. 국민연금에 있던 시절, 팀에 배정된 1년 투자예산은 3~4조원이었는데, 팀원은 총 6명, 펀드 한 건 당 약 1~2억불을 투자했다. 건당 백페이지에 가까운 분석을 하면서 일 년에 수십 건의 투자를 진행해야 하는 불가능한 숙제를 안고 있었다. 프로젝트 기반의 공동투자를 늘리고자 하더라도 검토할 내부 자원이 부족했다. 결과적으로, 건 별 투자규모를 줄일 수 없었다.
규모가 작은 운용사나 투자 건이 의미가 없는 것도 아니다. 운용사들은 초기 투자자들에게 우호적인 투자조건을 제공한다. 규모도 문제이다. 똑같이 2억불의 수익이 난다고 했을 때, 1억불에 조달한 운용사에는 투자할 수 있지만 5천만불에 조달한 운용사에는 투자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런 경우 Fund of Funds 운용사에 위탁하면 그들의 자원을 활용하여 충분히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마지막으로, Fund of Funds를 활용할 때, 우리는 투자에 정치적인 이슈가 개입될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가장 큰 적은 정치인들이다. "쌓여있는 돈을 국민을 위해서 이용하면 왜 안 되는가?"라는 위험한 질문이 주기적으로 등장한다. 어떤 이들은 국민들이 노후와 현재의 이익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대부분의 공공기관과 금융기관들은 다양한 내부적인 이슈로 인해 투자를 중단해야 할 때가 있다. 운용사의 입장에서, 투자를 중단한 투자자에게 우호적인 조건이나 좋은 투자 건을 제공해야 할 이유는 없다. 좋은 운용사와 좋은 투자 건이라면, 글로벌 시장에서는 이를 위한 자금이 차고 넘친다. 미국 시장에서는 기관투자자는 물론, 패밀리오피스와 개인투자자들이 활성화되어 있어 좋은 투자 건을 조달한 것만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
많은 기관투자자들은 특정 시리즈 펀드에 투자하다가 투자 외적인 이유로 투자를 중단한다. 주요 벤처캐피탈과 일부 헤지펀드는 더 이상 이 기관투자자의 자금을 받지 않는다. Fund of Funds는 투자 외적인 이슈로 투자를 중단하는 경우가 없다. 특정 투자자의 자금이 끊긴다면 다른 투자자의 자금을 활용하게 된다. 일관적인 투자가 가능하고, 운용사와 지속적인 논의가 가능하다.
최근 우리나라의 정치와 사회에서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은 전문가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리학 원칙은 다수결을 따르지 않는다. 일부 정치인들이 경제 이슈를 왜 정치적으로 결정하면 안 되는지를 반문하는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과학이, 경제가, 그 자체의 이슈로 남지 못하고 사회적, 정치적 이슈가 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포트폴리오 매니저로 이러한 정치사회적 위험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 지금 우리나라야말로 Fund of Funds의 역할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