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집
차가워지는 겨울바람사이로 난 거리에 서있었네
크고 작은 길들이 만나는 곳 나의 길도 있으리라 여겼지
생각에 잠겨 한참을 걸어가다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학교에서 배웠던 것처럼 아름답지만은 않았었지
무엇을 해야 하나 어디로 가야 하는 걸까
알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나의 첫 깨어남이었지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지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주오
끝없이 뻗은 길의 저편을 보면 나를 감싸는 것은 두려움
혼자 걷기에는 너무 멀어 언제나 누군가를 찾고 있지
세상의 모든 것은 성공과 실패로 나누고
삶의 끝 순간까지 숨 가쁘게 사는 그런 삶은 싫어
난 후회하지 않아
아쉬움은 남겠지만
아주 먼 훗날까지도 난 변하지 않아
나의 길을 가려하던 처음 그 순간처럼
자랑할 것은 없지만 부끄럽고 싶진 않은 나의 길
언제나 내 곁에
언제나 내 곁에 있는 그대여
날 지켜봐 주오 신해절,< 길 위에서 >
레지던시 근처 산책 중..
2014.5.6.일기
늦잠. 세탁하기.
오늘은 '팬케익 데이'라며 여기 살고 있는 룸넘버 7,9 친구들이 나를 초대했다. 밤늦게 까지 우리의 수다는 와인과 함께 이어졌다.
룸넘버 7 청년이 파란 체크의 파자마 같은 바지를 입고 팬케익을 열심히 만들어주었는데 참 착해보였다.
멘토 언니와 잠깐 통화.
"나는 나대로 당신은 당신대로 서로가 위치한 곳에서 서로 빛나는 삶을 살게 되기를."
2014.5.8 일기
어버이날.
그리고 나에겐 아빠의 기일.
아빠가 할머니, 아빠의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가 기억이 난다. 그땐 아빠가 많이 아프기 전이였는데 마치 마지막인 걸 예상한 듯이 아빤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없이 눈물을 흘렸었다. 그 기억 때문에 나도 오늘 많이 울었다. 그런 아빠를 더 따뜻하게 안아주지 못한 게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아빠가 내 곁에 있을 땐 사실 미워한 적이 더 많았고 그래서 갑자기 내 곁을 떠났을 땐 그저 충격이었다. 아빠를 그렇게 보낸 나를 내내 용서할 수 없어서 많이 아팠었다. 한참 후에야 아빠에게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으로 나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아빠가 그렇게 떠난지 12년. 여기서 아빠를 위해 기도했다. 진짜 삶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어 많이 고맙다고. 이처럼 갑자기 사라질 수 있는 삶이기에 이 소중한 순간들을 따뜻하고 뜨겁게 살겠다고.
어버이 날. 내게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보게 해 주고, 이 멋진 삶을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2014.5.8 밤.
아무것도 시도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면 인생은 대체 무엇이겠는가.
라고 반 고흐가 말했다.
내 방에 놓인 꽃 한 송이.
우리는 길을 가다 떨어진 꽃 한 송이를 주워 머리에 꽂고 장난치다가 소중히 가져와 꽃병에 담는다. 우리는 길을 가다 잔디에 누워 별을 본다. 그는 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빠르게 움직이는 별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다. 하늘이 낮아 그런지 달이 가까이 보인다. 달의 얼굴을 보는 것 같다고 나는 말했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손을 잡는다. 일요일엔 돗자리 대신 집에 있는 담요를 들고 낮은 언덕이 있는 공원에 간다. 물과 샐러드와 빵 그리고 와인 한 병. 햇빛 아래 그냥 누워 해를 즐긴다. 이곳은 어느 계절에나 비가 많이 오기 때문에 해가 소중하다. 그래서 해가 좋은 날은 말 그대로 해를 즐겨주어야 한다. 내가 벙커에서 작업을 하고 있으면 그는 나를 끌다시피 밖으로 데리고 나와 그의 무릎에 누인다. 해가 좋다고. 지금은 무조건 해를 즐겨야 한다고. 덕분에 나는 주근깨가 많이 생겼지만 건강해졌다.
작업에도 더 열심히 매진한다. 그가 일하는 동안, (그는 레지던시에서 매니저로 일했다.) 지금 내 일은 작업이므로. 내 본분에 충실한다. 레지던시에서 곧 넓은 작업실을 쓸 수 있게 해준단다. 빨리 큰 작업을 하고 싶다.
한글 콜라주 작업 과정. 2014.
이곳에서 말과 언어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한글은 이미지 자체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는 여러 가지 실험적인 작업들을 해보기로 했다. 실험이라는 말에는 '실패'에 대한 부담이 적다. 그 실패 역시 상당히 주관적인 시점에서 망친 작업이다. 어쨌든 한 번 해보고 결과가 별로면 다른 것을 시도해본다.
문든 생각난 말이 '없다' 였다.
아무것도 없다. 이 곳에 오기 전에 내 어깨를 짓눌렀던 생각의 짐들. 없다. 성공에 대한 욕심.
없다. 적응에 대한 두려움. 없다. 죽음. 없다. 삶. 없다. 가난. 없다. 한때 빛나던 모든 것들. 없다. 내 부끄러운 자취들. 없다. 희망. 없다. 절망. 없다. 아무것도 없다.
대신 집도 없고. 비자도 아직 없다. 앞날에 대한 걱정은. 조금 있다...
*
5년전의 일기. 지금 나는 영주권 받는 것을 앞두고 있지만 왜 비슷한 걱정은 늘 떠나지 않는 것일까.
그리고 왜 저 과거가, 마냥 작업에만 열중했던 저 때가 그리운 것일까. 하지만 지금 나더러 다시 벙커에서 살라고 하면 나는 그때처럼 스스럼없이 결정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용기백배였던 과거의 나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본다.
5년 후 지금을 돌아보면 나는 또 지금 여기를 그리워하게 될까. 그렇게 늘 걱정했던 것들을 해결하며 살아왔다. 내가 해외살이에서 배운 것은 언제 어디서나 '문제'는 발생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고 해결해나가면서 나는 더 성장해 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