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애칭을 불러줘

by 몽상가 J

연애를 시작하면 나는 반드시 애칭을 정한다. 운동선수가 시합을 하기 전 또는 시합 도중, 징크스를 깨기 위해 자기만의 습관적 행동을 보이는 것처럼 내 연애의 시작은 애칭을 정리하는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고 즐겨 사용하는 애칭을 짓는 방법은 이름을 이용하는 것이다. 아주 간단하게는 이름을 길게 늘어뜨려 부른다거나, 발음을 세게 해서 부른다거나, 받침을 빼서 귀엽게 부르는 등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최근 나를 설레게 하는 '박보검'이 내 남자 친구라면, '뽀야'라든지 '꺼미'라든지 '꼬미'와 같은 혀가 말려들어가는 애칭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애칭 알레르기가 있는 분들에게는 쉽지 않겠지만, 이름을 이용한 애칭은 가장 무난하면서도 언제 어디서나 부를 수 있는 나름 떳떳한 애칭으로 탄생한다.


반대로 특정한 사건에서 발발하는 애칭이나 닮은 동물을 의인화하는 경우가 있는데 자칫 잘못 내뱉었다가 서로의 사회적 체면이 깎이는 경우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인형 뽑기로 둘리를 뽑아준 남자 친구에게 '둘리야' 또는 '호이야'라고 부르는 것은 둘 사이에서는 귀엽고 앙증맞을 수 있지만, 타인이 들었을 때는 나잇값 못하는 인간들이라는 의미가 담긴 삿대질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내가 애칭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나와 너, 둘 사이에서만 통용되는 단어가 있다는 것이 너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인구 모두가 나를 ‘강아지’라고 부른다고 가정했을 때, 단 한 사람만큼은 나를 ‘고양이’라고 불러준다면 나는 그 순간마다 특별한 사람이 된 것처럼 행복해질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나는 연애의 시작점을 찍는 순간 상대를 칭하는 애칭을 고민한다, 반드시 나만 부를 수 있는 이름으로.


애칭을 정할 때 가장 중요한 한 가지는 '자기야', '애기야', '꼬마야', '여보야' 등 누구나 한 번씩 써봤을 법한 애칭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가끔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기야'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럴 때는 더 잽싸게 새로운 애칭을 지어야 한다. 나는 너의 15번째 자기가 되고 싶지 않으니까.


아주 가끔 애칭을 극도로 거부하는 사람이 있다. 멀쩡한 이름 놔두고 왜 별명을 만들어야 하냐고, 또는 천천히 지어서 부를게라고 교묘하게 회피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것 또한 개인의 취향이기 때문에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것이 너의 취향이듯, 나는 내 취향대로 애칭을 지어 너를 부를 것이다. 서서히 물들어서 네가 그 애칭에 익숙해질 때까지.


식상하고 재미없는 연애는 금방 질리기 마련이다. 서로의 애칭을 부르는 것처럼 어쩌면 사소하고 소소하지만, 그 작은 부분에서도 애정이 뚝뚝 흐르는 연애를 하고 싶다. 나이가 적든 많든 그것과는 별개로 인생의 순간순간이 즐거웠으면 좋겠다.


친한 후배는 '언니, 그거 작가 병이에요. 왜 남자 친구한테 미션을 주고 그래요'라고도 했다. 후배의 말처럼 어쩌면 1초의 침묵도 견디지 못하는 방송작가의 성향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재밌게 연애하는 게 나쁜 건 아니니까. 아마도 나는 평생을 이런 식으로 살아가지 않을까 싶다.


keyword
이전 05화출산을 강요하는 문자 메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