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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Kenye Kwon Feb 16. 2021

#. 프롤로그

대학을 졸업하고 30대까지의 내 삶은 자유로운 삶을 위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인생의 방향, 구체적으로 직업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였음에도 안타깝게도 현실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태생적으로 장착된 좋게 보면 비판적 사고 나쁘게 말하면 비관적인 사고는 학창시절 내내 원하던 신문방송학과 진학이 좌절되면서 분출구를 찾지 못하고 나를 괴롭혔다. 차선으로 선택한 경영학은 자본의 노예 같았고, 대학을 졸업해 취직하는 인생은 무기력해 보였다. 대한민국은 답답했고 기득권은 타도할 대상이었다. 그다지 다정하지도 화목하지 못한 집안환경도 이런 비관적 사고에 부채질을 했다. 건강한 비판의 장을 찾지 못한 나는 일종의 반달리즘으로 변해갔다. 어디로 갈 것인가보다 지금을 벗어나는 것만이 중요했다. 건설적인 대안보다 현실의 파괴만이 머릿속에 가득했다. 하지만, 나는 태생적인 히피는 아니었다. 그런 반감을 키우면서도 제도권을 완벽히 벗어날 자신은 없었다. 대학원까지 졸업한 나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결국 직장인이 되었다. 그렇게 경멸해 오던 제도권에 안착한 것이다. 패배감이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적금을 든 것 같은 안도감도 올라왔다. 

직장인이 된 후로도 내 안의 히피적 자아는 쉽게 길들여지지 않았다. 동시에 히피적 자아를 표출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감지했다. 내 안의 패러독스를 인정하지 못했는지 나는 어느 한 라인으로 정하고 싶었다.

‘돈을 버릴 수 없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주는 직업이 중요한 것 아닌가?’

‘결국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는 것이 직장인데 그 안에서 내가 만족을 느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자 직업에서의 만족도 중요해 보였다. 적성에 맞는 마케팅 리서치로 커리어를 정하고 나의 만족, 사회의 인정을 위해 열심히 달렸다. 하지만 내 안에 반골기질이 완벽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내 안에는 두 자아가 있었고 양가 감정사이를 오락가락하는 삶을 살았다. 어학연수, 배낭여행, 글 작업, 책 출간 등 히피적 자아가 꿈틀거릴 때마다 주저없이 퇴사를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회사도 3년 이상을 다니지 못한 채 조각난 경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렇게 30대 후반, 여러 일탈의 결실로 쿠바 여행기가 나왔다. 가족과 주변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별한 마케팅이 없었지만 주문이 들어오고, 쿠바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도 소품으로도 사용될 정도로 알려지고 있었다. 분출할 곳을 찾지 못해 꽁꽁 숨겨야 할 것 같았던 나의 히피적 자아가 세상 밖으로 나와 인정을 받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삶을 바꿔주지는 못했다. 현실을 같았고 나는 다시 직장인으로 돌아왔다. 일련의 일탈을 가능하게 해 준 것이 현실이었기에 그 어느 때 보다 좋은 직장으로 가서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내 일탈기간동안 성실히 자리를 지켜온 이들의 능력이 보였다. 조바심이 났고, 주문발송이나 결재처리 같이 책 판매에 따르는 자잘한 일조차 귀찮아졌다. 여행작가와 직장인. 두개의 타이틀을 얻기는 했지만 어느 것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완벽한 히피도, 완벽한 여피도 아닌 우유부단한 아마추어의 종합체였다. 

그렇게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 나날을 보내던 어느 일요일, 나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오후까지 멍하니 누워있었다. 정적이 싫어 TV를 틀었고 소란스러운 예능 프로가 나왔다. 초점없이 웃고 떠드는 연예인들을 보고 있는데 알 수 없는 눈물이 주르륵 흘렀고, 그것은 몇 초 만에 대성통곡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몇 시간은 운 것 같았다. 힘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모든 게 부질없다는 생각에 손목을 그으려 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찰나에 그 손짓은 스스로 멈춰졌다. 

다음날 오후 나는 반차를 내어 신경정신과에 갔다. 한시간 넘게 검사를 했고 ‘상담과 약물의 치료가 필요한 중증의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수준이니 당장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 바로 휴직을 할 수는 없어 몇 개월 약을 먹으며 연말을 마무리했다. 회사의 배려로 휴직을 받았고 운동과 심리치료를 해 가며 일상을 찾는데 집중했다. 각고의 노력으로 다시 입사를 했지만, 다시 퇴사 그리고 또 입사 그리고 다시 우울증 진단…. 3년 간 3 번이 입사와 퇴사를 반복한 결과는 원점이었다. 매번 퇴사의 사유는 달랐다. 업무강도도 높았고, 사람들과 관계의 스트레스도 있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신경안정제로 견디다 결국 퇴사를 하는 수순이 반복되는 것은 무언가 잘못되고 있었다. 직급이 올라가다 보니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도 강도높아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그때마다 일상이 무너지고 정신과를 찾아가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주변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위로해 주었지만 나는 이것이 20대때부터 인생의 방향에 갈피를 잡지 못해 온 것임을 알고 있었다. 반골 기질을 감당하지 못해 저지른 퇴사, 그리고 어쩔 수 없는 현실 복귀가 반복된 것이 그 증명이었다. 일과 개인적인 삶, 작가와 직장 경력, 이 두 갈래 길 어디에도 안착하지 못하고 붕 뜬 채로 인생을 보내고 있었다. 내 인생은 그야말로 누적되지 않고 플러스와 마이너스를 오가는 제로섬이었다. 하지만 내가 더 괴로운 것은 스스로 선택한 행보를 위해 끝까지 인내하지 못하고 떠나 온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는 자기모순이었다. 퇴사와 입사가 반복될 때마다 이 감정은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를 짓눌렀다. 

