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J Aug 04. 2024

계약서

LPA와 PPM에 대해

종종 술을 마시며 내 생활을 이야기할 때, 낯선 이들은 나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시도 때도 없이 비행기에 올라 시간에 쫓기며 서류를 검토하고, 도착해서는 커피 몇 잔으로 시차를 견디며, 실제로도 수트를 잘 차려입고, 협상을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잘 생긴 얼굴과 멋진 몸매를 가진 주인공이 할 법한 역할이지 않은가? 나무 캐릭터가 그려진 공공기관 명함을 내미는 이에게 기대하지 않았던 이야기였을 것이다. 


실상은 당연히 많이 다르다. 잠을 못 자 퀭한 얼굴로, 셔츠와 수트는 땀에 절어 있으며, 커피를 연거푸 마시며 정신을 부여잡는다. 비행기에서는 LPA(Limited Partnership Agreement, 법률적으로 Limited Partnership인 펀드의 출자 계약서)와 PPM(Private Placement Memorandum, 펀드 투자 설명서. 공모가 아닌 사모형식으로 모집이 되기 때문에 Private Placement라는 표현을 쓴다)에 코를 박고, 모르는 영어 단어에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있던 츄리닝 입은 아저씨가 있었을 것이다. 멋과는 거리가 멀었다. 


LPA와 PPM을 처음 보면서 느끼는 절망감은 결코 언어 때문만은 아니다. 미국이나 영국에서 공부를 한 이들에게도 계약서는 똑같이 어렵다. 백 페이지에 가까운 법률 서류들이다. 한국어로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하지만, 투자 규모를 생각해 볼 때, 단어 하나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여기에 Side Letter (일부 투자자를 위한 별도 합의서)가 추가된다. 우리는 계약서 협상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계약서 검토에는 왕도가 없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읽어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역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주요 거래 조건이 잘 반영되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펀드 출자 조건을 담은 것이 LPA이다. PPM 상에 있는 펀드의 약정, 수수료, 투자전략 상의 제한 등에 관한 사항들이 LPA와 Subscription Agreement(LPA에 부속된 약정서)에 제대로 반영되어 있는 지 확인하는 것이 첫번째로 해야할 일이다. 보다 상세하게는 성과보수의 계산 방식과 Catch-up 조항을 꼼꼼히 챙겨볼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해야 할 일은 운영 상의 로지스틱스(Logistics)를 챙기는 것이다. 예를 들어 캐피탈콜(Capital Call) 공문을 5일 전까지 받기로 했다면, 그 5일이 달력 기준인지 영업일 기준인지를 확인한다. 영업일 기준이라도 한국 명절과 기간이 겹친다면 의미가 없다. 내부결재와 한국은행 보고 등을 고려하여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 회계정보의 보고일정도 이와 유사하다. 내부 분기보고 일정이 2달 이내인데, 펀드의 분기보고가 60일 이내라면 보고서를 작성할 시간이 없다. 어떻게든 45일 이내에 분기보고를 얻어내야 한다. 


펀드의 조건과 일반적인 운영에 관한 사항을 모두 챙겼다면, 다음 순서는 비일상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경우에 대비하는 것이다. 운용사 혹은 핵심운용역의 교체가 그 한 가지 예이다. No-fault Divorce(운용사의 귀책사유 없이 투자자의 투표만으로 운용사 교체가 가능)가 가능한 것인지, 그렇다면 어떤 조건에 따라 할 수 있는 지, 핵심운용역이 몇 명이며 그 중 누구 혹은 몇 명이 없을 때 투자가 중지되는 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사모펀드는 정말 운용역의 역할이 처음부터 끝이다. Key-person 조항은 펀드의 정체성에 있어 핵심적인 조항이다.  


마지막 순서는, 외부의 도움이 필요한 것들에 관한 것이다. 진술과 보장(Reps and Warranties) 부분은 경험 많은 변호사의 검토가 필요하다. 세금과 관련된 사항들은 회계사 혹은 세법 변호사들의 도움을 받는다. 풍부한 경험을 지닌 자문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계약서 검토에 있어 언제나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경험이 풍부한 변호사들은 재무적인 조건들을 제외한 모든 사항을 챙겨줄 뿐 아니라 협상을 대신해 주기도 한다. 충분한 자문수수료를 확보하고, 좋은 자문사를 선임하는 것이야말로 사실 계약서 검토의 첫걸음이다.   


아무리 좋은 투자 전략이 있더라도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계약서와 숫자들이다. 다시 말하지만, 계약서 검토에는 왕도가 없다. 읽고, 또 읽으며, 졸려도 다시 읽어 놓치는 부분이 없어야 한다. 


이전 22화 펀드보수의 다이내믹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