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일 : 무한도전
10년 전 무도 재방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20-40대의 어른이라면 토요일 오후에는 무한도전을 보는 것이 하나의 낙이었을 것이다. 그 주의 무도가 재미있든 없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 흔히 쓰는 말로 토요일 저녁에는 무한도전을 보는 게 '국룰'이었다. 무한도전이 막을 내린지도 3년 정도가 되었다. 마지막 회를 방영하는 날 본방을 봤던 기억이 나는데 나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 주에도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가끔 프로그램을 마칠 때, 다시 돌아올 것처럼 시즌제라는 프레임을 씌우는 경우가 있다. 실제로 여지를 두는 경우도 있고, 시즌 2를 하고 싶은 제작진의 바람일 때도 있고, 다양한 이유로 시즌제 프레임을 씌우는데 다른 프로그램의 경우 다시 돌아온다는 자막을 아무리 띄워도 '아,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구나'라고 생각하고 말았는데 무한도전은 달랐다. 정말 다시 돌아올 것 같았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건 유재석 한 사람뿐이었다.
간혹 퇴근길, 지하철에서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어깨를 들썩이며 웃는 모습이 눈에 띌 때가 있다. 뭐가 그리 재미있어서 저리 웃는지 궁금해서 슬쩍 휴대폰을 훔쳐보면, 아이러니하게 끝난 지 3년이나 된 무한도전을 다시 보고 있다.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도 그 사람은 이미 몇 년 전 본방사수나 재방을 통해 그 회차를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마치 처음 본다는 듯 낄낄 거리며 무한도전과 함께 퇴근을 한다. 그때 느꼈다. 국민 프로그램이라는 타이틀은 이럴 때 쓸 수 있겠구나. 무한도전처럼 남녀노소 할 거 없이 만인의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이 또 탄생할 수 있을까?
프로그램을 만들다 보면 시청률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요즘은 시청률보다 이슈가 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짧은 짤이 돌아다니든, 기사화가 되든, 대중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젊은 세대들이 이미 TV 앞을 떠난 지 오래고, 짬이 날 때 기사를 클릭하거나 휴대폰으로 짧게 올라오는 영상을 보는 것이 더 익숙해졌다. 그나마 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TV를 보는 사람들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집에 있다고 해도 젊은 사람들은 TV 앞에 앉아있지 않는다. 그런 타깃층에게 이슈가 된다는 것은 인터넷 사이트나 SNS에 1분짜리 영상이 올라가고 공유되는 것. 회당 70분 이상의 분량으로 방송을 만들지만 그중 프로그램을 알리는 건 단 1분일 수 있다. 무한도전이 지금까지 방송이 되고 있다면 아마도 한 회 분량에서 어마어마한 짤을 만들어냈을 것이다. 여전히 과거 방송분으로 명대사 짤이나, 재밌는 움짤들이 돌아다니고 있으니 말 다 했다.
지금도 TV를 켜고 케이블 채널을 쭉 돌리다 보면 무한도전은 꾸준히 재방이 되고 있다. 신기하게도 나 역시 몇 번이나 보고 또 본 그 방송을 보게 된다는 것이다. 시간을 때우기 위함이 아니라 실제로 재미가 있다는 게 정말 아이러니하다. 마치 재밌는 드라마는 몇 번이고 처음부터 다시 보는 우리 엄마처럼.
무한도전처럼 영원히 사랑받는, 언제 봐도 재밌는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을까? 다시 봐도 또 보고 싶은 그런 프로그램을 내가 만들 수 있을까? 예능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힘들기도 하고 재밌기도 하지만, OTT 콘텐츠에 익숙해져 가는 세대들에게 방송 프로그램이 언제까지 힘을 가질 수 있을까? 드라마, 영화, 예능 프로그램까지 모두 OTT 콘텐츠를 더욱 선호하는 대중들에게 방송 프로그램은 어떤 의미일까?
방송 판도가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하면서도, 서서히 달라지는 상황을 앞서 생각해야 하는 '방송국 놈들'의 입장은 복잡 미묘하기만 하다. 이미 달라진 부분들을 따라가느라 가랑이가 찢어질 것 같기도 하지만, 계속 새로워지는 이 바닥에서 뭐가 우선인지, 어떤 길을 따라 뛰어야 할지 잘 판단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