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과 그림자
빛과 그림자. 삶과 죽음. 서로 완벽하게 반대의 지점에 있으면서도 서로가 없이는 설명될 수 없는 것.
그래서 내게는 하나의 의미로 다가오는 삶과 죽음에 대해 오랜 시간 작업을 해왔다.
개인적으로는 가족의 갑작스러운 그러나 영원한 부재. 늘 내 옆에 있어줄 것 같던 사람이 한순간 사라지는 경험을 하면서 이 주제에 집착했다. 내가 공부했던 동양 철학의 관점에서 삶이 끝나면 본래의 집으로 돌아간다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도교의 영향 아래 그려진 도원도(동양의 낙원 그림)를 연구했고, 나와 나의 사람들은 좋은 곳으로 떠날 것이며 떠난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동양의 낙원 그림의 시초가 된 소설이 있다. 그 글을 쓴 중국의 철학자이자 작가는 정치계에 있었던 인물이었다. 계속되는 전쟁으로 세상이 엉망으로 돌아가고 권력다툼에 싫증을 느낀 그가 정계를 떠나 은거하면서 쓴 작품이 도화원기 (복숭아꽃이 피는 마을(낙원)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글을 자세히 분석해보면 작가는 표면적으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세상, 이상적인 곳을 그리고 있지만 그런 세상은 죽은 후에나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시니컬하게) 말하고 있다. 안견의 <몽유도원도>를 창조하게끔 했던 그 유명한 낙원의 스토리는 그가 보고 있는 끔찍한 현실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이다.
폐허의 아름다움 - 그 어떤 것을 위해서도 유용하게 되지 않기.
페르난두 페소아의 글에서 표현된 것처럼 낙원의 이미지는 유용하지 않다는 점에서 폐허와 같다. 버려진 장소. 시간의 빈 틈 혹은 바깥에서만 찾을 수 있는 곳.
내가 머물고 있는 독일의 레지던스 근처에는 거대한 기념비(Mahnmal-부정적인 역사를 기억하고 '경고'하는 기념비)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독일 사람들도) 모르는 곳에 위치한 러시안 공항. 전쟁 이후 숨겨져 있는 벙커들과 커다란 동굴 같은 격납고들. 얼굴이 뭉개지고 거의 부서져 내린 스탈린 동상. 러시안 군인들과 가족들의 숙소였던 폐허들. 현재 내가 지내고 있는 아틀리에는 나치 정권 당시, 정치범들과 함께 마을의 소수자들 즉 신체적, 정신적 결함이 있는 자들을 사형 집행장으로 보내기 전에 수용했던 곳이라고 한다. 전쟁이 끝난 이후에도 마치 커다란 섬처럼 동떨어져 있는 이 마을에 한동안 독일의 모든 소수자들을 내몰아 수용하고 도심으로부터 격리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들은 유대인만 배척한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곳은 '잊혀짐'에 저항하지 않는다.
나는 이곳이 한 나라의 카이로스적인 시간이자 장소라고 생각한다. 카이로스는 그리스어로 결정적으로 중요한 곳, 시간이자 발병 지점 즉 아킬레스건처럼 신체의 아픈 부위를 뜻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나치의 대표적인 수용소였던 라벤스브뤼크를 방문했었다. 여성들만 머물렀던 그 수용소의 역사와 남겨진 것들을 보았고, 역삼각형의 표식이 있는 죄수복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전쟁 당시 독일에서는 노동력만을 가치 있게 여겼기 때문에 심신이 약한 사람들은 죽음의 표적이 되었다. '선택'된 자들은 그 죄수복을 입고 죽음을 기다려야만 했다. 그래서 수용자들은 안 좋은 환경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고 건강한 모습으로 자신을 지켜내야 했다는 기록을 보았다. 그럼에도 6만 명이 넘는 여성들, 즉 허약했던 여성들이 살해당했다. 건강하게 자신을 지켜냈던 여성들은 1942년부터 위안 시설로 끌려가 남자 수용자들을 위한 성노동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를 본다. 오래된 시간, 불편한 진실을 끄집어내서 세상을 다시 들여다보게 하는 예술은 창문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지난 고통은 다시 나에게 돌아온다. 사회가 내겐 준 (주었다고 믿은) 표식을 지닌 채 살아왔던 시간. 여전히 노동력과 그에 따른 돈의 가치가 인간의 레벨을 가늠하는 것. 내가 허약한 누군가에게 표식을 붙여주었던 시간들은 없었나. 우리, 내 나라에서는 불편한 진실을 한 번씩 바라볼 수 있는 기념비 또는 폐허를 어디서 찾을 수 있나.
내가 왜 그림자가 짙은 이곳까지 왔을까 생각했다.
내 안에 해결되지 않은 물음들이 창문으로 스며드는 빛과 그림자를 통해 하나씩 답을 주고 있는 것이다. 아니, 더 많은 물음을 갖게 한다. 인간에 대해 그리고 그들의 믿음과 신념에 대해.
나는 '지금 여기'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작업으로 풀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거의 아픈 시간들로 꽉 묶인 이 곳에서 나는 현재 작업 중이다.
시간의 빈 틈
서사의 죽 음
'그럼에도 말할 수 없는 고통들이 '말해지는 동안' 믿어본 적 없는 소원이 이루어진다.'
임솔아 <빨간>
고통의 빛깔에 관한 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