삶이 이러하니 어디를 가도 겉도는 느낌이었다. 부모님과 형제들, 친구들, 사회에서 만난 동료들은 예전 같지 않았다. 의심하지 않았던 글에 대한 열정, 드물지 않았던 취직 기회도 줄어드는 것 같았다. 상극 같은 두 자아를 어쩌지 못해 허둥대는 동안 나를 둘러싼 세상은 나름의 방식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이다. 조금씩 정신을 차리고 내 안의 모순을 직시하고 나니 주변이 보인다. 마흔이 넘은 지금의 나는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 보인다. 세상의 법칙과 무관하게 살겠다는 호기로웠던 젊은 날의 외침은 이제 공허하다.


이 글은 삶의 노선을 선택하지 못해 겪은 서른 후반에 겪은 성장통의 기록이자, 그 사이 놓쳐버린 세상과 관계를 회복하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이 글의 가장 큰 소득은 작업을 통해 나 자신과의 관계를 회복했다는 것이다. 책을 낸 것에 우쭐하다가도 회사원이 되면 출간을 꽁꽁 숨겼을 때에도, 회사생활에 환멸을 느낄 때마다 책을 내던 시절을 그리워했을 때에도 나는 일관되게 나를 경멸했었다. 하지만 그 모든 자기모순적 결정이 결국은 나의 일부였고, 이제 그것을 인정한다. 여전히 부끄러운 부분이지만 그럼에도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과 친구들이 있다. 이러한 주변인들이 나를 일으켜 세우는데 도움이 되지만, 사실 나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은 나를 둘러싼 삶의 요소–가족, 친구, 직업, 돈과 같은–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그 저변에는 결혼하지 않은 여성의 시선이 강한데 우선 내 입장이 그렇기 때문이다. ‘본인의 선택으로 새로운 가족을 구성하고, 생물학적 가족에서 자연스럽게 독립하는’ 기혼과 달리 미혼은 어떠한 결정적인 삶의 변화가 없기에 젊은 시절의 라이프스타일이 마흔이 넘어서까지 이어진다. 주변의 변화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주변의 변화에 초점을 두다가 다시 내면으로 들어간다. 마흔의 싱글이 되면서 가장 크게 다가온 두려움은 ‘삶의 당위성의 부재’이다. 결혼한 친구들이 푸념 삼아 ‘자식 때문에 산다’, ‘가정을 지키려고 산다’라는 말이 부러운 지경이 되는 것이다. 그 말에는 분명 삶의 명분이 들어있다. 싱글은 자식이나 가정 대신 대입할 단어를 찾아야 한다. ‘나의 행복과 안위’ 혹은 ‘사회적 성과’ 등을 고려할 수 있지만 어떤 상황도 이겨낼 만큼 절대적이지 못하다. 이러한 목표는 삶의 의지가 약해질 때는 언제라도 후루룩 던져버리게 된다. 내가 희생할 가치가 있는 대상, 그에 대한 책임이 무거울수록 그것을 지켜낼 힘도 강해진다. 이러한 내면의 깊은 연결고리를 맺어줄 대상이 없는 싱글은 인생의 고충을 인내할 명분도 약해진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여러 번의 상담으로 터득한 것은 ‘삶의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이것은 ‘나와 세상의 관계 맺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나를 인정하는 나 자신’에서부터 시작된다. 부두에 메이지 못한 배는 본래 가려는 방향조차 설정하지 못하고 해류와 바람에 쉽게 흘려간다. 나를 부두에 붙들지 않으면 부표처럼 부유하게 되는 것이다. 

자유로운 기질과 현실적 성취를 모두 이루고 싶었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삶이었다. 이제나를 둘러싼 주변을 둘러보고자 한다. 그리고 인생의 중간인 마흔인 지금 변화된 주변과의 역학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여러 세상적 가치들을 어떻게 내 인생에 배치할 것인지 위치를 잡아보고자 한다. 

주변 요소는 10가지로 추렸다. 굳이 보면 내면적인 것과 외면적인 것들로 구분할 수 있다. 내면 요소가 더 중요할 것 같지만 외면 요소가 내면을 잡아 주기도 한다. 그러므로 이 요소들은 균일하게 중요하다. How to solve 같은 해결책은 없다. 하지만 나의 pause된 시간 동안 이동해버린 요소들의 경도와 위도를 짚어보는 건 걸어가야 할 방향의 감을 줄 것이다. 


How to live 40’s life with re-positioned life surroundings

 마흔이 되니 변하지 않을 줄 알았던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 그렇다고 후반의 인생을 흘러가는 대로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변하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더 분명한 나의 색을 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마흔이 될 것 같다. 그것의 첫 시작으로 이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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