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ninsing Dec 30. 2019

싱가포르 오감도

1년반 만에 만난 세번째 아해

내가 사는 이곳은 사실 적도에 위치한 작은 섬나라다. 

날씨 탓인지 이곳의 생명체들은 모두 활기에 넘친다. 

오랜만에 회식이 있어 회식을 마치고 퇴근을 해서는 늦었으니 넷플릭스나 보다가 자야겠다 싶었는데…

▼ 어디선가 불길한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아하… 이제 처음으로 나방이 집에 들어 왔구나 싶어 날아다니는 곤충을 자세히 살폈다. 

그.. 러.. 나..

그 비행물체는 나방이 아니라 바퀴벌레였다. ㅠㅠ

도망가다 도망가다 궁지에 몰려 날아 갔다는 바퀴벌레에 대해서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처음부터 기세 좋게 파르륵거리며 날아 다니는 놈은 내 생애 처음 보는 것이어서 매우 당황스럽기도 놀라기도 했다. 


▼ 일단 잡치책과 스프레이를 들고는 전투 태세를 갖추고 바퀴를 한 곳으로 몰아 세운다. 

잽싸게 스프레이를 뿌려 바퀴를 교란시키고, 아주 살짝 잡지책으로 바퀴를 기절시킨다. 그러면서 커피 포트에 들어 있는 물을 끓인다.
(이건 어느 택시 기사님께 배운 방법이오. ^^)

그 기사님에 따르면 우선 잡지 책이나 스프레이 등으로 바퀴가 살짝 맛이 가게만 하고서 현장을 보존하고, 이후 끓여둔 뜨거운 물을 부어 버리면 깔끔하게 바퀴를 처리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따라 해봤는데 이 방법이 꽤나 좋은 방법이었다.
(물론 움직임은 신속정확해야 하오 ^^)

기절한 바퀴 위에 금방 끓은 물을 부어 모든 일을 마친다. 바퀴는 겹겹이 싸서 비닐에 담아 지하 쓰레기 통으로…
(물론 잡지책 등 이 아해를 잡는 시간 동안 사용한 모든 물건은 다 비닐 안에 담겨야 하오.) 


▼ 바퀴 한마리를 처리하고 나니 문득 이 아이는 세번째 우리 집에 난입한 바퀴라는 생각이 든다. 

세번째 놈이라서 그랬는지 이 아이는 정말 기세 좋게 날아다녔다. ㅎㅎㅎ
완전 빠이띵이 넘치는 아이였다. 

그러면서 이상의 '오감도'에 따라 그간 우리 집에 왔던 아이들에 대한 시를 써 본다. ㅎㅎㅎ




▼ 첫번째 아이는 마치 좀도둑처럼 슬금거리면서 나타났었다.
내 기억엔 미얀마 출장을 마친 이후가 아니었나 싶다. 

두번째 아이는 1월6일날 왔었다. ㅍㅎㅎㅎ

그 아이가 온 날까지 기억하는 이유는 그날은 길고 긴 남미/북미 출장을 마치고, 싱갚에 돌아와서 처음으로 주말에 카레를 해 먹는 날이었기 때문에 기억이 난다. 

열심히 카레를 만들어 이제 막 두어 숟가락을 뜨고 있던 순간, 그 아이는 정문으로 들어 왔다. 마치 보물섬에 나오는 벤보우 여인숙에 다짜고짜 나타난 '검은 개'와 같이 정문으로 들어왔다.

사실 두번째 아이는 약간 못생겼었다. 
자주색 롱코트를 입은 못생긴 부자의 이미지였는데...
난 두번째 아이가 별로 였다. 

그 이유는 그 아이의 웃음소리의 느낌은 이런 식이었다. 
"훼훼훼훼훼… 그간 잘 있었습니까?"

뭐 그랬다. ㅎㅎㅎ

당시 나는 다짜고짜 옆의 티슈 박스를 집어 그 아이를 박살냈는데…

그 이후에 가끔 생각을 한다. '훼훼훼가 머람 훼훼훼가…' ㅎㅎㅎ

그리고 오늘 세번째 아이가 들어와서는 온 집안을 난장판을 만들고 그렇게 나에게 처단된 것이다.

오늘 들어온 아이는 파르륵 파르륵 날아다니기도 했지만 아주 긴 앞 더듬이를 씰룩거리기도 했다. ㅠㅠ


▼ 사실 이곳에서 벌써 1년5개월을 지냈지만 지금까지 단 세마리의 바퀴만을 만났다는 것은 내가 사는 곳이 꽤나 방충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1년반 동안 3마리라고 해도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내가 이름 붙인 증후군이 하나 있다. 
'검은 물체 흔들흔들 증후군'
이는 뭔가 검은 색 물체가 살짝 움직이더라도 이를 생명체의 움직임으로 보는 트라우마를 의미하는데 ^^

예를 들어 서울의 가을에 낙엽이 움직였지만 박쥐가 날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든지… 뭐 그런 거다. 

요지는 아무리 자주 그런 경험을 해도 벌레는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리고 검은 물체가 흔들거리면 바로 생명체로 인식하는 트라우마가 생긴 것이다.


▼ 아무리 미물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나는 내 편의를 위해서 그들의 목숨을 빼앗은 모진 인간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건 어디 가지 않는 팩트다. 

그래서 조침문을 쓴 유씨부인처럼 그들의 소멸을 애도하는 글을 써도 좋았겠지만 사실 나에겐 바늘을 잃은 유씨부인이 가진 슬픔을 가지게 하는 이벤트는 아니었기 때문에 이상의 '오감도'에 맞춰 시를 써 본 거다. 

어쨌든 내 편의를 위해 세 아이를 소멸하게 한 것은 나로썬 매우 미안한 일이다. 

그래서 미안한 건 미안한 거라서…

그 아이들에게 사과를 하기 위해서 이렇게 긴 글을 써내려가면서…

그들과의 탐탁하지 않았던 만남을 다시 떠올리면서

네번째 아이는 오지 않기를 바라면서

씁쓸한 미안함에 다시 한번 그들에게 머리를 숙인다. 

By 켄 in 싱갚 ('19년 1월11일 작성)

※ 시에서도 잠깐 쓴 것처럼 그들의 사진을 찍는 것은 반인륜적인 행위라고 생각했다. ^^ 그래서 그들의 사진은 없다. 불편한 진실은… 피하는 게 좋다고 생각들 하지 않는가? ^^

매거진의 이전글 드디어 집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