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구호 Aug 11. 2017

아들 결혼식에 꼭 가야하나

 나는 아들 결혼식에 가야 할지 고민이다. 아들 둘 다 교회에서 결혼하고 싶어 한다. 엄마 따라 어려서부터 기독교인이 됐다. 정서상으로 자신들은 당연하게 생각한다고 본다. 나는 종교가 없다. 사실은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얼마 전 친구 딸 결혼식에 갔다. 신랑과 신부는 그 교회에서 만났다고 한다. 몇 년 간의 교회 활동을 하면서 서로 알게 됐다. 사랑으로 발전하고 부부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친구 부부와 신랑 어머니는 기독교인이고, 신랑 아버지만 교인이 아니었다. 

 식 중에 목사가 “신랑 아버님은 언제부터 교회에 나오실 겁니까?”고 질문을 한다. 무척이나 난감해 한다. 집안의 경사에 싫은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역력하다. 침묵으로 답변을 했고, 다시 똑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한동안 침묵으로 어색해진 분위기에 “빠른 시간 안에 교회에 나오신다는 말로 이해하겠습니다.”고 목사는 얼버무린다. 《대가들의 글 사이에 슬쩍 집어 넣어 본다》에서 명로진은 “신앙이 가득한 자들은 신앙이 부족한 자들을 몰아 세우기 마련이다.”고 했다. 

 이런 경우 나는 어떻게 답할까. 뻔한 질문에 바라는 답을 하여도 졸을 것 같다. 분위기를 위해서? 하지만 어떤 환경에서 몰아세워지는 것도 싫고, 아들 결혼식에서 거짓말하는 건 더더욱 원치 않는다.

  전 청와대 대변인 윤태영은 《대통령 말하기》에서 “서로의 이해관계가 달라 껄끄럽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 분명한 태도로 대응한다면 오히려 논란을 종식시킨다. 만일 예의를 갖추기 위해 애매한 태도로 대응한다면 자칫 소모적인 논란이 계속될지 모른다.”고 했다. 

 ’참석치 않는 것도 하나의 좋은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경사에 서로 얼굴 붉히는 일도 없고 어색한 침묵도 없을 거다. 혼주로서 불참석은 의무를 저버린 행위이다. 문화적인 면에서도  적절치 않다고 본다. 

 최선이 안되면 차선을 택한다. 참석하되 아들의 약속을 미리 받는다. 결혼식에서 ‘교회에 나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하지 않기로. 어기며 이 애비는 다음과 같이 말하겠다고.     


지금은 신랑·신부가한 가정을 꾸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우선 주례를 맡아주신 목사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이들의 종교를 존중하고 반대 하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결혼하는데 이견도 없습니다.

종교 지도자로서 종교를 권유하는 것은 

자신의 의무를 다하는 일이란 점도 이해를 합니다.

하지만 교회 의식이 제게는 많이 불편합니다.

   .

혼주가 하객을 모시는 일은 중요합니다.

신자도 있고, 다른 종교인도 있고,  

나와 같이 종교 없는 이들도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들의 바람을 

이해하고 오신 여러 하객들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결혼은 집안의 중요한 행사이기도 합니다.

집안 어른들, 친인척, 친구, 동료, 지인 

뿐만 아니라 

신랑신부 친구들께서 오셨습니다.


 '신자이냐 아니냐'가 이슈는 아니라고 봅니다.


 아이들에게 언제나 인생은 판단과 결단의 연속이라고 말해 왔다. ‘돌다리를 두드리고 건너라’에서 돌다리를 두들기는 건 판단이요. 건너가고 안 가고는 결단이다. 결단은 선택으로 완성된다고 본다.

 아들은 선택을 해서 결혼한다. 아이에서 어른이 된다. 《건투를 빈다》에서 김어준은 “제 몫 제가 감당하는 게 어른이다”고 했다. 아빠도 선택을 했다. “아들아!, 넌 어른이다. 건투를 빈다.”고 말해 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협상의 대가 트럼프와 협상 준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